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하와이 와이키키에서 관광객들이 서핑 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bongtographer_

스팸 무스비, 스팸 타코, 스팸 피자, 하다 하다 스팸 와플과 스팸 아이스크림까지…. 지난 4월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의 칼라카우아 거리 양쪽으로 기상천외한 스팸 요리를 선보이는 부스들이 늘어섰다. 스팸 통조림과 스팸 무스비 모양의 인형 탈은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편 하와이식 인사법 ‘샤카’로 관광객들을 반겼다. 매년 4월 와이키키에서 열리는 하와이의 대표 축제 ‘스팸 잼 페스티벌’에는 연평균 2만5000명의 인파가 스팸 요리를 맛보기 위해 몰린다.

하와이는 미국 내 스팸 소비량 1위로 연간 700만캔의 스팸을 먹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에서 식량 배급이 자주 끊기자 집집이 스팸을 비축하기 시작하면서 스팸을 자르고 볶고 끓인 요리들이 만들어졌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하와이 현지인 지나 진가오씨는 “하와이인은 스팸과 함께 나고 자랐다. 우리에게 스팸은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고 했다.

‘스팸 잼 페스티벌’에서 스팸 제조 업체인 ‘호멜 푸즈’가 신제품 메이플시럽으로 덮인 스팸을 공개했다. /@bongtographer_

하와이는 신혼여행지와 해양 레저의 천국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대자연과 함께 미식을 즐기는 가족 단위 여행객도 늘고 있다. 열대 과일이 듬뿍 들어간 아사히 볼부터 창의적인 스팸 요리와 싱싱한 해산물까지 ‘단짠(단맛과 짠맛)’ 조합을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하와이 미식 여행지를 소개한다.

◇달콤한 새우 vs 짭짤한 새우

와이키키에 도착한 첫날 밤, 하와이 오아후 지역 농장에서 난 신선한 재료를 고집하는 레스토랑 ‘루루스 와이키키’를 찾았다. 길게 뚫린 통창 아래로 와이키키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식당. 밤에는 지역 밴드의 라이브 공연도 열린다. 바삭한 코코넛 튀김옷을 입힌 탱글탱글한 새우를 달달한 망고 칠리소스에 푹 찍어 먹는 ‘코코넛 슈림프’가 대표 메뉴다. 럼 베이스에 건조한 오렌지 껍질로 만든 리큐어(혼합주), 라임 주스 등을 섞어 만든 하와이안 마이타이 칵테일을 한 잔 마시니 열대의 섬을 실감했다.

와이키키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후쿠 지역엔 새우 트럭이 밀집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메하메하 고속도로 인근에 자리 잡은 ‘조반니 새우 트럭’은 새우 트럭의 원조. 1993년 노스 쇼어 지역을 돌며 2~3시간씩 새우 요리를 팔던 푸드 트럭에서 출발해 지금 자리에 정착했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 레몬 버터로 양념한 짭조름한 새우를 밥과 함께 먹는 요리 ‘스캠피’는 한국인 입맛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와이 카후쿠 지역엔 새우 요리를 파는 푸드 트럭이 모여 있다. 그중 ‘조반니 새우 트럭’의 인기 메뉴 ‘스캠피’. 새우 양식장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새우를 레몬 버터, 올리브 오일, 마늘과 함께 볶아 만든다. /@bongtographer_

돌아오는 길엔 노스 쇼어 지역의 할레이바 마을에 들렀다.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할레이바는 이제 서핑 상점과 옷 가게, 기념품 가게가 밀집한 마을로 변했다. 대규모 설탕 농장이 있던 시절 세워진 오래된 건물들을 둘러보며 기념품 쇼핑을 할 수 있다. 이곳의 파타고니아 상점에선 하와이에서만 파는 일명 ‘파타로하(파타고니아+알로하)’ 디자인의 티셔츠를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늘 한국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할레이바 마을에서 나올 때쯤 누군가 하늘을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지붕들과 야자수 사이에 쌍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하와이에서 거북이·무지개·돌고래를 모두 발견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데, 이 중 하나를 할레이바 마을에서 이뤘다. 잦은 소나기와 맑은 공기, 쨍쨍한 햇볕 덕분에 사시사철 쉽게 무지개를 만날 수 있으니, 하와이에선 자주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다.

②하와이의 대표 축제 ‘스팸 잼 페스티벌’에 참가한 레스토랑이 스팸에 옥수수 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스팸 콘도그’를 선보이고 있다. ③5월 1일 하와이 ‘레이 데이’를 맞이해 카피올라니 공원에서 훌라댄스 공연이 열리고 있다. ‘레이’는 사랑과 감사의 의미를 담아 목에 걸어주는 꽃목걸이로 하와이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다. ④돌(Dole)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맛볼 수 있는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⑤마우이섬 마케나 주립공원에 속해있는 마케나 해변. 섬에서 가장 큰 해변 중 하나로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빅 비치’로도 불린다./@bongtographer_

◇플랜테이션 농장 체험

일년 내내 기후가 변하지 않는 하와이는 열대작물 천국이다. 와이키키에서 북서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코 하나 증류소는 와이아나 산맥의 300에이커 규모(약 36만7000평) 농장에서 재배한 토종 사탕수수로 ‘하와이안 럼’을 만든다. 설탕 공장의 부산물인 당밀로 럼을 제조하는 다른 증류소와 달리 이곳에선 직접 수확한 사탕수수를 착즙하고 발효시켜 증류한다.

‘농장부터 병까지(Farm-to-bottle)’ 직접 생산 원칙을 고수하는 이곳에선 럼 양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투어 가이드 앰버씨는 갓 수확한 사탕수수 막대를 착즙기에 넣더니 코코넛 워터 맛이 나는 달큼한 사탕수수 주스를 따라줬다. 앰버씨는 “34품종의 사탕수수를 기르는데 품종에 따라 단맛부터 톡 쏘는 맛, 붉은색부터 주황색까지 맛과 색깔이 다르다”고 했다. 이렇게 짜낸 사탕수수즙을 오크 통에서 4~5년 숙성시키고 발효와 증류를 거쳐 다양한 종류의 럼주를 만든다. 지역의 레스토랑과 협업해 맞춤 오크 통을 제작한다.

가까운 거리엔 글로벌 과일 유통 업체 ‘돌(Dole)’사의 파인애플 농장이 있다. 파인애플의 왕이라 불리는 제임스 돌이 1990년 첫 파인애플 농장을 세운 곳. 파인애플 토핑을 아낌없이 뿌려주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파인애플 인형, 파인애플 쿠키 등 각종 파인애플 관련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하와이 마노아 초콜릿 공장에서 ‘초콜릿 소믈리에’가 카카오 열매가 담긴 통을 들고 초콜릿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bongtographer_

이번엔 오아후섬의 동쪽 카일루아 지역의 마노아 초콜릿 공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기계로 가득한 공장을 상상했지만, 문을 열면 와인바처럼 홀 가운데 긴 테이블이 있고 ‘초콜릿 소믈리에’가 손님들에게 달콤한 향이 나는 카카오 차(茶)를 따라줬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은 소믈리에와 함께 카카오 열매부터 우리가 먹는 초콜릿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초콜릿 소믈리에 브랜든씨는 23종의 초콜릿 조각을 나눠줬다. 인공 향을 첨가하지 않았는데도, 토양에 따라 초콜릿에서 풋사과 향이 나기도, 말린 장미 향이 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산업용 초콜릿이 카카오 원두 함량이 10~20%인데 반해, 이곳 초콜릿은 70% 이상의 카카오 원두를 쓴다. 균일한 맛이 나지 않고, 조금씩 다른 맛이 나는 것이 특징. 브랜든씨는 “우리가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은 와인을 생산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면서 “농장의 토양과 수확하는 연도에 따라서 맛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투어 수익금의 일부는 하와이의 자연환경과 문화 보존을 지원하는 ‘트래블 투 체인지’ 등 비영리 단체에 기부한다.

카일루아 지역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휴가철마다 찾는 해변으로 알려진 카일루아 비치와 라니카이 비치가 이어져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4km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모래사장으로 현지인들에게도 사랑받는다. 바람이 세게 불어 대형 카이트(연)를 공중에 띄우고 바람의 힘으로 서핑 보드를 타는 ‘카이트서핑’의 성지로 알려졌다. 바다 위에선 색색의 연을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을 볼 수 있다.

해변 가까이 언덕에는 간단히 음식을 싸 와 먹는 피크닉 테이블도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테이크아웃 전문점 ‘히바치’에서 참치 포케 도시락을 사 왔다. 포케는 회를 올린 하와이식 샐러드로 참치·연어·새우 등 생선회 종류와 생강 쇼유·유자 폰즈 등의 소스를 선택할 수 있다. 한국에서 먹는 야채가 더 많은 포케와 달리 참치가 수북이 쌓인 포케를 맛봤다.

◇자연과 더 가까이, 마우이섬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보단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오아후섬보다는 마우이섬을 추천한다. 고층 호텔로 둘러싸인 오아후섬의 와이키키 해변과 달리, 마우이섬에는 바닷가 바로 앞의 저층 호텔이 많아 시야가 탁 트여 있다. 그중에서도 와일레아 지역은 와이키키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 마돈나·캐머런 디아스 등 톱스타들이 묵었던 고급 리조트들이 모여 있다.

와일레아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9km쯤 이동하면 아히히 키나우 자연보호 구역이 시작된다. 자연보호 구역엔 500년 전 화산이 마지막으로 분출했을 때의 흔적이 남은 용암 지대가 있다. 열대 산호와 멸종 위기종인 하와이 몽크물범, 대모거북, 혹등고래 등 해양 생물도 서식한다. 일부 구역에선 스노클링이 가능해 투명한 바다 속에서 산호와 용암 분출로 만들어진 바위는 물론, 얕은 곳에 사는 거북이와 열대어들을 관찰할 수 있다. 표지판에선 ‘책임’이란 뜻의 하와이어 ‘쿨레아나(Kuleana)’를 발견할 수 있다. 땅에 대한 존중과 자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는 하와이의 ‘쿨레아나’ 정신을 느껴보는 것도 하와이를 즐기는 방법이다.

저녁에는 마우이의 대표 디저트 ‘훌라 파이’를 맛볼 수 있는 ‘키모스 마우이’로 향했다. 초콜릿 쿠키 크러스트 위에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을 높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초콜릿 시럽을 들이부은 달콤한 디저트. 옛날 라하이나 해변으로 헤엄쳐 온 선원들이 먹던 음식으로 알려졌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선 일몰을 감상할 수 있으며, 거북이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다. 운이 좋다면 지는 햇빛을 쬐러 온 거북이들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