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해는 너무 놀랍다. 그녀 자체가 한 편의 시다.”(BBC 앵커 소피 라워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 ‘첼시 플라워쇼’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황지해(47) 작가의 정원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였다. 지리산의 약초 군락을 모티브로 해, 작은 개울과 약초 건조장을 품고 있는 그녀의 정원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세계적 디자인 거장 피트 아우돌프는 “그녀의 정원은 완벽에 가까운, 진정한 정원”이라고 말했고,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는 “지리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BBC에서 다른 정원들이 3분가량만 방송됐을 때, 그녀의 정원은 22분이나 전파를 탔다.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쇼가든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황지해가 세계인을 놀라게 한 건 정원만이 아니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과의 포옹은 그녀를 ‘첼시의 스타’로 만들었다. 찰스는 그녀의 정원을 찾아 ‘정말 맘에 든다(I love it)’ ‘경이롭다(marvellous)’ 등의 감탄사를 연발하고 그녀와 포옹했다. 영국 왕실 인사가 대중과 악수 외 다른 물리적 접촉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영국 왕립원예협회 앰배서더인 제이미 버터워스는 “(왕의 포옹은) 첼시에서 처음 일어난 일로, 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했다.
그녀가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첼시 플라워쇼에 진출했을 때다. 당시 ‘해우소 가는 길’로 아티즌가든 부문 최고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도 ‘DMZ: 금지된 정원’으로 쇼가든 부문 금상을 받았다. 그리고 11년이 흐른 올해, 화려하게 첼시 플라워쇼에 복귀했다. 조경과 원예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정원은 매번 세계인의 마음을 잡아끈다.
런던에서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이전 작업을 하고 있는 그녀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그녀의 정원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예컨대, 유년 시절을 그리는 대목. “어릴 때 엄마의 유실수가 한가득 심겨 있는 야산이 있었어요. 산길의 씀바귀꽃, 나팔꽃, 찔레꽃이 좋았어요. 먼 길에 제가 지칠 때쯤이면 엄마는 산딸기 군락지에 멈춰 서 주홍색 빛나는 산딸기를 두 손 가득 채워주셨어요. 얼마나 달콤하고 향긋하던지…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디저트도 그 향기와 찬란한 색감은 흉내낼 수 없어요.”
◇찰스 왕과의 포옹… 첼시의 스타 탄생
-196년 역사의 첼시 플라워쇼에서 또 큰 상을 타셨습니다.
“세 번의 전시를 통해 이제야 한국 정원이 무엇인지 조금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수상의 의미는 한국 산야의 가치가 인정받은 데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운 좋은 전달자일 뿐이에요.”
-정원 디자이너는 ‘전달자’라기보단, 정원이란 세계를 설계하는 ‘창조자’에 가깝지 않나요?
“전혀요. 제가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것은 값없이 받아온 많은 도움과 사랑 덕분이죠. 창작 아이디어 또한 자연이 오랜 세월 만든 환경, 선조들이 일궈온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제 생각과 마음, 어느 것 하나 제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저를 전달자라고 표현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이번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았어요. 투병은 원망과 설움, 절대 고독의 시간이었죠.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작은 부작용들과 함께 살게 됐어요. 왼쪽 귀는 청력을 잃었고, 눈물도 한쪽에서만 나요. 이제는 고요한 곳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고, 자연의 소리가 아닌 소리는 불편해요. 살기 위해 맨발로 산을 걸었어요. 오래 전, 산은 병원이자 약국이었죠. 현재의 정신적, 육체적 모든 문제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기에 생긴 것이라고 봐요.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본래 있던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지리산은 한국의 어머니산이죠. 수십억 년 된 편마암과 아침 햇살이 약초를 길러내는 곳….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식물의 관성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이 생존하는 법이란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황지해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이 싸운 병마가 뇌종양이었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인 병명을 밝히는 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참 막막했었거든요.”
-제작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요.
“올해 특히 (주최 측의) 요구 사항이 많았어요. 탄소 배출 때문에 정원에 쓰일 초목을 영국 현지에서 조달하길 바라더군요. 어렵게 30년 전 지리산과 한라산, 울릉도 등지를 돌아다니며 식물을 채집한 영국 부부를 찾아 때죽나무, 함박꽃나무, 산초나무, 노각나무 등을 구했습니다. 나도승마, 층층둥굴레, 한라개승마, 요강나물 등 우리나라 자생종과 희귀 식물들을 구한 것도 극적이었죠. 공사 기간 동안 비가 자주 왔던 것, 도합 200톤에 달하는 바위들을 옮기는 것도 참 어려웠어요.”
-왕에게 포옹을 요청하다니, 대단합니다.
“하하. 그날은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던 날이었어요. 컨디션이 별로여서 잠시 쉬려고 하는 순간 왕이 오셨고, 다급한 상황에서 할 말을 까먹었습니다. 약초 건조장 안에서 왕과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됐는데 ‘이 정원을 영국에 가져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감사한 마음에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영국 상류사회의 예법을 잘 몰라요. 안 되는 영어로 ‘포옹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주변에서 야유와 탄식이 나왔습니다. 순간 ‘뭔가 잘못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왕이 관계자에게 제 말뜻을 물은 뒤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왕이 간 뒤에 영국 기자들이 달려오더군요.”
-가장 좋은 찬사는 무엇이었나요.
“‘너의 정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흐른다’는 말요. 한국 정원은 유연하고, 변화무쌍하며, 영속적이란 극찬이지요.”
-’백만년 전으로부터의 편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영국 남부 서리(Surrey) 지역의 한 부호가 정원의 일부를 사서 한국 정원을 조성하기로 했어요. 수익금과 남은 정원은 영국 전역에서 암센터를 운영하는 매기재단에 기부할 계획입니다.”
◇세계를 홀린 승부수는 ‘K정원의 고유성’
황지해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한국적인 것’이다. 첼시 플라워쇼에는 해우소, DMZ, 지리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 2014년 런던 미니어처 가든쇼에는 독도를 주제로 한 작품을, 2015년 서울정원박람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주제인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적 주제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첼시쇼와 같은 세계적 박람회는 치열한 경쟁이에요. 저의 승부수는 한국 정원이 가진 특별함, 다시 말해 ‘다름’이에요. 우리 이야기와 우리 식물로 차별화를 시도한 거죠. 국제 대회는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줘요. 좀 더 편하고 자유롭죠.”
-한국 정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심함, 관조적 아름다움.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는 선조들의 정신적 태도라 생각해요.”
-풀 한 포기까지 스스로 심는다고요. 당신을 일하게 하는 동력은 뭐죠?
“모든 디테일에 심장이 있다고 믿어요. 식재하는 시간은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저만의 소중한 시간이기도 해요. 작업을 안 하면 불안해요. 작업은 결국 나를 불안에서 구원해주는 셈이네요.”
-정식으로 조경과 원예를 배우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많아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먹고살 길은 막막한데 작업은 하고 싶고…, 스물두 살부터 작업과 생존을 병행하기 위해 현장에서 살았어요. 작은 골목 벽화를 그리면 돈을 준대서 관공서가 원하는 그림을 열심히 그렸지요. 현장이 곧 삶이었고, 모든 지식은 현장에서 배웠어요.”
정원 디자인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반, 한 상업용 조형물을 만들던 공사 현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길가에 난 개기장풀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땐 이름도 몰랐죠. 웬 잡초의 조형미가 너무 뛰어난 거예요. 그때 느꼈죠. ‘내가 대단한 예술을 하는 것처럼 굴었는데, 그게 아니구나. 이미 자연은 완벽하구나…’.”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긴 시간 기른, 아픈 자식과 같은 정원을 없애야 했을 때요. 관(官)에서 결정한 일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죠. 많은 이들의 노고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정원인데, 항의 한 번 못 해 보고 떠나보냈어요.”
-환희에 찼던 순간은요?
“11년 만에 재도전한 첼시쇼에서 한국 정원이 금상을 받게 됐을 때요. 건강하게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또 수상이라니! ‘잘했어, 잘 이겨냈어’라고 자축했어요(웃음).”
-가장 애정을 가진 작품은 무엇인가요.
“DMZ 정원요. 자유로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첼시쇼에 대한 인식이 없다시피했고, 정원은 미개척 분야였어요. 돈이 없어 대회 참가를 못 할 뻔했는데, 운 좋게 지방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무사히 전시를 했어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필립공과 에드워드 왕자가 DMZ 정원의 영구 보존을 언급했는데, 우리나라 정부의 협조를 구할 수 없어 무산됐어요. 유럽과 미국에는 일본과 중국 정원이 많은데 한국 정원은 없는 이유를 그때 알았죠.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2017년 서울역 고가공원 개장 때 선보였던 작품 ‘슈즈트리’는 흉물 논란이 일었습니다.
“제가 서툴렀죠.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 담론이 부족한 상황에서 좀 더 친절했어야 했던 것 같아요. 슈즈트리 논란은 미술 교과서에 실렸어요. 제 작품으로 학생들이 토론을 한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당신의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요?
“본질을 묻는 것.”
◇평생의 아이디어 창고는 ‘엄마의 텃밭’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삼 남매를 키웠다. “엄마의 텃밭은 제 인생 최고의 정원이자 명서예요. 지금은 연로하셔서 걷기조차 힘드시지만, 엄마가 아이들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꾼 텃밭은 이제껏 저를 지탱해온 힘이지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요.
“따뜻하고 정 많은 분…. 자기 것도 없으면서 찾아오는 거지들을 다 먹이곤 했죠. 어렸을 때 굶주린 사람들이 늘 집에 있었어요. 저는 그게 항상 창피했어요. 다른 시골 엄마들은 햇볕에 탈까 봐 얼굴 가리기 바쁜데, 우리 엄마는 햇볕 쬐는 걸 좋아하셨어요. 바람 불면 노래를 하셨고요. 늘 구슬픈 노래를 하셔서 저는 좀 싫었지만, 목소리가 참 좋으셨죠. 제게 가장 큰 감명을 준 작품은 엄마의 텃밭이에요. 빨간 앵두와 당근꽃, 파꽃이 만발하고, 아침 이슬에 젖은 여린 쑥갓과 상추잎이 넘실대고, 동생의 기침을 멎게 하려 매년 심었던 도라지가 피운 보랏빛 꽃, 벌레 먹은 배나무와 대추나무, 벌들의 군무, 배추나비의 날갯짓…. 제 평생의 보물 창고이자 아이디어 창고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엄마가 좋아했던 더덕과 산작약이에요. 더덕 향기는 엄마의 손 냄새 같아 좋아요.”
-정원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왜 정원을 만드세요?
“정원은 균열되고 결핍된 곳에 생명력을 선사해요. 영국 옛말에 ‘지금 정원을 만들지 않으면, 30년 후에는 3000개의 정신병원이 생겨난다’는 말이 있대요. 정원 안에서 진심인 시간이 저를 행복하게 해요. 정원을 만들 때면 우주, 자연의 질서 속 작디작은 저를 보게 되면서 절로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어서, 저는 발 아래 작은 야생초들에 자꾸 눈이 가요.”
-꼭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정원이 있나요.
“내 주변의 산들요. 한국의 산야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언어이자 가장 스펙터클한 영화 같아요. 길가의 작은 식물들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식물은 나 자신을 알게 하거든요.”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작은 터를 갖고 싶어요. 쫓겨나지 않고, 마음껏 식물을 공부할 수 있는 평생의 터. ‘앞으로 살면서 몇 계절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평생 단 하나의 식물을 완전히 이해하고 죽을 수 있다면, 저는 가장 고상한 사람으로 살다 간 존재일 거예요. 사회성은 없더라도 예술에 진심인, 역량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를 아는 것. 나로 온전히 사는 것. 내가 진정 편안한 곳에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 아닐까요?”
그녀는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사랑, 배려와 같은 따뜻함이 사라지면, 세상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없지 않을까요? 풀 한 포기, 벌 한 마리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정원을 만들 수 없듯이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각박해지잖아요. 따뜻한 마음, 그 좋은 것을 잃어가요.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다짐해요. 좋은 것 지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