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수교가 런웨이로 변신했다. 지난달 29일 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연 국내 첫 패션쇼.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울려 퍼지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정호연이 모델 출신다운 워킹으로 등장했다. 루이비통 측은 “한강은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했다. 16일엔 다른 명품 브랜드 구찌가 경복궁 근정전을 패션쇼 무대로 삼았다. 두 이벤트는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세계에 중계됐다.
지난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오세훈(62) 서울시장은 “지금 서울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다. 필요하다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지붕도 내놓을 것”이라며 웃었다. 세일즈맨 같은 말투였다. 그가 판매하는 상품은 서울. “OECD 선진국들은 GDP의 10% 이상을 관광산업으로 창출합니다. 한국은 2.7%에 불과해요. 관광은 일자리도 만들어줍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에겐 기회예요!”
서울시장 역대 최연소(45세), 최다선(4선) 기록 보유자. 1961년생 오세훈의 인생은 40대와 50대의 명암이 뚜렷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시장직을 던진 뒤 1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황금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시장이 만든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있는 서울시 일들에 애착이 강하다”며 “대선 도전보다 서울시장 5선에 더 마음이 가 있다”고 했다.
◇세운상가에 뮤지컬 클러스터
오 시장은 미발표 프로젝트를 ‘아무튼, 주말’에 먼저 공개했다. 세운상가 일대에 1000석 규모 뮤지컬 전용극장이 4개나 들어온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기인 K드라마·K영화의 기반은 대학로 예술가들이 닦았다”며 “세운지구를 재개발하면서 지속가능한 뮤지컬 클러스터를 만들고 대학로와 연결할 것”이라고 했다.
-세운지구는 2006년 당신의 개발공약 1호였는데.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 등 구도심은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입니다. 창경궁과 종묘에 고궁이 있으니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남산까지 녹지로 선형 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어요. 건물을 50~60층까지 짓게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부지 일부를 기부 채납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임 시장이 2014년 그 계획을 파괴하고 건물들을 보존하는 도시 재생으로 변경했어요. 세운상가 옥상에서 보면 처참합니다. 천막으로 덧댄 슬레이트 지붕들이 ‘잃어버린 10년’ 같아요.”
-그곳에서 눈물을 흘렸다고요?
“내가 사퇴하는 바람에 저 꼴이 됐구나, 하는 회한의 눈물이었어요. 난맥상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 옆에 1000억원을 들여 공중보행로를 지어놓고 떠났습니다. 이용자는 별로 없는데 ‘대못’처럼 박혀 있어요.”
-유럽에서 공부한 건축가들은 개발보다 보존을 선호합니다만.
“국력이 강할 때 지은 유럽 대도시들과 달리 서울 구도심은 찢어지게 가난할 때 만들어졌어요. 무조건 개발하자는 게 아닙니다. 장충체육관은 리모델링해 잘 쓰고 있고, 흥인지문(동대문)은 이대병원 등 주변 건축물들을 허물고 녹지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더 돋보이도록 복원한 거예요.”
-세운지구 뮤지컬 프로젝트는 다음 시장이 ‘빠꾸’를 외친다면 행정 낭비 아닌가요?
“10년쯤 걸릴 텐데 누가 오더라도 시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계획했는데 전임 시장이 백지화하고 텃밭으로 썼어요. 그게 박수를 받았다면 제가 다시 예술섬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펼 수 있을까요?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한 뒤 문화예술 수요는 폭증하고 있어요. 지난해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대성공이 그 증거입니다.”
-K컬처가 세계적인 트렌드인데, 해외에서 서울을 보는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너무 기대가 높아 걱정이 태산입니다(웃음). 광고가 과장돼 있으면 상품을 써보고 실망할 수 있잖아요.”
-무슨 뜻입니까.
“서울에 온 외국인들이 ‘별것 없네’ ‘여행 올 가치는 없군’ 하는 순간 K컬처가 만든 서울의 매력은 물거품이 됩니다. 홍보에도 한계가 있어요. 외국인들이 ‘사흘 예정으로 왔다 닷새 머무는 도시’가 돼야 진짜 대박이 나는 겁니다. 서울이 그 기대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겁이 나고 마음이 급해요. 그래서 서울의 매력 포인트를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분투합니다.”
◇서울을 ‘매력 도시’ 톱5로
잠수교 패션쇼는 서울시가 루이비통에 장소를 제공했다. 2009년 광화문 광장에서 스노보드 대회를 열었다가 비판을 받았다는 오 시장은 “당시 100여 개 채널이 세계로 생중계하면서 도시 홍보에는 성공했다”며 “이젠 서울 전체가 무대”라고 했다.
-루이비통의 제안에 놀랐나요.
“전혀요. 만리장성 패션쇼, 두바이 호텔 옥상에서의 골프 등이 그 도시의 이미지를 바꿨습니다. 명품 브랜드가 잠수교를?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죠. 하하.”
-2007년 ‘디자인 서울’ 계획으로 추진한 DDP가 2014년 개관할 때 초청받으셨습니까?
“(고개를 흔들며) 입장이 바뀌었다면 저는 박 시장을 초대했을 거예요. 그래도 집에서 박수를 쳤습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 디자인을 본 순간의 전율을 잊지 못해요. 서울의 랜드마크로 성공하겠구나, 그 일대를 먹여살리겠구나 확신했습니다.”
-’도시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돈을 쓰고 싶은 도시가 돼야 한다, 가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사람은 감동할 때 주머니가 열려요. 한번 가보자, 먹어보자, 사자…. 코로나 이전에는 싸구려 단체 관광객이 많았지만 이제 객단가 높은 고급 관광객이 들어오고 있어요. 서울 시민의 편의와 행복도 증진이 제 첫째 임무지만, 서울을 ‘매력 도시 톱5′로 가꾸면 외국인들이 더 오래, 더 많이 돈을 쓸 겁니다.”
-서울의 장단점이라면.
“조선왕조부터 600년 수도로서 가진 역사, 한강 등 자연은 잠재력이 큰 관광 자원이에요.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시 계획을 했고, 강남은 실패작입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에 끌린 외국인이 강남에 가보면 빌딩밖에 없어요. 그런데 강북에는 허물고 녹지를 만들 공간이 아직 많습니다.”
-세빛섬부터 대관람차(서울링), 여의도 제2세종문화회관까지 한강에 애정을 쏟는군요.
“그 물길에 어떤 매력을 더할까 늘 고민합니다. 대관람차는 한 포인트일 뿐이고요. 한강 고수부지로 불린 양안, 넓게는 200m, 좁게는 50m가 생태공간입니다.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분리했고 잔디밭과 숲을 만들었어요. 철새들이 돌아올 정도로 생태계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리모델링을 앞둔 세종문화회관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를 여의도로 바꾼 이유도 궁금합니다.
“문예부흥을 이루겠다는 뜻이에요. 리모델링 개념은 대중친화적 문화예술시설입니다. 과거에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은 상위 1%를 위한 공간, 대중에겐 그림의 떡이었죠. 평범한 시민이나 관광객이 그곳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2세종문화회관은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한강의 경치와 낙조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세종문화회관도 전면과 북쪽 측면에 미디어파사드를 합니다. 돈 내고 극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요.”
-청년들은 지난 정부에서 2배 오른 집값에 좌절하고 있는데.
“서울 집값은 낮을수록 바람직해요. 부익부빈익빈이 큰 문제인데 그 자산 격차가 부동산에서 옵니다. ‘똑똑한 한 채’를 향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강남은 계속 오를 거예요. 중산층 이하는 가처분소득이 줄어 돈을 못 쓰니 경제가 돌지 않아요. 역전세 같은 부작용만 없다면 집값을 더 낮추고 싶습니다. 물론 천천히요. 재개발·재건축에 죽을힘을 쏟고 있어요.”
-박원순 시장은 ‘원주민들이 쫓겨난다’면서 뉴타운 개발을 취소했습니다. 개발하면 그 지역이 보수화된다는 주장도 했지요.
“달콤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전임 시장 얘기를 자꾸 해 민망하지만 그 ‘안티 재개발’ 정책의 결과가 뭡니까? 강남·강북 가릴 거 없이 집값이 동반 상승했어요. 20~30대 신혼부부들은 경기도 위성도시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때문이 아니라 재개발·재건축을 막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감투 없이 산 10년
변호사 오세훈은 일조권 소송에서 승리한 뒤 방송 진행자로 유명해졌다. 서른여덟 살에 정치에 입문했다. 2000년 강남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을 경험했고 2006년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거푸 이겼다. 한국 복지논쟁의 시작인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10년은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
-화려한 40대, 암울한 50대라고 아시나요?
“저를 두고 하는 말이네요(웃음). 50대에 10년 동안 피눈물을 흘렸지만 그렇게 우울하진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보람있게 보낸 기간이었어요. 옛날엔 머리로 일했다면 이제 가슴으로 일합니다. 종로와 광진에서 선거를 치를 때 제 눈은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 있었어요.”
-그런데 광진에서는 왜 졌습니까.
“그 얘기를 하자면 1시간 걸립니다. 오늘은 생략하죠. 아무튼 피가 되고 살이 된 10년이었어요.”
-일곱 살 손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 오세훈의 장단점이라면.
“장점이랄 것도 없는데, 우리 세대는 성실하게 살았어요. ‘오세훈은 합리적이다’ ‘일만 하지 말고 정치 좀 해라’ 같은 말을 듣곤 합니다. 단점은 제가 술을 잘 못해요. 그런 자리에서 형님·동생을 못 만드니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사람을 소홀히 한다’는 억울한 평가가 뒤따랐고.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것도 단점이지요.”
-결혼한 딸들이 여론 동향과 ‘꼰대 금기 사항’을 알려준다고요?
“유튜브를 보자고 해 틀었더니 ‘아빠는 역시 뉴스만 보시누먼. 시정(市政)에 도움 안 돼요’ 지적하더라고요.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알려줍디다. 선거 때는 ‘아빠, 오늘 토론은 이겼는데 표는 떨어졌어’ 했어요. 유권자는 빈 구석이 있는 후보를 더 좋아한다는 겁니다. 이젠 상대를 얄미울 정도로 압도하진 않아요(웃음).”
-’아내가 늘 야당 역할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논리적이고 낙관적인데 아내는 감성적이고 비관적입니다. 상호보완 관계죠.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당신은 사람과 쉽게 친해지거나 호감을 얻는 자질이 부족하다’며 반대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도와줘요.”
-잔소리도 들으시나요.
“그럼요. ‘옷을 왜 식탁 의자에 걸어두느냐’고 혼납니다. 저는 ‘어차피 내일 입고 나갈 테니 식탁이 빠르다’고 응수하지요. (아내가 옷걸이에 걸어 장롱에 넣는지 묻자) 포기했는지 그냥 놔둬요. 하하.”
-감투 없이 산 10년 동안 뭐가 달라졌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마침내 터득했어요. 선거는 정책이 좋다고, 악수 많이 한다고 이기는 게 아닙니다. 유권자는 다 자신을 위해 투표하고, 그 이기심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걸 아는 데 저는 25년 걸렸으니 미련한 거예요.”
-정치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기업을 일으키려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고 하면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프레임을 씌우는데 참 억울해요. 세상에 부자를 위한 정당은 없습니다.”
-천주교 신자시죠? 고해성사할 시간을 1분 드리겠습니다.
“과거의 오세훈은 지나치게 뜨거웠고 덜 성숙했습니다. 시장직 던지고도 1~2년은 제가 잘못했다는 판단을 수용할 수 없었어요. 얼마나 많은 실망과 좌절을 드렸는지 반성했습니다. 사실 후임 시장님 덕분이에요. 전임자의 업적을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짓밟는 작업을 했거든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정치는 힘이 있어야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구나. 아무리 의미 있고 바람직한 일을 해도 힘을 잃는 순간 하루아침에 의미 없는 일, 잘못된 일이 되는구나.”
◇기회는 한번 더 온다
어려울 때 들은 최고의 조언은 뭐였을까. “당신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다시 한번 온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어요. 도덕적 하자나 큰 잘못으로 정치를 그만둔 게 아니니 나라의 부름을 다시 받을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게 만든 격려였다고 술회했다.
-정치 생명이 끝날 위기에서 2021년 보궐선거에 서울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서울시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제일 컸습니다. 제 퇴임 이후 모든 게 퇴행했으니까요.”
-서울시의회가 ‘여소야대’라 쓴맛을 봤지만 좌파에 쏠려 있던 시민단체 지원금을 되돌렸고, 세금을 편파적으로 사용한 교통방송 문제, 전장연 시위도 해결하려 노력했는데.
“박 시장은 이념을 함께하는 분들에게 퍼주기에 가까운 위탁사업, 보조금 사업을 했습니다. 시민단체 사람을 팀장, 과장, 국장으로 앉히니 그 스크리닝을 통과하지 않으면 승진하기 힘들어졌어요. 신바람 나게 일을 찾아서 하는 조직을 제가 만들어놨는데, 시장만 바라보는 조직으로 망가뜨린 거예요.
-전장연 불법시위에 강경 대응한 데 대해 ‘보수층을 의식했다’, ‘기회주의자 아닐까’라는 의심을 받습니다만.
“극도의 인내심이었어요. 전장연이 지하철을 세우는 시위를 한 초기에 제가 강경한 입장을 밝히고 그걸 막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면 여론은 지금도 5대5일 겁니다. 반보 앞서가는 정치인이 되려면 때로는 내 생각이 확고하더라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제 시간에 출근할 권리에 지장을 초래하는 시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동원한 방법론은 몇 개월 참는 거였어요.”
-비정상의 정상화, 어느 정도 복구됐나요.
“예산은 80~90% 바로잡았습니다만 창의적으로 일하는 조직은 20~30% 수준이에요. 공무원들 체질 바꾸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비호감도가 낮지만 ‘오빠(오세훈빠)’는 없는데, 약점 아닌가요?
“합리적인 사람은 뜨뜻미지근해 보이니 열성팬이 생겨날 수가 없죠. 그러나 마음속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의 저변은 넓다고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이라는 포퓰리즘과 싸운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다만 시장직까지 걸 일은 아니었죠. 그 10년 공백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됐을 거예요.”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이 부럽진 않습니까.
“콘크리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지지자일 뿐이죠. 좌든 우든 대중에게 영합하는 정치인이야말로 하질(下質)이에요.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중앙 정치를 떠난 지 오래고, 계파도 없고 당내 기반이 약한데.
“지금처럼 제가 만들고 싶은 서울시를 만드는 게 제 정치의 목표예요. 그렇게 일하는 스타일과 제가 가진 가치로 4선까지 왔습니다. 5선을 위해 그 가치를 희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일만 했지 정치는 안 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많은 분이 그런 말을 하십니다. 하지만 저 나름대로는 정치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어요.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의미의 정치를 하기 위해 제가 일하는 데 투입하는 에너지를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면.
“포퓰리즘입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고 하향 평준화를 만드니까요. 왜 어떤 나라는 계속 발전하고, 어떤 나라는 계속 가난하며, 어떤 나라는 발전하다 고꾸라질까요? 인센티브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파괴될 때 그 나라는 성장을 멈추고 쇠퇴하기 시작해요.”
-그 시스템이 무너졌습니까?
“무뎌졌죠. 저희가 젊을 땐 열심히 하면 부잣집 자식보다 앞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출발선이 달라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어요. 그럼 나라를 저주하게 되고 사악한 포퓰리즘이 그 틈을 파고듭니다.”
-작가 이문열은 보수(保守)를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진보는 집값이 다락같이 올라도 임대차 3법 같은 잘못된 정책을 썼어요. 이상만 높아 공중에서 허우적댑니다. 보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어요. 인간의 이기심과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