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의점 삼각김밥은 보드랍고 촉촉한데 우리나라 편의점은 왜 그에 미치지 못할까. 일본 편의점엔 대체로 화장실이 있어 아무나 이용할 수 있던데 우리나라 편의점은 왜 화장실이 없고, 있더라도 자물쇠로 꽁꽁 채워놓는 것일까. 일본 편의점은 시원스레 넓고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데 우리 편의점은 왜 좁고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일까.
같은 듯 다르다. 한국과 일본 편의점의 차이가 생긴 까닭은 여럿이지만, 핵심을 꼽으라면 프랜차이즈 계약 방식을 들고 싶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한국인으로 10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지인 Y가 있다. 그가 S사 편의점주가 되려고 세 차례 면접을 봤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가맹에도 면접은 있다. 그러나 형식 절차에 불과하다. 면접에서 떨어져 편의점을 열지 못했다는 사람은 본 적 없다. 일본은 ‘압박 면접’에 가까운 절차를 거치고, 가맹점주가 되려는 경쟁 또한 상당하다. Y가 최종 면접에서 탈락할 뻔한 이유를 들으니 더 놀라웠다.
2차 면접을 통과하면 신상과 관련한 여러 서류를 프랜차이즈 본사에 낸다. 그중 하나가 ‘금융 거래 확인서’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채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서류다. Y가 며칠 전 급하게 현금을 쓸 일이 있었는데 도장을 잃어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 없었단다(일본은 은행 거래 때 아직도 도장이 필요하다). 사정이 다급해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그걸 ‘부채’라며 “최종 합격하려면 부채를 모두 상환하고 깨끗한 상태의 금융 거래 확인서를 다시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나마 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Y를 위해 S사 담당자가 배려 차원에서 알려준 것이라고.
일본은 이렇다. 우리는 창업 희망자가 편의점을 열고 싶으면 본사에서는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받아주는데 일본은 본사가 가맹점주를 깐깐히 ‘고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본사가 편의점 자리를 빌린 경우가 많아, 마치 신입 사원을 뽑듯 가맹점주를 선발한다. 계약 기간도 대체로 15년이다(한국은 2~5년). 그러니 일본에는 ‘최저 수익 보장 제도’ 또한 있다. 매출이 나빠도 가맹점주의 기본 수입을 본사에서 보장해주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본사 직원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에도 일본 편의점 업계에서 가맹점주를 칭하는 용어는 ‘오나’. Owner의 일본식 발음이다. 거기에 존칭 ‘상’을 붙여 ‘오나상’이라고 깍듯이 예우한다. 일본어로 점장은 ‘덴초’라고 하는데, 일본 편의점에서 덴초는 알바 가운데 수석쯤 되는 사람이다. 가맹점주를 덴초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한국에서 분명히 나는 편의점 점주인데 사람들이 ‘점장’이라 부르는 말을 들으면 일본 경우가 생각나 괜히 웃는다.
계약서 내용 또한 다르다. 일본 편의점에 가맹하려면 반드시 조력자(助力者)를 명시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직계가족이어야 한다. 게다가 2주간 합숙 방식으로 진행하는 예비 점주 교육과정을 조력자도 꼭 이수해야 한다. 편의점을 기본적으로 ‘가업(家業)’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가족끼리 편의점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만, 가맹 계약서에 조력자를 명시하지는 않고, 각자 선택할 몫이다. 한국에서 조력자를 의무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사와 가맹점주의 관계가 그러하니 일본은 가맹점에 대한 본사의 통제력이 높다. 본사가 건물을 임차하니 되도록 넓은 곳을 선택하고,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왕창 집어넣어 “자, 운영하시오” 하고 들이민다. 본사가 서비스 항목을 늘리면 “아, 귀찮아” 하면서 한숨부터 내쉬는 한국적 풍경과는 이런 지점에서 또 다르다. 한국이 각자의 욕망을 부추겨 전국 편의점 5만곳을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만들어 인구 대비 세계 1위 편의점 대국이 되었다면, 일본은 ‘프랜차이즈’라는 사업 형식의 의미를 지키면서 꾸준한 확장을 지속한 것이다. 같은 프랜차이즈 형식이어도 구조와 강도를 살펴보면 확연히 다르다.
이러고 보니 느닷없는 ‘일본 찬양’처럼 되었지만 나는 무작정 일본 방식이 낫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조건 위에 우리 나름의 발전 방식을 택했을 따름이다. 일본인을 한국에 데려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라고 했어도 지금 한국과 같은 시스템을 갖췄을 것이다. 실제로 초창기 한국 편의점은 일본 편의점 업체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발전하였고.
현직 편의점 점주의 눈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에세이를 써놓고 아직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 책이 편집에 들어가기 직전 이른바 ‘노 재팬’ 운동이 일어나면서 출판사에서 출간을 보류했다. 편집자의 책상 서랍에 4년째 잠들어 있다. 요즘 한일 관계가 좀 나아지고 있으니 다시 출간하려고 원고를 살피다가 오늘 ‘예고편’ 격으로 살짝 보여드렸다.
참, 한국과 일본 삼각김밥 맛이 다른 것은 쌀이나 제조 공법 차이도 있지만 진열 ‘온도’ 차이 탓이 크다. 일본은 생산부터 판매까지 상온에서 삼각김밥이 유통되지만, 한국 삼각김밥은 냉장고에 들어갔다 전자레인지에 돌려가는 비운의 과정을 거친다. 일본처럼 하려면 우리는 식품위생법을 뜯어고쳐야 한다. 편의점 문제가 법과 정치 문제까지 닿는 순간이다.
편의점 하나를 갖고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같은 듯 다른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그러한 차이의 ‘이유’를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뼘 자라게 된다. 거리에 숱한 편의점이 이제 좀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당신도 한 뼘 자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