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높이 50㎝ 달항아리가 탁자에 놓였다. 말갛고 깨끗한 아름다움. 그런데 흔히 보던 달항아리와는 조금 다르다. 보는 각도마다 서로 다른 색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자개(조개 껍데기를 썰어낸 조각)다.

“아름답네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그 우아함에 감탄했다. 이 작품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선물한 류지안 작가의 ‘더 문 화이트’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16층 르 살롱에 있는 자신의 작품 ‘더 문 화이트’ 옆에 앉은 류지안 작가. 이 작품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 때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모델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 유코 여사에게서도 이런 감탄사가 나왔다. 김 여사와 방문한 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에서다. 이들이 함께 바라본 것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 이 작품은 절도범에 의해 300여 조각으로 깨졌다가 부활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 이은 일본의 ‘달항아리 외교’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자연스러운 미의 완성’. 영국 BBC는 지난 11일 달항아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는 국내 작가들이 참여한 ‘달항아리: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런던공예주간 동안 열리고 있다.

조선 후기 백자 양식인 달항아리는 어떻게 한국미의 상징이 됐을까. 사람들은 왜 달항아리에 열광할까. 미국 국빈 선물을 제작한 류지안(40) 작가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국내 첫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이 있던 롯데호텔에서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류 작가의 기획 전시 ‘온 더 패스 오브 타임’이 다음 달 27일까지 열린다.

◇한국의 미 ‘달항아리’

-미국 국빈 방문 선물로 선정됐다.

“지난 3월 의전실에서 연락이 왔다. 내 작품 중 뉴욕을 담은 자개 그림을 보고 국빈 선물로 선정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미국 방문이 12년 만의 국빈 방문이라 중요한 자리라고 하더라. 작품 몇 가지를 제안했고 그 중 자개 달항아리 ‘더 문 화이트’가 선정됐다.”

-왜 달항아리였나.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달항아리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시작은 바다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 그 달이 비추는 파도, 반짝이는 윤슬과 거친 바다의 물거품. 이것들을 하나로 표현하다 보니 달항아리가 됐다. 그 위에 입힌 자개는 바다가 품은 시간이다. 자개가 빛을 뿜어내기까지 쌓인 세월, 자개를 잘라붙이는 노동, 이 모든 시간이 모여 작품이 됐다.”

-미국으로 운반할 때 힘들지 않았나?

“내 작품은 흙이 아닌 자동차나 요트를 만드는 소재 FRP(돌가루와 수지 혼합 재료)로 빚고, 그 위에 자개를 붙인 것이다. 가볍고 잘 깨지지 않아 운반이 어렵지는 않았다.”

-왜 이 작품이 국빈 선물로 선정됐을까.

“국빈 선물은 의미가 중요하다. 내 작품엔 아버지대부터 쌓아온 시간과 나만의 디자인적 감각이 공존한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보이듯, 작품에도 그 시간이 자연스레 담긴다. 난 항상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추구한다. 한국적이지만, 고급스럽고, 어딘가에서 본 적 없는 작품. 그런 부분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나 싶다.”

-왜 사람들이 달항아리를 좋아할까.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화려하다. 순백과 비움의 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5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실

◇국빈 선물 전문 작가

류 작가 작품이 정상들을 위한 선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이후 두 번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도 두 번의 선물이 전달됐다. 그 외 중국 시진핑 주석,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등 45국 정상에게 류 작가의 작품이 선물로 전달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국빈 선물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드린 선물이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유럽 순방 때는 자개함이었다. 여왕뿐 아니라 남편인 필립공, 아들인 앤드루 왕자에게도 전달됐다. 2016년에는 주영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여왕의 90세 생일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 작품 중 매화로 된 작품을 변형해 드렸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에게 전달한 자개로 만든 축구공도 기억에 남는다.”

국가 정상 간 만남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관례다. 선물을 선정할 때는 자국의 상징과 상대 정상의 취향, 양국의 역사, 상황 등이 고려된다. 이렇게 전달된 선물은 대부분 국가에 귀속된다.

-롤스로이스, 카르티에, 파네라이, 블랑팡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많이 하고 있다.

“2021년 롤스로이스 팬텀 대시보드에 자개를 입히는 컬래버 작업을 했다. 롤스로이스가 협업한 최초의 한국 디자이너라고 하더라. 기본적으로 현대적인 것 위에 자개를 입히는 작업을 좋아한다. 자개는 나를 표현하는 물감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왜 자개에 주목할까.

“그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건 ‘손으로 하는 작업의 가치’였다. 장인 정신을 요하는 전통 기법으로 완성되는 작품이면서, 디자인·소재·이야기 등에서 현대적이고 새로운 요소를 담을 수 있다는 것. 기본적으로 그 점이 브랜드의 가치와 같다고 생각했다. 내 작품은 샤넬 수석 디자이너였던 칼 라거펠트, 프랑수아 피노 케링그룹 회장, 디올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디자이너 등에게도 선물로 전달됐다. 방탄소년단의 공식 화보 ‘달마중’의 배경으로도 쓰였다. 그들은 한국적인 터치를 신비롭고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아버지는 나의 멘토

류지안의 아버지는 나전칠기 명인 청봉 유철현 작가다. 아버지 공방에서 뛰어놀던 류 작가에게 자개는 레고 블록만큼이나 익숙한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자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 것은 한국을 떠나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어릴 때 꿈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어떻게 자개를 이용한 작품을 하게 됐나.

“어린 시절, 자개는 내게 익숙함이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친숙한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처럼, 당시에는 자개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자개를 재발견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자개를 전통 공예 소재로 보지만, 반클리프 아펠 같은 세계적 브랜드들은 하이엔드 주얼리나 시계 등에 들어가는 보석으로 생각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의 젠스타일이 유행이었고, 일본인 작가들의 죽공예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한국의 자개를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자개 세공 기법부터 배웠다. 전통 기법에 뿌리를 둬야 제대로 된 창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는 기존 전통 문양이나 주제, 색감 등을 바꿔보는 작업을 했다. 지금 내 작업은 각 분야의 장인 선생님들과 함께하고 있다.”

-장인들과 협업은 잘되나?

“내가 하는 작업 방식이나 색감, 재료, 주제, 기법 등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장인 선생님들에게는 조금 낯설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견 조율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과감히 해보라’고 응원해주신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받나.

“개인적으로 사극을 좋아하고 한복, 옛 장신구, 전통 가구들도 정말 좋아한다. 기독교 신자지만 사찰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도 즐긴다. 그런 과정에서 장승업의 홍백매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블룸’, 갓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갓은 햇볕을 가리고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였지만, 내 작품은 반대로 메탈과 자개를 이용해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난 우리만의 정서, 전통문화가 참 우아하고 고급스럽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긴 역사와 그 안에서 전해지는 어떤 묵직한 무게감, 그 분위기는 대체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힘든 순간은?

“새로운 걸 고민할 때. 계속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면서도, 그 과정이 가장 고되다.”

-결국 아버지의 업을 잇게 됐다.

“어릴 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안 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나만의 것을 찾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됐다. 아버지는 내게 멘토이자 후원자다. 아버지가 살아왔던 세월과 경험, 자개를 다루는 노하우는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이길 수 없다. 이는 내가 함께 작업하는 장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개만 40~50년씩, 내 나이보다 많은 시간을 그 길을 걸어오신 분들이다. 나는 그 시간과 길을 존경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자개’ 하면 류지안이 떠오르면 좋겠다. 지금은 첨단 과학 기술과 미술이 융합한 새로운 장르가 나타나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어쩌면 정반대로 사람의 손과 디자인, 미술이 융합하는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