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胃大)한 도전.
GS25 편의점에서 한정 판매되는 컵라면 ‘팔도 점보 도시락’은 8인분짜리다. 기존 ‘팔도 도시락’을 8.5배 키운 초대형 컵라면으로, 끓이려면 물만 2.2ℓ 가 필요하다. 성인 남성 하루 섭취 권장량(2700 ㎉)을 훌쩍 뛰어넘는 3160㎉. 제 아무리 대식가여도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양이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입고와 동시에 초동 물량 5만개가 완판됐다. 제품의 핵심 공략층이 ‘먹방 유튜버’였기 때문이다.
◇유튜버를 겨냥하라
어떤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한국발 트렌드 ‘먹방’(Mukbang·먹는 방송)은 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워낙 콘셉트가 독특하다 보니 먹방 유튜버들이 입맛을 다실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들을 통해 젊은 고객층까지 수요를 넓히겠다는 전략. 가격이 8500원임에도 ‘팔도 점보 도시락’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현재 추가 생산을 준비 중이다.
“큰 거 왔다.” 유튜버들은 발빠르게 영상을 찍어 올렸다. 구독자 170만명을 거느린 먹방 유튜버 ‘홍사운드’도 뛰어들었다. 가열찬 젓가락질, 그러나 결코 줄어들지 않는 면발. 도전은 이어졌다. 장정 셋이서 꾸역꾸역 그릇을 비우는 구독자 99만명의 ‘삼대장’, 면식범(麵食凡)답게 김밥 두 줄까지 추가해 미션을 클리어하는 구독자 22만명의 ‘면상호’…. 챌린지 열풍에 구미가 당긴 일반 고객들도 편의점을 향하고 있다. 다만 GS리테일 관계자는 “혼자 말고 여럿이 먹기를 권한다”고 했다.
◇입 크게 벌려야 소문
이 같은 초대형 컵라면의 원조는 일본이다. 2020년 마루카식품이 내놓은 컵 야키소바 ‘페양 초초초초초초곱빼기 야키소바 페타맥스’가 그 주인공. 과장이 심한 명칭처럼, 기존 제품보다 7.3배 크다. 4184㎉. 포장지 겉면에 “절대로 혼자 먹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다. 그 금기에 오히려 먹방 유튜버들은 환호했다. 콘텐츠 한 편을 거저 뽑을 수 있는, 너무도 훌륭한 먹잇감이니까. 와구와구 입속에 라면을 욱여넣는 와중에 기상천외한 레시피도 등장한다. 마요네즈를 섞거나, 낫토를 곁들이는 식으로 다 먹기 위해 최적의 맛을 자발적으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인기에 힘입어, 마루카식품은 지난해 매운맛 신제품을 출시했다.
대대익선, 먹거리가 클수록 시청 효과도 크다. 이미 레드오션이 돼버린 먹방계에서 구독자를 확보하려면 원초적인 ‘비주얼 쇼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체적으로 수공예 ‘초대형’ 제품을 선보이고 먹어치우는 먹방도 상당수다. 수십 배 확대해 포장지부터 내용물까지 정교하게 재현해낸 초대형 ‘새콤달콤’(캬라멜), 초대형 ‘메로나’(아이스크림), 초대형 ‘아이셔’(사탕)…. 그러나 초대형 ‘아폴로’를 힘겹게 갉아먹던 대왕 음식 전문 유튜버 얌무는 말한다. “여러분들, 저는 그만 먹을래요.” 먹고사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다.
◇‘유튜버 특별판’ 협찬까지
그러자 아예 제조사 측은 ‘유튜버 특별판’을 제작해 무료 협찬에 나섰다. 지난 2월 방송인 겸 모델 주우재는 비상식적인 크기의 초콜릿 과자 ‘톡핑’을 선물받았다. 과자회사 오리온 측이 제공한 것으로, 기존 상품보다 포장 용기를 25배 늘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4㎏짜리 초대형 ‘와우껌’을 제작해 유튜버 및 인플루언서들에게 배송했다. 사이즈에 기겁한 먹방 유튜버 신쿡은 “5년은 먹을 수 있을 듯한 크기”라면서도 “맛은 똑같다”고 했다. 판매용은 아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제품 홍보를 목적으로 온라인 인플루언서들에게 대형 패키지를 제작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성비 좋은 광고 수단인 셈이다.
오리온 측은 ‘꼬북칩’ 개발자가 직접 100배 크기의 ‘꼬북칩’ 레시피를 공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코송이’ ‘고래밥’ 등의 특대형도 보여달라는 댓글 요청이 쇄도했다. 보는 재미를 위한 음식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면서, 흡사 정수기 물통 같은 ‘5ℓ 버블티통’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플루언서를 타깃으로 판매되는 등의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식이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22ℓ 버블티를 제작해 지게에 지고 다니며 하루종일 먹던 유튜버 나름TV의 댓글창. “당뇨병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