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태권도 시범단의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저 그런 공연을 보고 나와 적적한 마음을 추스르며 걷는데 공원에서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대묘기를 펼치고 있었다. 정말, 그것은 대묘기라고 해야 한다. 태권도에 아무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을뿐더러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주로 태권도 관계자와 학부모,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 관객들 틈에 끼어서 관전하다가 박수까지 쳤다. 꽤나 열렬했던 나의 박수는 눈빛을 반짝이며 ‘합’ 하고 기합을 넣은 후 날아오르는 약동의 에너지에 대한 경탄이었다.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은 최근에도 경탄할 일이 있어서 그렇다. 게다가 이 역시 시범의 일종이었다. 소맥리에의 제조 시범. 소주는 파란 병의 두꺼비였다. 소맥리에께서는 일단 스냅을 사용, 두꺼비를 쌍절곤처럼 돌려서 회오리를 만들더니 뚜껑을 땄다. 역시나 그냥 따지 않고 무림 고수가 모가지를 비틀 듯이 와자작. 그러고는 병목을 손날로 탁 탁 쳐서 물방울(사실은 술방울)을 관전자의 얼굴로 뿌리는 게 아닌가? 방울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말했다. “아유, 시원해.” “어, 순수한 알코올!”
어머, 이게 뭐지? 아침 이슬 맞는 풀잎도 아니면서. 해괴하지만, 귀여웠다. K국의 술자리 바이브를 이토록 소름 돋게 묘사하다니. 남들이 보면 추태라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세상 소중하고 유쾌한 그 순간이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20년 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던 여성이 뒤늦게 레지던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기에 본 <닥터 차정숙>에서 이 장면을 만났던 것이다.
소맥리에는 제조 시범을 보이다가 인간문화재급이라는 찬탄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열해 있던 맥주병을 숟가락으로 뻥 뻥 하고 따더니 출수구를 엄지로 막아(압력을 높여주는 효과) 수제 스프링클러를 만들어 맥주가 뿜어져 나오게 한다. 자연히 잔 외벽까지 칠갑 될 수밖에 없는 구조. 내가 감탄한 것은, 난폭하게 소맥을 제조하던 분께서 사뿐히 잔을 흔들더니 알코올이 묻은 잔의 외벽을 역시 사뿐히 닦아 술잔을 내밀던 그 순간이었다. 이 장단, 이 강약에 웃지 않으면 유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 이토록 부드러운 연결은 부드러운 목 넘김만큼이나 좋다고도.
2년 차 여성 레지던트가 문제의 소맥리에(배우는 조아람 분)였다. 절도 있고, 산뜻했다. 그리고 멋있었다. 언니라는 말을 몇 번 해본 적 없는 나도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나이가 어려도 존경심이 드는 좀 그런 분들이 계시다. 구시대 인물 같았으면 ‘병권을 잡았다’며 설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병권을 쥐네 마네, 이런 말은 참으로 병맛이다. 병권을 쥔다고 하면 병조판서가 된 기분이라도 드나 싶지만 어쨌든 문명사회에서 이런 말씀은 좀 삼가셨음 좋겠습니다. 청바지만큼이나 그렇습니다. 청바지가 뭐의 약잔지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다. ‘청춘은 바로 지금’ 이런 거 한마음 한뜻으로 안 외치고 각자 속으로 생각하셨음 좋겠다.
나는 내가 겪은 소맥리에들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논쟁가이기도 했다. 소주와 맥주의 비율을 몇 대 몇으로 해야 할지로 시작해 소주잔을 맥주잔 속에 빠트려야 하나 아니면 칵테일처럼 샷 추가를 해야 하나로 이어졌고, 거품을 일으키는 방식도 젓가락을 꽂을지 숟가락을 돌릴지를 두고 얼마나 뜨겁게 논쟁이 이어졌던가. 소맥에 대한 별다른 철학도 주관도 없으므로 그저 지켜보는 편이었던 나는 이번에 하나 알게 되었다. 맛이나 비율보다는 현란한 기술이 이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소맥리에는 조주사가 아니라 엔터테이너라고. 대단한 깨달음 아닙니까?
하지만 엔터테이너는 하늘이 내린다. 그 경지까지 아니라면 레크리에이션 활동가 정도라도 좋다. 레크리에이션의 뜻이란 무엇인가. “피로를 풀고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하여 함께 모여 놀거나 운동 따위를 즐기는 일”이라고 국어사전은 말한다.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J라고 하자. 그날 위스키에 맥주를 타 먹었으니 위맥리에라고 해야 하나. 아무도 그를 호명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위맥리에로 나선 게 J였다. 다변가에 다혈질로 보였던 분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위스키 샷 잔을 도열시키는 장면은 꽤나 조신했다. 외교관이었다는 그에게 외교가에서 배운 거냐고 물을 기회도 없이 J는 계속 술을 말았다. 그의 자태를 보고 우리는 함께 즐거웠으니, 그 시간은 레크리에이션이 맞다. 어느 정도 소박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지루하기도 했으니.
대단하거나 환상적인 장면은 상상이나 화면 속에나 있는 것 같다. 내가 앞에서 말한 <닥터 차정숙>의 소맥 신은 내가 본 음주 장면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환상적이었는데, 그건 외과 과장 윤태식 님(배우는 박철민 분)이 받쳐주셔서 그랬다. 시작부터 상당했다. 의국 사람들이 병원 로비에 모여 있는데, 윤과장은 그냥 있지 않았다. 술은 체력이라고 읊조리면서 스쿼트를 하시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스쿼트를 1000개 하는데 술 마신 다음날은 2000개를 하신다나. 사람들이 다 모이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피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빨리 가서 혼을 실어 한잔하십니다!”
이런 건 절륜하다고 해야 한다. 그 순간, 알았던 것 같다. 이 드라마, 심상치 않다고. 이 작가님의 필력과 이 배우님의 연기에 나는 이 신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도착한 삼겹살집에서 의국 사람들은 인간문화재급 소맥리에의 시범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장이 있으니 또 저런 훌륭한 소맥리에가 초절기교를 펼칠 수 있는 법. 소맥리에가 제조한 K국 공식 칵테일을 공급한 후, 윤과장님은 말씀하신다.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건배사를 말이다. “내가 ‘소맥으로’ 하면, 여러분은 ‘죽여버릴 거야’.”
아… 과장님, 존경합니다. 그 순간, 나도 거기에 있고 싶었다. “죽여버릴 거야”를 외치고 싶었으니까. 그러고는 배급해주신 칵테일을 단번에 들이붓는 것이다. 무슨 발할라에 온 바이킹 전사라도 된 느낌으로. 하지만 상상은 이렇게 상상으로서만 남겨둘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굳이 실현시킬 것까지야 싶으면서도 삼겹살에 소맥이 하고 싶다. 우리(한민족)의 혈관에는 삼겹살과 소맥의 강이 도저히 흐르고 있는 건가라는 통렬한 자아 성찰에 이르면서. 저런 장면에서 숨이 막히고, 피가 끓어오르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구나 싶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민족의식이라는 게 고취되기도 하나 싶다.
이 바이브, 못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