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사옥 1층 ‘뽀로로’ 조형물 옆에 선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 “외국 출장 다니면서 ‘우리 애들 뽀로로 덕에 한국말 배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통령 이름을 소개하는 건 시간 낭비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뽀로로. 어린이들의 대통령, 그래서 ‘뽀통령’으로 불리는 이 꼬마 펭귄 캐릭터가 올해로 탄생 20년을 맞았다. 2003년 6월 19일, EBS에서 처음 방송 전파를 탔다. 젖병을 갓 뗀, 전국 모든 유아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여진은 지금도 이어진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드러누워 생떼 쓰던 아이마저 벌떡 일어서게 하는, 가히 마술적 노래라 할 ‘뽀로로’ 주제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노래가 최근 한 대학 축제 무대에서 ‘떼창’으로 울려 퍼졌다. 스무 살 청춘들이 어떤 굴레도 없던 자신의 황금기를 떠올리며 목청껏 한마음이 되는 장관이었다. ‘뽀로로’를 기획했고, 이 노랫말을 썼으며, 그래서 ‘뽀로로 아빠’로 불리는 최종일(57) 아이코닉스 대표는 “유아에서 출발했지만 이젠 전 세대로 넓어졌다”며 “뽀로로가 서른, 마흔 살 넘어서도 튼튼하려면 지금 더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처럼 생각하면 망해

'뽀로로'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캐릭터 친구들. /ⓒ아이코닉스·오콘·EBS·SK브로드밴드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우체국에서 ‘뽀로로 우표’를 발행했다. 판매 개시 두 시간 만에 60만장이 팔려나갔다.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는 크게 여덟이다. 펭귄(뽀로로·패티), 북극곰(포비), 사막여우(에디), 비버(루피), 벌새(해리), 공룡(크롱), 로봇(로디). 이들이 한 마을에서 화목하게 논다. 대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설정이긴 하다. “남극 펭귄이랑 북극곰이랑 어떻게 같은 동네에 살아요?” 2001년 기획 단계에서 실제로 나온 지적이다.

–이상하긴 하네요.

“타당한 지적입니다. 동시에 고정관념이죠. 수차례 회의하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디즈니 만화 ‘곰돌이 푸’를 보게 됐어요. 거기서는 곰·호랑이·돼지가 서로 친구입니다. 말이 안 되죠. 호랑이가 돼지를 가만 놔둘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그런 상식이나 법칙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요?

“아이들이 좋아할지, 아닐지죠.”

이런 판단은 처절한 실패에 기인한다. 2001년 창업 후 내놓은 첫 애니메이션 ‘수호요정 미셸’의 쓰디 쓴 교훈. “대참패였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동화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어요. 제가 공부해온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들었죠. IMF 직후였습니다. 얼마나 절치부심했겠습니까.”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요?

“이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린 마켓에 작품을 가져갔습니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좋아할 작품이 아니라더군요. 뭔가 깊은 생각을 유도하는 것 같다, 이건 아이들이 아니라 너를 위해 만든 작품 같다. 충격받았습니다. 사실이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언젠가 꼭 소재로 쓰리라 마음먹고 있다가, 그래 지금이야, 했던 거니까요. 감동의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으니, 시작부터 패착이었던 거죠.”

◇자동차 광고맨의 변신

1997년 방영된 국산 3D 애니메이션 '녹색전차 해모수'. 최종일 대표가 야심차게 제작에 참여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KBS·대원동화·금강기획

열망은 훨씬 오래전부터 꿈틀거렸다. 대중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1991년 현대그룹 광고 계열사 금강기획에 입사했다. “자동차 광고를 5년 했습니다. ‘포터’ 같은 상용차, 주로 트럭을 담당했죠. 그런데 광고라는 건 옳고그름이 철저히 광고주에게 달린 콘텐츠입니다. 나도 소비자와 바로 맞닿은 걸 만들고 싶은데…. 조바심이 생겼죠.” 1995년 신사업팀에서 애니메이션사업팀 기획안을 제출했다.

–왜 애니메이션이었습니까?

“영상 분야에 영화·드라마 등이 있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보였습니다. 그때 떠올린 게 TV 애니메이션이었죠. 만화영화 안 보고 자란 사람 거의 없잖아요. 산업적으로도 아직 무르익지 않았었고요. 반대로 말하면, 발전 가능성이 컸죠.”

–할 만하던가요?

“처음 낸 결과물이 1997년 ‘녹색전차 해모수’였습니다. 최초의 국산 3D 만화였고, 일본에도 수출했죠. 그런데 성공과 실패는 간단해요. 손익분기점을 넘었나 못 넘었나. 못 넘었어요. 다음 작품도 질적으로 향상됐지만 사업적으로는 잘 안 됐습니다. 막연히 ‘퀄리티가 좋으면 봐주겠지’ 생각했는데, 그제야 전략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그러나 IMF 후폭풍은 거셌고, 2001년 회사가 영국계 기업에 매각되면서 팀은 공중분해됐다. 포기할 수 없었다. 최 대표가 내린 결단은 “새 회사를 차리자”였다. “당시 채수삼 사장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독립해서 제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건데, 임차료는 낼 테니 빈 사무실만 쓰게 해달라고요. 그리고….”

–그리고요?

“그간 회사에 큰 손실을 끼쳤지만 이제부터 은혜를 갚겠다, 투자해달라고요. 어이가 없었겠죠. 그런데 사업계획서를 가져와보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저희 자본금이 5억원이었는데, 2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그만둔 회사에 차린 사무실

새 회사를 차렸다. 그만둔 회사, 사라진 부서의 빈 사무실에서 전 직장 동료 5명과 의기투합했다. 그중 만화가는 한 명도 없었다. “생소한 개념이었을 거예요. 당시만 해도 국내 업계는 외국 회사에 그림을 납품하는 하청에 가까웠거든요. 인건비가 높아질수록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죠. 이건 아니다, 장기적으로 크려면 우리가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 그림은 아웃소싱하자.”

–난관이 많았겠죠?

“벤처기업 선정 신청을 했어요. 세제 혜택 같은 게 있거든요. 심사위원으로 모 대학 애니메이션학과 교수가 와서는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그림 그리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애니메이션 회사냐’고 묻더군요. 열심히 설명했죠. 영화 기획사 가면 거기 카메라가 있습니까, 배우가 있습니까? 우린 스토리를 개발합니다. 결국 선정에서는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뽀로로’가 태어났군요.

“원점에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수호요정 미셸’로 쓴맛을 봤으니까요. 우리 경쟁자는 누구인가.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연령층을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승산이 없었죠. 그런데 의외로 유아용 콘텐츠는 별로 없더군요. 그래, 유아용이다. 다른 경쟁자는 미국·유럽인데 대부분 교육적 메시지가 강했습니다. 조금 심심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아이 둘을 키우는데요, 애들은 재밌는 건 아무리 말려도 찾아봐요. 그래, 너무 교육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보자.”

“노는 게 제일 좋아” 노래 첫마디도 거기서 나왔다. 그리고 유아 애니메이션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동물, 펭귄을 골랐다. 장난꾸러기 펭귄과 어울리는 조연을 하나둘 고안했다. 캐릭터 개발 및 영상화 작업은 제작사 오콘과 진행했다. “반년 정도 좀처럼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질 않았다”고 했다. “창작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되질 않는다고 봐요. 대다수가 좋다고 해도, 뭔가 느낌이 오지 않으면 안 돼요. 열 명쯤 되는 디자이너는 속이 뒤집혔겠죠. 대체 원하는 게 뭐냐고.”

–원하는 게 뭐였습니까?

“뽀로로의 정체성은 개구쟁이, 되든 안 되든 해보는 아이예요.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가졌어요. 작지만 날개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딴 건 몰라도 고글이나 파일럿 모자 같은 소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은 ‘뽀로로’의 상징이 됐죠.”

–이름은요?

“펭귄이니까 ‘P’로 시작하는 걸 궁리했습니다. 평일에는 자정 넘어 퇴근하니까 주말만 되면 아이들이 제 주변에서 떨어지질 않는 거예요. 아내가 한마디하더군요. 쪼르르 쪼르르 엄청 쫓아다닌다고. 그 어감이 너무 귀여웠어요. ‘쪼르르’ 앞 글자를 ‘P’ 발음으로 바꿔봤죠. 뽀르르… 뽀로로…?”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리스크가 있었다. “코엑스에서 사업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주인공 이름을 소개하는데, 갑자기 웅성웅성. 앞줄 누군가가 소곤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뽀르노’라는데? 머리가 하얘졌죠. 너무 치명적인 오해니까요. 곧장 해외 바이어들 대상으로 어감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응답이 나와 그제야 한숨 돌렸죠.”

◇北과도 손잡은 뽀로로, 전 세계로

서울시 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유아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 이 후속작 역시 대성공을 거뒀다.

‘뽀로로’는 북한과의 합작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에 투자를 유치하자, 당시 진행하던 대북 사업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2년 북한 삼천리총회사가 ‘뽀롱뽀롱 뽀로로’ 20회 분량을 제작해 납품했다. 그 덕에 예기치 못한 논란에도 휩싸였다. 2011년 미국이 북한산 기술로 제작한 모든 제품의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뽀로로’도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뽀로로처럼 대중에 널리 보급된 영상물은 예외”라고 공식 부인했다.

–추가 협력은 없었나요?

“두 차례 제3자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한 번은 유럽, 한번은 중국에서요. 7년 전에는 중국 단둥으로 가서 직접 북한 상황도 체크했죠. 하지만 정치 상황이 너무 민감했습니다.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거기 스튜디오를 조성하겠다고 통일부에 의견도 전달했어요. 너무 오랫동안 문화 교류 기회가 끊겨 아쉽습니다.”

이후 ‘뽀로로’는 명실공히 국가대표 캐릭터가 됐다. 유럽 공중파에 진출하고, 전 세계 180국에 수출됐으며, 2015년에는 자유경제원 기업가연구회가 ‘뽀로로’ 경제효과를 5조7000억원으로 집계하기도 했다. 완구·식품 등 파생 상품만 3000여 종으로 늘면서 현재는 이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진출 유공으로 최 대표는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시죠?

“저희 집 애들 키우면서, 동네 서점 동화책 코너에서 아이들 관찰하면서 씁니다. 소재 자체는 특별할 게 없어요. 악당 물리치는 권선징악적 콘셉트도 아니고요. 이를테면 패티의 생일날, 뽀로로랑 크롱이 선물을 고민합니다. 케이크를 만듭니다. 처음엔 책도 들춰보지만 결국엔 자기들 방식대로 합니다. 아이들은 절대 곧이곧대로 안 하거든요. 요상한 케이크가 나와도, 즐겁게 같이 먹고요. 이런 평범함이 아이들이 뽀로로를 ‘내 친구’로 인식하게 하는 것 같아요.”

‘뽀로로’ 10주년 때 판교에 사옥을 세웠다. 최 대표의 집무실에는 유튜브 ‘골드 버튼’ 9개가 벽면을 꽉 채우고 있다. 구독자 100만명이 넘으면 유튜브 본사에서 보내주는 일종의 공로패다. 구독자 1000만명을 인증하는 ‘다이아몬드 버튼’도 있다. “저거는 ‘뽀로로’가 아니라 ‘꼬마버스 타요’가 받은 거예요. 인도네시아 구독자만 1000만명 넘었어요.”

2008년 서울시 버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꼬마버스 타요’를 내놓으며 사세는 급격히 커졌다. 서울시 교통 시스템 홍보를 위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총괄하게 된 것이다. 흥행에 성공해 ‘타요’처럼 꾸민 버스가 서울 시내에서 운행되기도 했다. 최 대표는 “현재 ’뽀로로’ 유튜브 월 조회 수가 6억, ‘타요’는 7억”이라고 했다.

–서울시 버스가 왜 해외에서 인기죠?

“‘타요’는 ‘뽀로로’보다 훨씬 로컬리티가 강한 콘텐츠예요. 근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유명 연예인들도 주제곡 커버 영상을 찍어요. 봉준호 감독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제는 글로벌리티를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 스토리만으로 보편성을 얻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만드는 다음 20년

팬들이 만든 패러디의 산물 '잔망 루피'는 예상치도 못한 행운이었다. 패션 브랜드 스파오가 ‘잔망 루피’를 모델로 제작한 화보. /ⓒ아이코닉스·오콘·EBS·SK브로드밴드

문화는 유전(遺傳)된다. ‘뽀로로’에 열광하던 20년 전 꼬마들은 이제 어엿한 소비 사회의 주축이 됐다. 그리고 그들이 ‘뽀로로’를 재창조하고 있다. ‘잔망 루피’는 그 대표적 예다. ‘뽀로로’에 등장하는 순하디 순한 분홍 비버 캐릭터, 그러나 이 설정을 완전히 비틀어 어딘가 불량스러운 녀석의 얼굴을 2020년 한 네티즌이 제작해 올린 것이다. 이후 자발적인 합성 열풍이 일며 밈(meme·문화유전자)으로 퍼져나가자, 아이코닉스는 ‘잔망 루피’ 공식 생산에 뛰어들었다. 출시 3년이 채 안 돼 ‘뽀로로’ 전체 매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 됐다.

–행운의 선물이었네요.

“20년 동안 열심히 했다고 주신 선물 같아요. 요새는 북극곰 캐릭터 ‘포비’를 갖고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요새 초등학생들은 통성명을 이렇게 한대요. 너 아직 ‘뽀로로’ 보니? 생애주기에서 ‘뽀로로’를 반드시 거치는 세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에 형성된 또래의 공감대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발견했습니다.”

–대기업 인수설도 있었죠?

“하하, 디즈니요? 공식 제안은 아니었어요. 다른 대기업에서도 여러 차례 매각 제안을 했습니다. 이쪽 콘텐츠 산업이라는 게 순발력이 중요해요. 소신이나 주관도 많이 관여하고요. 대기업 특성상 쉽지가 않아요. ‘뽀로로’가 대기업 우산 아래 들어갔을 때, 오히려 제약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해 모두 거절했습니다.”

–승승장구의 연속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큰 위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위기라는 위기의식은 있습니다. 우리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 이런 안일함이 위기를 불러올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경쟁자는 강해졌고, 볼거리는 늘었어요. 갈 길이 멉니다.”

–‘타요’ 이후 히트작이 없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간 고만고만한 작품을 냈다는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높아진 눈높이를 넘는 게 과제예요. 내부적으로 파격적인 차기작을 3개 제작하

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힌트를 주신다면.

“‘스타워즈’ 같은 우주 SF도 준비 중입니다.”

최 대표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대사를 언급했다.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해.” 올해 하반기 ‘뽀로로’ 시즌8이 나온다. “다음 달 조촐한 20주년 이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거 말곤 없어요. 아직 샴페인 터뜨릴 때는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지금 책상에서 다음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