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이자 '난타' 제작자 송승환의 그때와 지금. 미국 뉴욕에서 '난타'를 공연한 2003년과 2022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제 시각장애인이 돼 지팡이를 잡고 있지만 표정은 더 밝다. /PMC프러덕션

그런 사람이 있다. 불행이나 시련과는 담쌓고 평생을 평온하게 살아왔을 것만 같은 사람. 내겐 송승환 선생이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어린 날부터 방송인으로, 연기자로, DJ로, 공연 제작자에 교수까지, 원하는 것은 다 이루고 살아온 사람처럼 보여서 그럴까? 아니면 바람 머리를 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젊음의 행진’을 진행하던 그 모습에서 약간 주름만 늘어갈 뿐 여전히 앳된 청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였을까?

아니다! 연극 동네에서 전해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만으로도 그는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그러니 인터넷 검색을 자주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송승환 선생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능력을 갖춘 진정한 능력자요, 천복을 타고 태어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봄밤’이라는 드라마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부부로!

와 드디어 그분을 만나다니,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선생님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입니다”라든가 “너무 기뻐요. 어릴 때 TV로 뵙던 분과 부부 역할을 하게 되다니” 같은 진심 반 예의 반 섞인 호들갑스러운 인사 따위는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아 조신하게 입 닫고 앉아 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나, 눈이 잘 안 보여요. 지금 요 정도 거리일 땐 형체만 뿌옇게 보이거든요.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건데,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척한다고 오해하지 마시라고. 우리 가족 역할 배우들한테는 미리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믿기지 않았다. 눈 상태가 심각하고 어쩌면 앞으로 점점 더 나빠져 실명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무심한 의사처럼 전하는데 당사자가 너무 담담하니까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어색하기만 할 것 같아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이야 기사도 나고 인터뷰로 다 밝혀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의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인지라 머릿속에선 그저 ‘어쩌면 좋아’라는 말만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입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우물거리고 있는데 그가 한마디 더 보탰다.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뿌예서 다 이뻐 보이고 멋있어 보여. 풍경도 훨씬 더 근사해 보이긴 하더라고. 허허.”

그 웃음이 너무 진짜여서 어이없게 같이 따라 웃고 말았다. 꽁꽁 감춰야 할 일도 아니지만, 굳이 여기저기 일부러 알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같이하는 배우들 마음 다칠까 첫 만남에 자기 상태를 알려준 덕분에 우리 가족은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놀랍게도 촬영하는 동안 그는 문자를 판독하는 OCR 기기의 도움을 받아 대사를 외우고 미리 세트장에 들어가 가구 위치를 확인하면서 동선을 점검하고 나면 촬영 내내 실수 한번 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죽 그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안 불편하세요?” 누군가 위로랍시고 건넨 바보 같은 질문에 그가 싱긋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많이 불편했지. 처음 겪는 일이니까. 그런데 찾아보니까 이것저것 방법이 있더라고. 문서는 음성으로 변환해서 다 읽을 수 있고 이렇게 문자 온 것도 다 들을 수 있게 해주고. 도움받을 수 있는 게 많더라고.”

19일 서울 동숭동 피엠씨프러덕션에서 송승환 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2.10.4 이태경기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낸 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일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사용 설명서 없는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눌러 가며 사용법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소년 가장으로 어려운 집안을 이끌어 왔고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인데 왜 고생 한번 안 해본 사람같이 느꼈던 걸까? 그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담담함! 그의 무기는 담담함이었다. 차분하고 평온하며 사사롭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 그 담담한 삶의 태도가 이 배우에게는 어떤 불행이나 고난도 별것 아닌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담담하다 못해 담대해진 그에게도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 강적이 나타났는데 바로 ‘그놈의 코로나’였다. ‘난타’ 공연도 그놈의 코로나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터라 사무실을 반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송승환 선생은 2006년부터 매년 해오신 연극인들을 위한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날은 조용히 부르더니 두툼한 봉투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봉투에 얽힌 사연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에게 오래전에 크게 신세 진 이가 있는데 한참 연락이 끊겼다가 어느 날 불현듯 이 봉투를 들고 찾아왔단다. 그때 신세 진 금액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이것으로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봉투를 내밀었고, 선생은 오래전 일이고 잊고 있던 일이니 내 돈이 아니라며 서로 돌려주기를 거듭하던 중 “그럼 당신 돈도 아니요, 내 돈도 아니니 어려운 연극인들을 위해 기부합시다!” 합의를 보았다며 봉투를 내게 건네줬다.

물끄러미 봉투를 보고 있던 나는 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라는 직무를 잠시 팽개치기로 마음먹고 봉투를 다시 밀어 드렸다. “올해 이미 기부해 주셨는데 또 받기는 염치가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드실 텐데 이건 선생님께서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돈이 아니라며 기부자조차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해달라는 바람에 나는 봉투를 신줏단지 모시듯 복지재단으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귀한 기부금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연극인 긴급 지원에 귀하게 쓰였다

분장실에서 배우들과 라면, 김밥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는 천생 배우 송승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가 담담함을 무기 삼아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 엄지손가락 번쩍 들고 ‘좋아요’ 꾹 눌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