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 유강남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LG 응원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롯데 응원석에서는 전용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2011년 LG로 데뷔해 11년간 ‘프랜차이즈 선수’로 성장하다 롯데로 이적한 유강남 선수의 첫 친정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롯데 김민석 선수가 등장했을 땐 관중석에서 보이 그룹 콘서트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직의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현재 롯데 유니폼 판매 1위의 대형 신인. 작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은 김민석은 경남고나 부산고 출신이 아니라 LG가 연고 구단인 서울 휘문고 출신이다. 반면 ‘경남고 안방마님’으로 불린 김범석 선수는 LG가 지명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성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30일 잠실 경기에는 평일에도 2만명 넘는 관중이 모였다. 지난해 같은 시기 4위이던 LG가 1위를, 7위이던 롯데가 무려 3위를 달리며 지각 변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묘미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야구가 낭만 야구에서 실리 야구로 바뀌며 지역색이 많이 옅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는 고교 야구라는 확고한 지역 연고가 있었다. 지역 고교를 나와 연고 구단에 입단한 선수를 ‘성골’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한 팀에서 오래 활동한 선수를 다른 팀으로 보내는 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남이가’보다는 ‘잘하는 선수가 내 자식’이다. 감성보다 이성의 야구, 믿음의 야구가 아닌 불신의 야구라는 우스개도 나온다.
(1)10년 만의 전면 드래프트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은 먼저, 10년 만에 재개된 전면 드래프트 제도다. 연고지 최고 유망주를 미리 택하는 1차 지명이 오히려 전력 평준화를 해친다는 분석이 나오자 전면 드래프트로 바뀐 것이다. 올해는 한화·기아·롯데가 지명한 1·2·3순위가 모두 서울 출신 선수였고, 팬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잘 적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 마무리 투수로 큰 인기를 누리는 광주 동성고 출신 김원중도 잠시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한 2012년 지명됐다.
그래도 오래된 지역 야구 팬들은 아쉬울 수 있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이들을 위한 팬서비스도 센스 있게 한다. 김민석 선수는 롯데 팬들을 위해 경남고 유니폼을 입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한 해 앞서 지명된 광주진흥고 출신의 ‘아기 독수리’ 문동주 선수는 “우리 가족은 이제 기아가 아닌 한화를 응원하며,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류현진”이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팬들은 “사회생활 잘한다”며 흐뭇해 한다.
(2) 활발해진 트레이드
두 번째 이유는 활발해진 트레이드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는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선수를 선호하고, 트레이드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간판스타의 이동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팬들도 “못 키우면 사오면 된다”는 반응이다. 현재 롯데자이언츠 주전 중 부산 출신은 거의 없다.
각 구단 단장들이 모기업 임원 출신이 아닌 현장 출신 젊은 단장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트레이드를 더 활발하게 하는 것도 이유로 분석된다. 지난해 롯데 손아섭과 NC 노진혁이 대표적이다. 나성범 선수의 이탈로 고민하던 NC 다이노스의 임성남 단장은 손아섭 선수를 접촉해 3일 만에 계약에 성공했다. 롯데 성민규 단장은 노진혁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협상 첫날 자정에 가장 정확한 네이버 시계를 맞춰놓고 연락해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두 단장은 현재 KBO 내 가장 젊은 단장들이다.
물론 오랜 세월 선수를 응원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은 팬들로서는 아쉬운 게 당연하다. 손아섭 선수는 NC로 가기 전 부산 지역 신문에 작별 인사를 광고로 내기도 했다. 지금은 팬들도 떠나는 선수와 오는 선수 모두에게 박수를 쳐준다.
(3) 젊어진 야구팬들
프로야구에 새로 유입되는 20대 팬들이 많아지면서 지역감정 자체가 옅어진 것이 세 번째 이유로 꼽힌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발표한 2022년 프로야구 관람객 성향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 전후 프로야구 관람객 중 신규 고객은 27.7%로 나타났다. 구단별 조사 결과에서 이 신규 유입 팬들의 연령대는 KIA를 제외한 9개 구단에서 20대 팬들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SSG는 신규 유입 팬의 59.4%가 20대였다. KIA는 40대 신규 유입 팬이 32.4%로 가장 많았지만, 그다음은 20대 29.1%로 나타났다. 이들은 인천 출신으로 롯데 팬인 가수 카더가든처럼 지역 기반의 팀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순철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과거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지역 팜(기반)의 선수들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연고와 무관하게 진짜 필요한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