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번은 대단히 훌륭했다”
지난 9일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4강전이 끝나고 카르미네 눈치아타 이탈리아 감독이 말했다. 상대팀 선수를 극찬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포츠채널 ‘ESPN 라틴아메리카’는 U-20월드컵 포지션 파워 랭킹에서 배준호를 ‘제일 뛰어난 날개’로 뽑았다. 프랑스 방송 ‘카날 플뤼’는 ‘U-20 월드컵 후 유심히 지켜볼 20명’에 그를 선정했다. 위성 채널 ‘DIRECTV’는 그를 ‘배도나(BAE-DONA·배준호+마라도나)’라 불렀다.
축구 대표팀 등번호 10번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10번을 달고 월드컵 우승을 이끈 그 순간부터 10번은 에이스의 상징이었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네이마르(브라질) 같은 스타들, 국내에서도 이승우, 이강인이 이 번호를 받았다. 에이스의 무게를 이겨내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수퍼 루키’ 배준호(20)를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골짜기 세대
U-20 대표팀 선수들이 출국한 지난달 7일 밤 인천국제공항은 고요했다. 취재진도, 팬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는 ‘골짜기 세대’, 국민들의 기대감은 적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귀국하는 현장은 달랐다. 공항은 환영 인파로 가득 찼고, 방송은 4강에 오른 이들의 모습을 생중계했다.
-출국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다들 관심 없는 걸 선수들도 알고 있었어요. 더 악에 받쳐서 보여주고 싶었죠. ‘우린 잘한다. 할 수 있다’였죠.”
-당시 목표는 뭐였습니까.
“처음부터 우승이었어요. 우리는 높은 곳을 바라봤고, 매 순간을 즐겼어요. 스타플레이어가 없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원팀 정신’으로 뭉치면서 끈끈해진 것 같아요.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올라왔어요.”
-가장 아쉬웠던 경기라면.
“4강전요. 잘할 수 있었고,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는데, 져서.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경기 끝나고 다 쓰러질 정도로 뛰었거든요.”
-이탈리아전에서 인터밀란의 유망주인 마티아 자노티가 배 선수를 막지 못해 힘겨워하던데.
“굉장히 강하게 압박하는 선수였어요. 이겨보려고 저는 더 악착같이 했고요.”
-그 과정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득점으로 연결됐죠.
“이승원 선수가 브론즈볼(최우수선수 3위)에 선정됐는데 저한테 지분이 어느 정도 있지요(웃음).”
-판정 논란도 있었는데요.
“발에 밟혀 넘어졌지만, 파울 선언을 안 하기에 비디오판독(VAR)을 기다리며 누워 있었어요. 이영준 선수는 제가 오버하는 줄 알고 ‘너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하냐’ 하더라고요. 섭섭하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심판 판정 또한 경기의 일부예요. 그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일어나서 다시 뛰어야 해요.”
-4강전이 끝나고 팀 분위기는 어땠나요.
“다들 라커룸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우는 선수도 있었죠. 그랬더니 감독님이 ‘4강 든 것도 대단한데,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잘했다. 고개를 들어라!’ 하셨어요.”
-김은중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요?
“화를 전혀 안 내세요. 굉장히 차분하고, 착하게 말씀하시고. 혼도 안 내고, 조곤조곤 설명하시죠. 그런데 가끔 우리가 경기에 집중을 못 할 때, 뼈 있는 한 마디를 하십니다.”
-감동을 받은 말이라면.
“8강 갔을 때인가. 라커룸에서 ‘수고했다. 고마워’ 하곤 나가셨어요. 그때 진짜 울컥했죠.”
-서운했던 건요?
“제가 골을 넣었을 때요. 뛰어와서 안아주실 줄 알았는데!”
-등번호는 어떻게 정했나요?
“감독님이 나눠주셨어요. 처음 옷 가방을 받고 유니폼을 꺼냈을 때 ‘10번’이 보였어요. 그 의미를 알기에 많이 놀랐죠.”
◇10번의 무게
그는 ‘김은중호’에서 거의 유일하게 K리그1 무대에서 꾸준히 뛰는 선수였다. 빼어난 기술, 완성도 높은 플레이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대회 직전 내전근 부상으로 프랑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 나서지 못했다. 온두라스와의 2차전에는 선발로 나섰지만, 후반 8분 교체 아웃됐다.
-마음고생이 많았겠어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준비도, 기대도 많이 했는데.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했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통증은 있지만, 꼭 뛰고 싶다. 경기에 나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감독님은 ‘무리하지 마라. 몸 상태를 회복하고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치료에만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16강 이후까지 길게 보신 거죠.”
-치료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닥터 트레이너 분들이 너무 고생하셨어요. 저 치료해주시다가 몸살까지 걸리셨죠.”
-에콰도르와의 16강전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했는데요. ‘메시의 나라에서 메시다운 발재간을 보였다’는 평도 나왔고요.
“마음의 짐을 던 경기였어요. 계속 부진했는데 팀에 기여한 것 같아 뿌듯했죠.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어요. 침착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세리머니로 왼쪽 가슴의 엠블럼을 두드리더라고요.
“‘나는 국가대표다’라는 의미였어요. 사실 골 뒤풀이를 준비하지 않아, 즉흥적으로 했어요. 다음에 골을 넣는다면 과거 감독님처럼 등번호와 이름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하고 싶어요.”
-ESPN이 뽑은 U-20 최고의 날개 공격수인데요. 소속팀에서는 미드필더였는데, 포지션이 바뀌어 힘들지는 않았나요?
“처음 포지션을 들었을 때 당황했어요. ‘전 날개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라고도 했지요. 그런데 감독님이 제가 플레이를 할 수 있게 전술을 짜 주셔서 적응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어요.”
-축구 선수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장단점이라면.
“장점은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플레이와 퍼스트 터치요. 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잘해요. 주변에서 ‘골 욕심이 없는 것이 단점’이래요. 아버지도 ‘슈팅을 더 많이 때려야 한다’고 하시죠.”
-대표팀에서 가장 친한 선수는.
“이영준 선수요. 예전부터 쭉 룸메이트였어요.”
-스프린트(시속 20km 내외로 최소 1~2초 이상 달리는 것) 기록도 이탈리아전 62회, 에콰도르전 57회로 좋더라고요.
“경기 중엔 몰랐어요. 결과 보고 알았죠.”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나요.
“감독님이 워낙 체력 관리를 잘 해주셨어요. 로테이션도 잘 돌려주시고.”
-경기 전엔 무엇을 했나요.
“이영준 선수가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틀어요. 경기 전 항상 듣던 노래가 호미들, UNEDUCATED KID, 트랜스 픽션이 같이 부른 ‘하나되어’예요. ‘우리는 승리한다/ 대한민국’ 가사가 나올 땐 가슴이 웅장해지죠.”
◇노력형 천재
배준호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늘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아버지는 원래 농구와 야구를 좋아하셨지만 이제는 저보다 더 열심히 축구 경기를 보신다”며 “전문가급 분석 능력을 가졌고 아들이 출전한 국내 경기는 직관하신다”고 했다.
-언제부터 축구를 잘했나요.
“중학교 때까진 몸도 작고 평범한 선수였어요. 고등학교 진학하고 박희완 감독님을 만나면서부터 급격히 성장했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어요. 박 감독님은 ‘넌 발이 빠르고, 밀고 나가는 드리블에 능하고, 이동 컨트롤을 잘한다’고 하셨죠. 장점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도 알려주셨어요.”
-축구 선수는 타고나는 걸까요.
“아니요. 전 타고나지 않아서 많이 노력했어요. 아버지와 개인 훈련을 했어요. 아버지가 열정적이셨죠. 훈련 스케줄 틈틈이 왼발 드리블과 패스 연습을 했고요. 양발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거든요.”
-어릴 때 좋아했던 선수라면.
“리오넬 메시요.”
-학창 시절, 놀지 못한 것이 아쉽지는 않나요?
“아쉽죠. 그래도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저를 보면 기분이 좋았어요.”
-예상만큼 성장하지 않을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잘 안 될수록 기본기를 갈고닦는 데 집중했어요. 그랬더니 학년이 오르고, 몸이 커질수록, 실력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맡은 에이스 자리가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저희 팀이 워낙 잘해서 우승하고 1등 했던 거라. 전 한 번도 ‘난 에이스야. 무언가를 해야 해’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냥 축구가 재미있었고,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하려고 했지요. 부담을 느낀 적은 없어요.”
배준호는 자타 공인 고교 랭킹 1위였다. ‘천재형 플레이어’라 불리며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고등축구리그 1위, 각종 고교축구대회 우승을 이끌며 K리그 대부분의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독일·프랑스에서도 연락이 왔으나,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이 직접 스카우트했다.
-고교 졸업하고 바로 유럽에 진출할 거라는 예측도 있었는데요.
“당시 모든 팀이 원했고, 원래 계약하려던 팀이 있었어요. 그런데 허정무 이사장님이 ‘내 눈으로 한번 봐야겠다’고 하셨대요. 그렇게 연습 경기를 잡았는데, 전반전 딱 끝나자마자 마음에 든다면서 말씀하셨죠. ‘원하는 조건이 뭐냐. 모든 걸 들어주겠다’고. K리그에서 조금 더 다듬고 성장한 다음 해외에 나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무모한 도전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진짜 무모해질 수도 있으니깐(웃음).”
-그렇게 프로 무대에 데뷔했는데 초반은 부진했죠.
“프로 1년 차가 제일 힘들었어요. 개막전에서 20분 만에 쫓겨나고, 상반기 동안 계속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죠. 고교 리그와 프로 무대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어요. 다들 힘도 있고, 템포는 훨씬 더 빠르고.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멘털이 부럽네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요. 부모님도 되게 차분하세요.”
-취미가 있나요. 챙겨 먹는 보양식도 궁금합니다.
“넷플릭스요. 최근엔 드라마 ‘시그널’을 봤어요. 팀에서 챙겨주는 단백질이나 비타민만 먹어요.”
-나중에 아들을 낳는다면, 축구를 시키고 싶은가요.
“아니요(웃음). 성공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롤모델이라면.
“한국 선수 중엔 황인범 선배(올림피아코스 FC), 해외 선수 중엔 케빈 더 브라위너(맨시티)요. 저와 같은 포지션(미드필더)에서 모든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월드컵 국가대표, 그리고 꿈의 리그였던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진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