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벌만 예약받을 겁니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예요. 이 가격에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옷이에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들지 마세요. 내가 다 화가 나네.”

TV홈쇼핑의 쇼호스트가 아니다. 김어준씨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생방송 중 옷을 팔면서 한 얘기다. 김씨는 뉴욕, 파리 패션쇼에 섰던 한복 디자이너를 소개하면서 “개량한복이 싫어서 평소에 입을 수 있는 한국적 요소가 담긴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며 판매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카키색 재킷을 입고 모델처럼 돌면서 카메라를 향해 “어떠냐?”고 했다. 옆에 있던 디자이너는 “공장장님 맞춤형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김어준씨가 지난달 24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판매한 재킷을 입고 있다. / 유튜브
더탐사는 작년 11월 핼러윈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한 직후, ‘떡볶이 먹방’을 하고 있다. / 유튜브

◇돈 되는 것 다 팔아 수익창출

남성 재킷은 19만8000원, 여성 재킷은 17만8000원. 실시간 채팅창에는 ‘거저네’ ‘완전 싸다’ ‘일괄 30만원 합시다’라는 글이 쏟아졌다. 같은 시간 김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 ‘딴지마켓’은 서버가 다운됐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준비된 100벌의 옷은 완판을 기록했다. 김씨는 “이걸로 돈 벌 생각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제작진도 한 벌씩 사서 이벤트 있을 때마다 이거 입고 나오려고 한다”며 구매를 독려했다.

채팅창에 “곧 여름인데 옷이 두꺼운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감사하게 받았다가 가을에 입으면 되지”라고 받아쳤다. 김씨는 “디자이너 옷을 이 가격에 산다는 건 쉽지 않은 기회”라며 “너무 싸요. 너무. 30만~40만원 할 줄 알았거든요. 대통령은 원전 하는데 우리는 친환경 소재예요”라고도 덧붙였다. 점퍼, 선글라스, 양말 등의 판매를 예고하며 “속옷도 해볼까” 하면서 껄껄 웃었다.

인터넷에선 비판이 이어졌다. 커뮤니티 루리웹에는 “요새 수익이 시원찮다는 말이 있더니 맞는가 보다” “극렬 빠들한테 세금 걷는 거냐” “돈 벌기 너무 쉽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김씨의 ‘딴지마켓’에선 흑돼지 오겹살, 홍게, 누룽지, 치약부터 250만원을 호가하는 그림, 침대 등이 판매되고 있다. 김씨는 한때 유튜브 채널 수퍼챗(후원금)을 통해 주당 2억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며 전 세계 ‘톱’을 찍은 바 있다.

작년 말 민주당 성향 유튜브 ‘더탐사TV’는 광고용으로 ‘떡볶이 먹방’을 하다가 논란에 휩싸기도 했다. 생방송에서 핼러윈 참사의 유족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뒤, 떡볶이를 판 것이다. 앞서 자신들이 제기했던 각종 의혹과 관련한 소송 비용을 마련하려 한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이 떡볶이는 김어준씨의 ‘딴지마켓’에서도 팔고 있었다. 이들은 연신 “말랑말랑한 추억의 밀 떡볶이” “400개가 팔렸다” “이전에 판매한 양파즙도 품절이다” “더탐사에 광고하려면 재고를 많이 보유해야 한다”고 했다. 이 영상은 수만명이 보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전후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더탐사 역시 쇼핑몰 ‘더탐사몰’을 운영하며 족발, 오징어, 과일청 등을 판매하고 있다. 친야 성향을 자처하는 다른 유튜버도 수퍼챗, 광고 등 비슷한 방식으로 수익창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지자 지갑은 쉽게 열린다

김어준씨는 2000년대 초반 자신이 운영하던 딴지일보 사이트를 통해 ‘명랑완구 부르르’란 이름으로 성인용품을 판매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때부터 시사를 하는 사람이 다른 아이템으로 돈을 벌 수 있구나란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딴지 측은 이를 홍보하면서 “막대한 연구 비용과 지난한 개발 기간이 소요돼 개발이 완료된 것”이라며 “외제가 판치고 있는 성인용품 시장에서 국내 최초의 순수 민족 자본으로 이룩한 범국민 쾌거”라고 했다. 낯 뜨거운 표현도 넘쳐났다. 혹자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딴지일보 독자가 줄어들자 이런 일을 벌였다”고 했다.

2010년대 초반 나꼼수 때는 멤버들의 얼굴을 닮은 인형, 에코백 등을 10만원 가까운 가격에 팔아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수익 창출 기법은 보수 진영 쪽 유튜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파됐다. 문재인 정부 때 활발하게 활동한 가세연도 커피, 건강식품 등을 광고해주고 돈을 벌었다.

일각에선 시장 논리에 따른 정당한 수익 창출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수십년간 쌓아올린 노하우로 어떻게 하면 지지자들이 후원을 하는지 매우 잘 아는 것”이라는 비판도 하고 있다. 김씨 등 정치 유튜버가 얼마를 벌어들였는지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돈을 많이 벌다 보니 멤버 간 싸움이 나서 ‘남남’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지지자들은 오늘도 지갑을 연다. 정치권 관계자는 “연예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칭찬해주면 환호하고, 그 정치인이 비판을 받을 때 대응해주면 희열을 느낀다. 결국 정치인과 유튜버를 동일시하면서 뭘 줘도 아깝지 않다고 느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