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프랑스 국가 공인 장인에게 수여되는 ‘MOF’ 메달을 목에 건 에릭 브리파 셰프.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렇게 생긴 버섯은 처음 봐요. 프랑스 세페 버섯과 비슷한 풍미가 나네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색색의 연등이 달린 서울 은평구 진관사. 세계 3대 요리 명문학교 ‘르 코르동 블루’의 에릭 브리파 셰프(학과장)는 대웅전 건너편 채마밭에서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과 표고버섯을 따고 있었다. 그의 바구니가 어느새 표고 향으로 가득 찼다. 조리실이 마련된 보문원으로 가던 그의 발길이 맷돌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이걸로 두부를 만든다고요?”

동그래진 그의 눈을 본 계호 스님은 불려놓은 콩을 맷돌에 넣고 돌렸다. 뽀얀 콩물이 스며 나오자 브리파 셰프는 손가락을 뻗어 맛을 봤다. “35년 넘게 두부를 먹었는데, 손으로 만드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 자연을 따르는 음식이군요.”

그는 프랑스 셰프로 가질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사람이다. 1895년 설립돼 줄리아 차일드 등 전설적인 요리사를 배출한 르 코르동 블루의 학과장이자, 프랑스 최고 장인에게 주는 ‘메이유르 우브리에 드 프랑스(MOF)’ 수상자, 세계적인 식당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모두 갖고 있다.

브리파 셰프가 최근 6박 7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유는 단 하나, ‘사찰 음식’을 배우기 위해서다. 전남 백양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서울 진관사에서 요리 시연을 한 그를 르 코르동 블루 한국 캠퍼스에서 만났다.

◇사찰 음식에 빠진 프랑스 셰프

-어떻게 사찰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16년 조계종과 협약을 맺고 파리와 런던 캠퍼스에 ‘채식주의 수업’ 교과 과정으로 사찰 음식을 가르치게 되면서부터다. 조계종 스님들이 해마다 두 번 파리와 런던을 방문해 시연 수업을 한다.”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

“인기가 많다. 선재 스님이 ‘한국 사찰의 발효 음식’을 주제로 요리 시연을 할 때는 교실이 꽉 찼다. 현재 유럽 셰프들의 화두는 ‘발효’다. 사찰 음식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발효 방법을 갖고 있다. 파리 캠퍼스에서는 발효 음식을 연구하고자 김치, 된장, 간장도 만들고 있다.”

-왜 발효가 화두인가.

“지금 세계 음식 문화에는 자연주의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물성 단백질 양은 줄이고 식물성, 즉 채식을 늘리는 것이 추세다. 적색육 섭취를 줄이는 건 건강뿐 아니라 목축업으로 인한 물 부족 현상 등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의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채식 트렌드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15년 전, 내가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서 총주방장으로 일할 당시 미국 뉴욕 출장을 갔을 때도 이미 채식이 트렌드였다. 마이클 잭슨, 내털리 포트먼 등 셀럽들이 채식을 즐겼다. 지금은 더 보편화됐다. 미술사에도 사조가 있듯, 요리사(史)에서는 지금 채식이 그렇다. 특히, 미쉐린 2·3스타 셰프들을 중심으로 파인다이닝에서도 유행이다.”

-당신도 채식을 즐기나?

“물론이다. 과거에 나는 스테이크를 좋아해 일주일에 5~6회 육식을 즐겼다. 그러나 이젠 의식적으로 2주에 1회만 먹고 있다. 적색육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소화기관에 무리가 간다. 고기를 먹을 때도 동물복지로 도축된 것을 찾는다. 그런 고기가 영양분도 더 많다. 현대인의 암 발생 중 40%가 식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사찰 음식의 장점은?

“사찰 음식에는 불교의 철학이 담겨 있다. 현재 트렌드와 맞닿는다. 선재 스님을 통해 5·7·10·30년씩 발효한 간장을 맛봤다. 시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장맛이 인상 깊었다. 장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한 정관 스님처럼 인플루언서가 나오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12년 전 나는 알랭 뒤카스, 피에르 가니에르, 알랭 파사르 등 세계적인 셰프 14명과 ‘콜레주 퀼리네르 드 프랑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연 존중, 농상공인 보호, 제철 식재료 전파다. 이는 사찰 음식과도 상통한다. 건강에도 너무 좋다. 한국에 머물며 사찰 음식을 먹는 동안 내 몸에 있던 불순물이 2㎏은 빠진 것 같다.”

-방한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템플스테이가 재미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공양을 드리고, 산에 올라가 나물을 뜯었다. 한국의 불교는 놀랍고 따뜻했다. 이 작은 나라에 2000곳이 넘는 사찰이 있고 이 중 150곳 이상이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1700년 전 시작된 불교가 현재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스님들과 불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절에서 만난 모든 이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를 진심으로 맞아줬다. ‘걱정 근심은 진관사에 두고 가라’는 스님들 말씀에 감동했다. 머물다 가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진관사 보문원에서 요리 시연을 하고 있다.

◇한식의 파인다이닝화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 방문은 33년 전이었다.

-그때는 왜 왔나.

“28세 때 일본 도쿄의 로열 파크 호텔 셰프로 부임하면서, 휴가차 서울에 왔었다. 그 후로도 한국에 자주 왔다. 올 때마다 서울은 대도시가 됐고, 선진국으로 탈바꿈했다. 어제 경복궁 돌담길을 2시간 30분 동안 걸었는데 산책로도 생기고, 청결하고 안전했다.”

-한식은 어떤가.

“당시 신라호텔에서 머물렀는데 33년 전이라 식당은 기억나질 않는다. 대신 정갈한 길거리 음식과 재래시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에는 종로구에 있는 식당 ‘발우공양’에 갔었다. 서촌에서 불고기와 파전도 먹었다. 프랑스에서도 한식당에 즐겨 간다. 비빔밥을 종종 먹으며, 르 코르동 블루 캠퍼스가 있는 파리 15구(한인 밀집 지역)에 단골 만두 맛집이 있다. 김밥도 좋아한다.”

-한식의 세계화가 화두다.

“충분히 될 것이라고 본다. 나라가 발전하면 식문화도 수출되기 마련이다. 한식이 인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째 개성, 두 번째 맛, 세 번째 접근성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요리로는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레바논 음식이 있다. 그다음이 한식이 아닐까 싶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조언한다면?

“파인다이닝화다. 일식은 고급스럽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식은 아직 그런 것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과 집대성이 필요하다. 음악도 어느 정도 계명을 익히고 기본을 익혀야 노래를 지을 수 있듯이, 요리도 15년 이상 수련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미식 강국이 된 것은 15세기부터 산발적으로 퍼져 있는 요리 지식을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프랑스 식문화가 등재됐다. 한국도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한국 요리사라면?

“첫째, 나는 엄마와 할머니의 요리를 면밀히 관찰하겠다. 둘째, 한국의 전통 요리를 공부하겠다. 특히, 사찰 음식은 5~10년 시대를 앞서간다. 셋째, 한반도에서 좋은 재료를 찾겠다. 특히 향토 음식을 활용하라. 외국인이 한국 여행을 와서 스시를 먹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도 어릴 적 맛있게 먹은 요리들이 사라진 경우가 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수와 계승에도 힘써야 한다.”

◇부르고뉴에서 자란 소년

-어떻게 셰프의 꿈을 꾸게 됐나?

“나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오세르에 있는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산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자연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14세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16세 때 큰 대회에서 수상했고, 19세 때 파리로 넘어가 본격적인 셰프의 길을 걸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조엘 로부숑을 만나 배운 것이다. 플라자 아테네 호텔 등 특급 호텔 근무 당시 미국 대통령 4명(바이든, 오바마, 클린턴, 부시)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영국 가수 믹 재거의 생일파티를 여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누구를 대접했다는 것보다 진심을 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맛없는 랍스터보다는 제대로 된 소박한 감자가 낫다’. 이것이 내가 로부숑에게 배운 것이다.”

-요리란 무엇인가?

“재료에 대한 이해다. 정성이고 사랑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이 많이 없어졌다. 요리가 쇼 비즈니스처럼 변해가고 있다. 가짜 셰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요리사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한 순간, 스승에게 요리를 배우던 기간, 어제 스님들과 같이한 요리. 모든 순간이 떠올라 한 가지만 고르기 어렵다.”

-미쉐린 별을 받았던 때라고 답할 줄 알았다.

“직업적으로는 별을 받았을 때 좋았다. 그러나 미쉐린은 타이어 회사에서 만든 레스토랑 가이드이다. 정치적인 면도 있고, 많은 논란도 있다. 점수 매기는 사람들은 요리사도 아니다. 난 오히려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장인에게 주는 ‘MOF’를 받을 때 더 행복했다. 나의 멘토, 나의 아버지, 동료 셰프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더 뿌듯하다. 내 요리를 맛본 폴 보퀴즈, 알랭 뒤카스, 조엘 로부숑 등이 맛있다며 안아줄 때 더 큰 긍지를 느낀다. 그들은 요리를 위해 30년 동안 하루 16시간 넘게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삶까지 희생한, 진정 요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평가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재료를 고르는 기준은?

“내가 어렸을 때는 진짜 연어를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양식이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토마토도 한여름에 먹어야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하우스에서 키운 토마토는 제 맛이라고 할 수 없다. 제철 특산물은 그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것이다. 그것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 요리사의 의무다.”

-MOF를 꿈꾸는 후배 셰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한국인 중 제과 부문 MOF를 받은 김영훈 명장이 있다. MOF는 ‘프랑스 최고 장인’이라는 뜻이지만 그 기회는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난 45년을 요리했지만, 여전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요리사를 오래하다 보면 입안에 설탕과 소금이 남아 음식이 달아지거나 짜지는 경우가 있다. 난 그래서 디톡스 차원에서 간헐적으로 일주일씩 소금과 설탕을 안 먹으며 미각을 관리한다. 전 세계 새로운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열정이 필요할 것이다. 매일, 평생,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