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식

해마다 이맘때면 독일 남부 작은 휴양도시 린다우(Lindau)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자들이 모여 일주일 동안 강연, 패널 토의, 토론 등을 하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 Meeting)이 열립니다. 이곳 출신 한 독지가가 1951년 전쟁 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하여 젊은이들과 만남을 주선하려고 이 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시작은 조촐하였으나 점점 규모가 커져 이제는 해마다 분야를 바꾸어 가며 그 분야 노벨상 수상자 수십 명과 세계 각국 젊은 과학자 수백 명이 참가합니다.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자들이 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그룹을 만들어 소통하는 가운데 수상자들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연구 경험을 전수하고 젊은 과학자들은 영감과 새로운 자극을 얻는 한편 저녁에는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인생 이야기도 하는, 참으로 꿈같은 잔치가 벌어집니다. 최근 들어 노벨상의 공동 수상 비율이 90%가 넘는 실정에서 보듯이, 국제적 공동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정보 교환과 교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아가 이를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지원 전략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에 이 행사는 큰 역할을 합니다. 노벨상 주관 국가인 스웨덴의 노벨상 관계자도 참석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2013년 그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해는 주최 측이 공식 일정 첫째 날을 ‘한국의 날’(Korean Day)로 지정하여 한국의 문화와 과학 정책을 소개하고 만찬을 베푸는 등 한국이 일정 부분 호스트 역할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총리 퇴임 후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는 저에게 정부가 한국을 대표하여 그 일을 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35명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학문 연구에 평생을 바친 그분들에게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최고령자인 에드먼드 피셔(Edmond H. Fischer·당시 94세, 1992년 수상) 교수 등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순진무구하였습니다. 겸손하고 따뜻하였습니다. 일정 경지에 오른 분들의 모습은 저렇구나 싶었습니다. 스위스 출신 베르너 아르버(Werner Arber) 교수에게 스위스 출신 수상자 수를 물었다가 28명이라는 대답에 깜짝 놀라 혹시 한국 수상자 수를 물을까 봐 얼른 말머리를 돌렸던 민망한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히데키 교수는 한국에서도 곧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행사가 끝나 린다우를 떠나며 짧은 기간 안에 우리나라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염원하였습니다.

다음 주 6월 1일 제33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삼성호암상은 호암재단이 주관하여 6부문에 걸쳐 과학기술과 문화 예술의 발전을 이끌고 사회봉사로 고귀한 인간애를 실천한 분들을 찾아 그 노고와 헌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격려하는 상입니다. 그러나 상을 운영하는 우리의 꿈 한 부분은 학술 부문 삼성호암상 수상이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호암재단이 2002년 노벨상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개최하고 2010년 노벨재단에 특별상을 수여하는 등 노벨상위원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것도 그 노력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삼성호암상 수상자 중 몇 분은 노벨상 수상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또한 2021년 과학상 물리 수학 부문 수상자인 39세의 허준이 교수가 이듬해 수학 부문 노벨상이라 일컫는 필즈상을 받은 것은 호암재단의 이러한 바람의 성취였습니다.

그렇기에 훌륭한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외국 2000여 곳을 포함한 3000여 곳에 추천을 의뢰하고 ‘네이처(Nature)’ ‘셀(Cell)’ 등 해외 저명 학술지에 추천 광고를 하고,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을 포함한 최고 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상 후보자의 업적에 대한 해외 석학의 평가 및 조언을 받는 등 엄정한 절차를 거치는 것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번 시상식의 특징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씨가 29세로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되었고, 50대 여성 과학자 두 분도 상을 받는 점입니다. 세상도 삼성호암상도 이처럼 변화·발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