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혼자 입에 피자 물고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유튜브를 보고 있더라.”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놀이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어느 음식 배달 기사의 글이다. 함께 올린 사진에는 환한 실내에 미끄럼틀과 볼 풀장이 갖춰져 있었다. 얼핏 키즈카페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한 가정법원에 마련된 돌봄 시설이다.
이어지는 배달 기사의 글. “엄청 넓은 곳에 맡겨진 아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공기도 차갑고, 보육사 한 분이 아이와 함께 있을 뿐. 마음이 스산해서 그 자리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게시물엔 ‘애들은 죄가 없죠’ ‘아이가 없을수록 더 행복한 놀이방이네요’라며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자녀가 쓰던 장난감을 놀이방에 기부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어쩌다 이런 슬픈 놀이방에 가게 된 걸까.
◇법원에 어린이 놀이방 생긴 사연
가정법원 내 어린이 시설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부부가 법원을 찾을 때 자녀를 맡기는 공간이다. 이혼 재판을 하려면 부모가 모두 법원에 출석해야 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머물 수 있도록 놀이방처럼 꾸며놨다. 지난해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은 3만9000여 건으로 전체 이혼의 41.7%에 달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재판을 받는 동안 법원 복도를 혼자 서성거릴 아이들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서울가정법원을 시작으로 대전·대구·광주·부산 등 다른 가정법원에도 도입됐다. 현재는 서울, 대전 등에선 놀이방은 운영하지 않는다.
부모 손을 잡고 가정법원을 찾은 아이들은 놀이방 혹은 아동실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1∼2시간가량 머물러야 한다. 어린이 보호 시설은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뽀로로·타요·코코몽 등 인기 캐릭터 인형과 아이언맨 가면, 보드게임 등 연령대별로 선호하는 장난감을 갖췄다. 양육권 소송을 하면 한쪽 부모가 자녀와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판사 명령에 따라 주기적으로 부모와 자녀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하는데 이럴 때에도 법원 내 어린이 시설을 이용한다. 대전가정법원에선 유아, 초등학생 자녀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미술 치료, 모래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부부가 원만하게 이혼 협의를 하지 못해 재판이 길어지면 아이들도 법원 아동 시설에 더 자주 가야 한다. 김성희(41)씨는 3년 전 남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한 가정법원 놀이방에 다섯 살 딸을 수차례 맡겼다. 김씨는 “재판 끝나자마자 남편이 동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갈까 봐 불안해 법원 놀이방을 이용했다”며 “재판 직후 아이가 ‘장난감 나 혼자 다 갖고 놀 수 있어. 내일 또 오자’고 말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졌었다”고 했다.
◇이혼 후 부모·아이 만나는 통로
이혼 절차가 끝나면 양육권이 없는 비(非)양육 부모는 자녀를 제대로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법원에선 이를 막기 위해 이혼 후에도 부모와 자녀가 원활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인 면접교섭센터를 운영한다. 이혼 부부들이 키즈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자녀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중립 장소인 법원을 찾게 하는 것.
면접교섭센터도 부모와 자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어린이 놀이방처럼 조성했다. 부모가 이혼한 상대 배우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아이와 만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 양육자와 비양육자 부모는 서로 다른 출입구로 면접교섭센터에 들어간다. 양육자가 별도 대기실에 머무르는 사이 비양육자가 자녀와 1시간가량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모든 과정은 반투명 유리 뒤 관찰방에서 가사 조사관과 전문위원이 참관한다. 아이에게 이혼 상대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는지, 학교나 집 주소 등 개인 정보를 물어보지는 않는지 살핀다. 비양육자 대부분이 아버지인데, 가정 폭력 사유로 이혼한 경우가 있어 전문위원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가정법원 관계자는 “지난달 이혼 3개월 만에 초등학생 아들을 만난 한 40대 초반 아버지는 한 시간 면접 교섭이 끝나 아들을 보낸 뒤 놀이방 한가운데서 무릎 꿇은 채 오열했다”며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꾹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선 ‘비양육자’와 ‘양육자’라는 법률 용어 대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이혼했거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지만 결국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