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병이 있다. 책 속에서 본 요리는 먹어봐야 하는 병. 먹지 않으면 끙끙 앓는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기에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좋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이란 소설이나 산문집이다. 요리책이 아니기에 조리법은 설렁설렁 이야기하는 편이라 오히려 여백을 마음대로 채워 넣을 수 있어 더 좋다.
무라카미 류가 일본의 요리 프로에 나와 망고 카레 레시피를 소개했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를 읽고 따라한 적이 있다. 무라카미 류가 망고를 발가락만 한 크기로 자르라고 했다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말했기에, 나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루쉰의 단편 ‘쿵이지’에서 양념한 콩과 사오싱주(소흥주)를 마시는 걸 보고서 항저우식으로 콩을 조리해 사오싱주와 마셨다든가… 문학을 좋아하고 음식도 좋아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소박한 도락이겠다.
최근에는 김환기 산문집을 보다가 순대 튀김이라는 걸 따라해 보았다. 제목조차 ‘순대 튀김’인 글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껍질을 벗겨 삶은 감자를 절구로 짓이긴 후 버터와 우유를 듬뿍 쳐서 또 5분간 짓이기라고. 그러면 무른 찰떡같이 된다는 말에 느낌이 왔다. ‘무른 찰떡’이란 말에 어느 레시피보다 신뢰가 갔기에 그 질감을 구현하고자 절굿공이로 짓이겼다. 과연! 유백색의 감자 퓌레는 아름다웠을뿐더러 버터와 우유가 감자와 함께 섞이며 나는 냄새란… 이 감자 퓌레를 접시에 펼친 뒤 한 뼘 정도 잘라 버터에 튀긴 피순대를 얹으면 끝이었다.
이건 뭐. 먹기 전부터 좋았다. 맛있는 음식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맛이 있기에. 하지만 이 김환기식 순대 튀김을 그냥 먹을 수 없지 않나? 술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이 있고, 나는 이 음식이 그런 계열이라고 확신했기에 술을 골라야 했다. 선생께서는 순대 튀김이 본인이 자랑하는 유일의 노르망디식 요리라며 여기에 강한 술보다 컬컬한 우리 약주와 먹을 것을 권하셨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로제 와인도 어울릴 듯하고, 버번위스키도 좋을 것 같고, 칼바도스도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것은 뮈스카였다. 특별히 뮈스카를 좋아해서는 아니고, 선생의 산문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다 뮈스카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뮈스카 찬양이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나올뿐더러, 심지어 뮈스카를 그리워하다 뮈스카 씨를 받아와 마당에 심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을 주며 조석으로 들여다보아도 싹이 오르지 않는다며 슬퍼하는 이야기는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한 알 한 알 따먹는 게 아니라 송이째 들고 한 주먹씩 뜯어서 볼이 메이도록 그렇게 먹어야 한다. 체내에 스미는 향기로운 단물은 아무래도 미각의 최고봉이리라.”라고 하시질 않나. “포도 이름 그대로 뮤스카란 술이 있다. 이 술은 식사 전에 마시는 술로서 생포도 뮤스카의 맛과 향기를 그대로 지니면서 그보다 더 높고 깊은 농도로 사람에게 환희를 가져오게 한다.” 이러니 뮈스카를 준비하게 되었다.
‘뮤스카’가 나는 뮈스카라고 생각한다. Muscat라고 쓰고, 선생 말대로 포도 품종이기도 하고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하다가 이제는 좀 시들해진 샤인 머스캣도 ‘muscat’이라고 쓴다. 뮈스카는 불어식으로 머스캣은 영어식으로 읽은 건데, 뮈스카를 만드는 뮈스카 포도와 샤인 머스캣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샤인 머스캣 같은 달기만 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술은 좀 다르다. 단 술에만 있는 어떤 정서라는 게 있다.
내게는 잊지 못하는 단 술에 대한 추억이 있다. 오후 네 시쯤, 상사가 불러 갔더니 아이스와인과 에클레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사 가지고 온 손님과 상사가 그것을 먹으려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부른 것이었다. 편할 수 없는 자리였다. 아이스와인을 마시고 에클레어를 한입 먹는 순간, 나는 알았던 것 같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거라고. 십 년이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그때의 기분 좋은 충격이 남아 있다.
그 후, 이런저런 ‘단 술’을 마셔보았다. 포트와인으로 시작해 마데이라, 올로로소, 아몬티야도, 피노, 소테른, 바르삭, 파시토, 마르살라, 봄 드 브니즈… 디저트 와인이나 주정강화 와인이라고 부르는 그 술들을 말이다. 내가 준비한 뮈스카는 봄 드 브니즈(Beaumes De Venise)였다. 봄 드 브니즈는 프랑스 론 남부의 동네 이름으로, 뱅 두 나튀렐(vin doux naturel) 타입의 스위트 와인을 만든다. 내가 뮈스카 봄 드 브니즈를 순대 튀김과 마시려고 한 것은 소테른에 푸아그라가 공식이라고 하는 이야기(대표적으로 앤서니 보뎅)를 많이도 들어와서다. 소테른과 봄 드 브니즈가, 푸아그라와 피순대가 맛과 질감이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좋았다. 감자와 버터와 우유에, 피순대에 들었을 찹쌀과 배추와 선지를, 살구와 캐러멜 맛이 나는 뮈스카가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달까. 김환기식 순대 튀김은 쉽게 말해 검은 소시지 요리인 부댕 누아(boudain noir)와 비슷한데, 부댕 누아에 살구나 사과가 함께 나왔던 것도 떠올랐고. ‘역시 블러드 소시지에는 사과와 살구군.’이라고 조용히 감탄했다. 뮈스카의 단맛 끝에 어리는 씁쓸함도 적절했고.
김환기의 점화를 보고 마음이 시큰해 캔버스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말하기조차 아름다운데 왜 이렇게 서러운 느낌이 드나 생각했었다. 점화에 대해 선생이 쓰신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는 문장을 보고 그래서 나도 서러웠구나라고 생각했던 겨울밤이 있었다. 그 겨울밤과 점화와 김환기의 서러움을 생각하며 론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아름답고 명랑한 뮈스카를 마셨다. 그렇다고 서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