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학폭 피해 학생 보호 기관 해맑음센터에서 조정실(오른쪽) 센터장이 학생을 끌어안고 격려하고 있다. 이날 해맑음센터는 교육 당국의 통보로 무기한 폐쇄됐다./조정실 센터장 제공

이른바 ‘정순신 사태’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이 꾸린 ‘정순신 검사특권 진상조사단’ 소속 강득구, 강민정, 도종환 의원이 대전 유성구 대동의 한 폐교를 찾았다. 국내에서 유일한 전국 단위 학폭 피해자 전담보호기관인 ‘해맑음센터’. 60년 넘은 폐교를 수리한 내부를 둘러본 도종환 의원은 “학교폭력 피해자 전담 보호기관을 이렇게 방치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서, 교육부가 더는 이 시설을 내버려 두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녀간 지 두 달이 되지 않은 지난 15일 스승의 날. 센터 관계자들은 교육 당국으로부터 “센터를 내일까지 폐쇄하고 모두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9개월 전 안전 등급 D(미흡) 판정을 받은 학교 건물을 정밀 진단한 결과 E등급(즉각 사용 금지)이 나왔다는 것. 지난 19일 해맑음센터는 교사와 학생들이 부둥켜안고 울며 이별을 고하는 눈물의 수료식을 치른 뒤 무기한 폐쇄됐다.

해맑음센터를 10년간 운영한 조정실 센터장은 “국회의원들이 다녀가면 뭐 하느냐. 여야 의원들 다 애쓴다고 하더니 아무것도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교육부 장관도 몇 번이나 온다고 내부 수리하고 페인트칠도 하더니, 결국 문 닫을 때까지 오지도 않았어요. 대체 뭘 한 거냐고 묻고 싶어요.”

해맑음센터가 문을 연 건 2013년.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학교에 다니며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 문제를 느낀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개소했다. 센터에서 지내며 수업을 받으면 원래 학교에서 출석 등이 인정되는 위탁 교육 기관이다. 협의회의 자문에 응해 온 박상수 변호사는 “드라마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처럼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학생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난 10여 년간 500여 명의 학폭 피해 학생들이 해맑음센터에서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죄 없는 피해자가 왜 가해자를 피해 도망가느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박상수 변호사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기간(3~6일)이 지나면 양쪽이 모두 학교에서 다시 마주치게 됩니다. 가해자에게 강제전학 처분이 나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고, 처분이 나와도 가해자 측이 집행정지를 걸면 소용이 없어요. 해맑음센터가 현실적으로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도종환(맨 왼쪽) 의원 등이 해맑음센터 안을 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해맑음센터 측은 수년 전부터 센터 이전이 필요하다고 교육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9개월 전 문제가 더 심각해지자 교육부는 이전 부지로 경기 양평, 경북 김천과 구미에 있는 폐교 3곳을 후보로 제시했다. 해맑음센터 관계자는 “세 곳 모두 1940년대에 지어져 현 센터보다 더 오래된 건물인 데다 접근성도 떨어지는 곳”이라며 “학폭 피해자는 결국 유배를 가라는 건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대안”이라고 했다.

심지어 후보지 세 곳은 아직 안전 진단조차 하지 않은 상태. 교육부 관계자는 “사용하기로 최종 결정이 되면 안전 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센터 측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직접 서울·수도권 폐교 8곳 등을 찾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막아섰다. 서울에서 이미 학폭 피해자 보호 센터를 ‘촘촘히’ 운영하고 있고, 폐교들은 활용 방안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것. 박상수 변호사는 “인권을 중시한다는 진보 교육감이 학폭 피해 학생에게 폐교를 한 곳도 내줄 수 없다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영종 교육부 책임교육지원관은 “이전 방안을 찾았지만 각 시도 교육청과 협의하면서 이견이 있다 보니 시간이 흘러 지금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교육부 장관)가 센터를 방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업무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고, 대안을 마련하고 가는 방향으로 추진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해맑음센터에 머물던 30여 명의 학폭 피해 학생들은 원래 학교로 돌아가 가해자와 다시 마주하거나 시도 교육청이 운영하는 위탁교육기관인 ‘위(Wee) 센터’로 뿔뿔이 흩어졌다. 위 센터는 학폭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섞여 있어 피해 학생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형태라는 게 문제다. 센터 폐쇄 직전까지 머물렀던 7명의 학생들은 “교육부가 다시 우리를 가해자들 속에 던져 놓고 ‘알아서 살아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교육부가 우리를 버린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튼, 주말’이 취재를 시작하자 이주호 부총리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26일 오후 해맑음센터를 방문했다. 이날 이 부총리는 국가 수준의 학폭 피해자 치유 기관 설립을 검토하고 해맑음센터 재개를 위한 법령 근거와 예산 확보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센터 이전 및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언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