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만 18세 이상의 남녀 국민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진은 훈련 중인 이스라엘 여군 병사의 모습. /이스라엘 국방부

“요즘 젊은 여자들, 애도 안 낳는데 군대를 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여성 징병요? 출산율 제로(0)에 도전하겠다는 건가요?”

여성이 의무적으로 군(軍) 복무를 해야 한다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발단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였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과 병무청,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가 주최한 ‘인구 절벽 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에서 병역 자원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시됐는데, 이 중 하나가 여성 징집이었던 것. 당시 토론회에서 이한호 성우회장은 “과거엔 출산율이 6을 넘어 여성을 징집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출산율이 0.78에 불과하니 여성도 군 복무를 못 할 이유가 없다. 여성도 징집할 수 있도록 병역법을 개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젊은 층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들끓었다. 일각에선 남녀 갈등으로도 번지는 모양새에, 정부는 “(여성 징집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국방부) “정부 측 공식 입장이 아니며 검토된 바 없다”(병무청)고 진화에 나섰다.

◇'남성 차별 해법’에서 ‘필요에 의한 논의’로

여성 징병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부터다. 일부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고 규정한 병역법 3조 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수차례 제기됐으나 전부 합헌 결정이 내려지거나 각하됐다. 문재인 정부 때는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여러 번 제기됐다. 2021년에 올라온 청원은 29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는데, 당시 청와대는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 등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그간의 여성 징병제 도입 요구는 대개 ‘나(남성)는 군대 가는데, 너(여성)는 왜 안 가느냐’는 문제 의식에서, 남성 차별에 대한 해소 방안으로 나왔다. 이는 비생산적이고 감정적인 성 대결 구도로 흐르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인구 감소가 병력 급감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 징병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국방부는 현재의 출산율과 복무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2040년 병사 자원은 현재의 절반 수준인 15만명에 불과하다고 추산한 바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지난해 50만명 수준이었던 군 병력이 2039년 40만명, 2043년 33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인구 절벽이 심각하기 때문에 여성 징병제가 거론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양규 성우회 안보전략연구원장은 “‘인구 절벽 시대에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병력을 충원하는 것이 최선인가’란 문제에 대해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대안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여성 징집도 논의해보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병력 급감의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성 징집은) 현재로선 아이디어 차원의 주장”이라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큰 사회적 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점, 남녀 공동 군 복무를 위한 시설과 관리 체제를 갖추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전면적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기식 병무청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칫 젠더 갈등으로 (비화해) 우리 사회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원하는 여성에 한해 병사로 입대를 가능하게 하는 여성 지원병제를 도입하거나, 여성도 군사기본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해야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9일(현지 시각) 훈련 중인 대만 여성 예비군의 모습.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만군은 사상 최초로 여성 예비군 소집 훈련을 실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찬반 팽팽… 극단 갈등으로도 번져

정부가 여성 징집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입장을 냈음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11일 이후 일주일간 500건 이상의 관련 글이 올라왔고, 한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한동안 ‘여성 징집’이란 검색어가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했다. 여성 징병제를 전격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실현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 논의 자체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까지 다양하다.

찬성하는 이들은 입영 자원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 예비역 대학생 정모(26)씨는 “무인 전투기, 전투 로봇이 개발된다 해도 향후 수십 년간은 군인의 존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남자만으로 (병력 충원이) 부족한 상황이 곧 닥친다.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대생 이모(22)씨는 “부족한 병력 충원은 물론이고, 성 평등의 차원에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남녀 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 남녀가 성별로 갈라져 서로 자신이 차별받았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회사원 김모(36)씨는 “남성 독박 징병이 어마어마한 사회적 갈등을 낳았다고 보는데, 여성 징병제가 도입되면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여성 징집이 저출산 악화에 일조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직장인 이모(35)씨는 “여성이 20대부터 자녀를 낳게끔 국가적 캠페인을 펼쳐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여성의 군 복무를 의무화하면 아이를 안 낳는 여성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여성 징병보다) 병력 효율성 제고, 전력 첨단화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여성 징병제 제안은 일부 남성이 가진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여군에 대한 성범죄나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개선 없이 여성 징집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찬반이 팽팽하다. 2021년 한국갤럽에 따르면, 여성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47%는 ‘남성만 징병해야 한다’고, 46%는 ‘남성과 여성 모두 징병해야 한다’고 답했다. 당시 여성 응답자의 47%가 여성 징병에 찬성했고, 43%가 반대(남성만 징병)했다. 남성은 44%가 찬성, 51%가 반대했다.

하지만 일부 인터넷 공간에선 여성 징병제 이슈가 남녀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이번에도 한 여초 커뮤니티에는 “우리도 군캉스(군대+바캉스) 혜택 받으러 가보자” “남자들이 군대 다녀온 걸로 유난 떠는 것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다” 등이,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유행한 문구인) ‘걸스 캔 두 애니싱(Girls can do anything)’을 증명해야 할 때” “그동안 남자만 군대를 갔으니 이제 여자만 가는 게 진짜 평등”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조롱과 비아냥으로 표출된 것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선 정치권이 여성 징병제 이슈를 젠더 갈등화해 20~30대 남성 표심을 잡으려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양성(兩性)의 극단에 있는 이들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양상이 나타났다”며 “이 두 요인이 (여성 징병제에 대한) 건설적이고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았다고 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미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의 경우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면서 “우리나라도 목표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부터 시작해 다양한 논의를 제도권 안에서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