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전화는 오후에 왔다. “아니, 작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어휘력이 부족해요? 매번 만날 때마다 얼굴이 창백하다느니, 힘들어 보인다느니, 어디 아픈 것 아니냐느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주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일방적인 통화는 계속됐다.

일러스트=김영석

전후 사정은 이렇다. 전날 저녁에 편의점 점주들의 모임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늘 근처 편의점 파라솔에서 간단한 2차 술자리를 갖는다. 가급적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이라도 팔아주기 위해서다. 그날도 그렇게 편의점에 갔고, 말없이 돌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점주에게 인사하러 들어갔던 것이다.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는 이야기는 했던 것 같다. 건강을 잘 챙기시라는 이야기도 건넸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과연 “놀리려고” 그랬겠나. 편찮은 아버지를 치료하려고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을 다 돌아다닌다는 그의 사연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그날도, 딴은 위로차, 굳이 그 편의점을 찾았던 것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낯빛이 좋지 않다는 말이 그렇게 몹쓸 인사말이야?” 아내가 잠깐 생각하다 답한다. “그럴 수도 있지. 게다가 당신… 전작이 있었다며? 자기는 힘들어 죽겠는데 남들은 술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화가 나지 않았을까?” 비평은 이어졌다. “그리고 말이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뭐가 좋지 않아 보인다는 말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야.” 내가 주제넘었구나. 정론(正論)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더라도 뾰족한 반발심이 솟는다. 사람은 어느 정도 사이가 되어야 ‘가깝다’ 말할 수 있을까? 가까운 사이라도 해선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알지만 어느 정도 표현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그 점주하고는 10년 넘게 아는 사이다. 경조사를 서로 챙기고,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밤이 이슥토록 상갓집을 지켰을 정도로 교류하는 사이다. 내 딴에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과연 ‘약 올리려는’ 마음을 먹었겠나. “놀리는 것도 아니고”라는 표현이 자꾸 뇌리를 맴돌았다. “만날 때마다” 내가 그랬다는데,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아니, 이건 내가 오히려 화를 내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러는 한편으로 그가 하루가 지나서야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밤새 분을 삼키며 씩씩거렸을 모습을 상상했다. 머릿속이 또 복잡해졌다.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가끔 그런 손님을 만난다. ‘폭발’하는 손님이 있다.

새벽마다 일정한 시간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몇 개월 마주하다 보니 흥겹게 인사 나누며 친숙해졌고, 그가 사내(社內) 연애를 하는 여자 친구를 자랑하는 말이나 지난 주말에 어디를 다녀왔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음료를 두 개 구입해 하나는 자기가 마시고 하나는 가방에 담길래 “여자 친구 주시려고요?” 하고 물었다. 갑자기 버럭 “남의 사생활에 왜 간섭하고 그러세요!”라는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또 ‘못 할 말’을 했구나.

한두 번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정해진 서비스 멘트 외에는 다른 말은 않게 된다. 나는 ‘팔면’ 되는 것이고, 손님은 ‘사면’ 되는 것이고, 편의점의 역할은 그게 전부 아닌가. 굳이 가까워질 필요도,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적당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히. 인간 관계도 적당히. 이렁저렁 ‘적당’의 처세술을 몸에 익혔다고 생각했건만 이번에 또 일을 치렀다.

돌아보면 나도 이른바 ‘급발진’을 한 적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종종 있다. 느닷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있고,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한 경우도 있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는 경우가 있고, 평소 마뜩잖던 사람이 저지른 실수에 ‘너, 잘 걸렸다’는 식으로 환호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아니라 개인 편의점을 운영하던 시절에, 점주들끼리 공동구매한 어떤 상품이 우리 점포에 잘못 입고된 것이다.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웃으면서 “다시 보내드릴게요”라고 했다. 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 웃을 상황인가. 흥분해서 인터넷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을 올렸다. 적당한 항의가 아니고, 꽤 지나친 항의였다. 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다. 상품이 잘못 들어왔다고 크게 손해 보는 일도 아니었고, 하루 이틀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그 담당자와는 익히 아는 사이다. 자신의 실수가 어이없어 웃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사과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마음의 궤적을 돌아보곤 한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일들이 언제나 마음을 흔든다.

세상에 흔한 것이 사람이라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해진 공식이나 정답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열 사람을 만나면 열 사람의 빛깔이 다르고, 백 사람을 살펴보면 백 사람의 그림자가 같은 듯 다르다.

화를 낸 점주에게는 내가 사과하는 것이 맞을까? 내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며칠째 궁리만 한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문자메시지의 말을 고른다. 아내는 “시간이 먼저 해결해줄 것”이라며 나의 또 다른 성급함을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