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리에 들어서면 높다란 벽에 걸린 캥거루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대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자라 지방 함량이 낮은 캥거루 고기는 스테이크는 물론 버거와 소시지, 육포, 피자로도 만들어지는 제법 흔한 식재료. 하지만 마조리에 캥거루 메뉴는 없다. 캥거루는 이 카페 주인장과 요리의 내력을 일러주는 상징일 뿐이다.
2012년부터 방송된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즐겨봤다면 시즌1에 출연한 유일한 외국인 참가자를 기억할지 모른다. 마조리는 원어민 강사 이력을 지닌 그 참가자 브레넌(Dallas James Brennan)이 2017년 5월 경남 김해에 개업한 ‘오스트레일리아 푸드 카페’다.
마조리(Marjorie)는 브레넌의 할머니 이름이다. 브레넌은 맞벌이 부모 대신 할머니의 손에서 컸고, 초등학생 때부터 할머니를 도와 요리를 시작했다. 음식 솜씨가 특별했던 할머니야말로 첫 요리 선생님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브레넌은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 퀸즐랜드에 소재한 그리피스대학교에 입학해 마케팅과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최근 QS 세계 대학 평가에서 300위에 오른 신흥 명문 그리피스에서의 훈련은 브레넌을 요리사이자 바리스타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죄수를 처리할 수 없게 된 영국의 새로운 유형지로 선택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죄수 726명을 포함해 1030명을 태운 영국 선단 11척이 보터니만에 도착하여 훗날 최대 도시로 성장할 시드니를 건설한 해가 1788년이다. 자연스럽게 오스트레일리아 요리에는 ‘피시앤드칩스’로 대표되는 영국 퀴진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달고기와 감자를 바삭하게 굽고 푸짐한 샐러드를 곁들인 ‘피시앤드칩스’는 마조리에서도 인기 있는 메뉴다. 푸석한 대서양 대구 대신 한국인이 좋아하는 쫄깃한 식감의 국내산 달고기를 쓴 게 인기 비결이다. 달고기는 매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주문해서 배달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다문화 국가이듯이 요리에도 구미와 중남미, 인도, 중국, 태평양 연안 지역의 다양한 조리법이 뒤섞이고 경쟁하며 다듬어져 왔다. 마조리에서 내는 2만원 안팎의 ‘에그베네딕트’ ‘크리스피왕새우타코’ ‘아보카도가든샐러드’ ‘칠리왕새우토마토오일스파게티’ ‘치아바타파니니세트’(치킨아보카도, 이탈리안, 허브로스티드버섯 세 종류) 같은 메뉴에서도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마조리의 메뉴는 계절마다 달라진다. 철마다 식재료가 극적으로 변하는 한국 사정을 고려한 선택이다. 메뉴판에 인쇄된 정규 메뉴 말고도 매일 새롭게 추가되는 메뉴들이 예쁜 손 글씨로 칠판에 빼곡히 적힌다. 단골손님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흥분을 느끼게 만들려는 노력이야말로 힘든 시기를 통과해 6주년을 자축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브레넌은 말한다.
마조리에서 오감을 사로잡는 메뉴는 샐러드다. 같은 굵기로 손질한 루꼴라, 양배추, 아보카도, 적양파에 페타치즈, 구운 토마토와 신선한 체리토마토, 견과류를 곁들이고 레몬오레가노, 타르타르, 파슬리부추 같은 수제 드레싱을 더한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샐러드의 균형이 절묘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음식을 한마디로 ‘세계 음식의 용광로’라고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브레넌은 내키지 않는 눈치다. 오스트레일리아 음식은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받아들였지만, 고유한 스타일을 가미해 더 높은 차원으로 ‘승격(elevate)’시켰다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마흔을 갓 넘긴 그에게는 꿈이 많다. 브런치 카페를 성공시킨 자신의 경험을 강의와 책으로, 유튜브로 나누고 싶다고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더 넓고 접근성이 좋은 장소로 식당을 이전할 계획도 있다. 열다섯 해를 보낸 김해는 브레넌에게 두 번째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