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가슴이 따뜻해지는 옛날 풍경이 가끔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젖먹이를 등에 업고 대여섯 살 맏이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는 서너 살 둘째 아이를 가슴에 안고 함께 나들이 가는 풍경입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보육과 교육의 어려움 탓에 결혼도 출산도 피하고 있는 세태 때문입니다. 학생 수 감소로 학교가 폐교되거나 통합되고 심지어 지방 소멸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고령화와 더불어 나라의 장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산 대응 예산은 332조원에 이르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최저 수준입니다. 물론 이 예산 가운데는 저출산 대응과 직접 관련이 없는 예산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투입된 예산에 비하여 성과는 처참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저출산 대응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출산율을 높이는 다양한 정책을 다시 수립해야 합니다. 정부 각 부처의 이해를 앞세운 예산 확보 다툼이 저출산 대응으로 포장되는 것을 막고 출산율 증가의 실질적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동수당·육아휴직 급여 등 현금 지원 예산을 적어도 OECD 평균 이상으로 높여 보육과 교육의 부담을 실감 나게 줄여 주는 것도 한 예입니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는 정부의 노력, 즉 정부의 정책이나 예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대 상황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국민 의식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문제인 만큼 온 국민이 함께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선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얼마 전 어느 원로 기업인이 저에게 문서 하나를 전하며, 정부 내에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니 검토해보고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출산 장려를 위한 정책 건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업인이 자기 사업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에 관하여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며 나름대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존경심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건의 내용의 요지는 이러하였습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정부가 지원한 출산 장려 관련 예산은 280조원인데 그 기간에 출생한 652만 명으로 나누면 1명당 4300만원이나 되지만, 과연 효율적인 정책이었나? 지금 출산율로는 20년 후 국토방위를 위한 절대 인력도 부족할 것이어서 국가의 장래가 걱정된다. 출산 장려를 위한 방책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출생 당사자나 부모 또는 대리인에게 1억원을 기부하면 그 금액은 소득공제 대상으로 하고, 수증자에게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조세 혜택을 부여하자. 이렇게 되면 출산자의 친족, 지인이나 고용 기업들이 출산을 축하하는 일에 나서게 되고 더불어 사회는 통합되고 더 따뜻해질 것이다. 미혼모나 생계가 어려운 임산부의 낙태나 영아 유기의 유혹을 억제하여 생명 존중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출생자를 특정하지 않고도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출산장려금을 수증, 배분하고 관리하는 기관을 둔다. 이 제도 도입으로 일시 조세 수입 감소가 우려도 되지만 수증자의 기부금 사용에 의한 시장 형성으로 2~3차의 조세 수입이 충당되어 결국 조세 수입 감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건의서에는 자녀 수가 많을수록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프랑스의 소득세 과세제도를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의 소득을 합산해 가족 구성원 수로 나누어 1인당 소득을 산출한 뒤 세율을 곱해 세액을 정하고, 다시 가족 구성원 수를 곱하여 가족의 총부담 세액을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심층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어 관계자에게 이를 전달하였습니다. 특히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발상을 전환하여 민간에게 역할을 분담시키고 그것과 중복되는 정부의 지출을 줄이면서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