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들은 당연히 성격이 나쁠 것이라고 여겼다. 텔레비전이 문제였다. 고든 램지를 비롯한 유명 요리사들은 화면 속에서 접시를 던지고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실제로 주방에 서보니 그런 요리사들이 차고 넘쳤다. 많이 나아졌지만 남자들이 절대 다수였고 게다가 요리사 대부분이 어렸다. 마초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그곳에 ‘미친 듯이 많은 일’이라는 폭탄이 떨어지면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레 연출됐다.

나 역시 뜨거운 불 앞에서 초 단위로 재촉을 당하다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 욕이 입에서 근질거렸다. 주방 밖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효율적으로 일해라’라는 21세기 직장인의 제1 원칙은 자주 ‘남들이 알아주는 일을 해라’, ‘약삭빠르게 처신해라’라는 말로 들렸다. 잘되는 식당도 직장 생활과 비슷하다. 남들이 알아주는 음식을 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빠르게 올라타야 한다. 그 또한 옳고 맞다. 하지만 조금은 미련하고 우직하게 내 음식을 하는 집, 무엇보다 음식 하나하나에 마음을 쏟는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중국집 ‘일미1956′의 깐풍 갑오징어.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짧은 점심 시간에 승부를 봐야 하는 여의도는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 특성상 더 경쟁적이다. 식당들은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좌석을 나누고 세트 메뉴를 만들며 손님이 일어나기도 전에 음식을 치운다. 손님들도 ‘단골’이란 철 지난 단어보다 ‘가성비’라는 경제적인 용어를 앞세우고 이 집 저 집을 쇼핑하듯 드나든다. 여의도백화점 뒤편 빌딩 2층에 있는 ‘일미1956′은 여의도에서 꽤 오래 영업을 한 곳이다. 좁은 복도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집은 아담하여 손님을 많이 받기 힘들어 보였다. 주인장 홀로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인 듯 싶었다.

점심 시간 막바지였다. 한바탕 사람들이 왔다 간 뒤, 빈자리가 여럿이었다. 먼저 테이블에 올라온 메뉴는 ‘깐풍갑오징어’였다. 본래 닭고기로 만드는 깐풍기는 중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사천 요리 중 하나로 매운 닭튀김의 일종인 ‘라즈지’가 한국으로 넘어와 변형된 음식이라고 나이 든 요리사들은 이야기한다. 원조 격 요리의 특성인 ‘매운맛’만 남았고 그 매운맛을 이루는 요소들은 모두 한국식으로 바뀌었다. 국물 하나 없이 건조하게 볶던 것이 양념치킨 같은 질척한 소스를 두껍게 입었다. 양념 치킨과 서로 공진화했다는 게 또 다른 가설이다.

이 집의 깐풍갑오징어는 물기가 하나도 없었다. 정교하게 칼집을 낸 갑오징어는 꽃망울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입에 넣자 제철 과일을 먹은 것처럼 팡팡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튀김옷과 튀긴 시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만 나올 수 있는 음식이었다. 매운맛은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처럼 어렴풋했다. 전체적인 간을 잡는 것은 이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블랙빈 소스였다. 알고 보니 이 집 주인장의 아버지 대부터 물려받은 조리법으로 직접 장을 담근다고 했다. 덕분에 물리는 느낌 하나 없이 산딸기를 한 움큼 집어 먹던 어린 시절 마냥 홀린 듯 한 접시를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볶아져 나온 탕수육은 특이하게도 단호박으로 단맛을 냈다. 입천장이 아플 정도로 단단하게 튀겨낸 배달용 탕수육이 아니었다. 소스가 묻어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단호박으로 이끌어낸 단맛은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과일이 낸 직선적이고 저돌적인 종류와 거리가 멀었다. 대신 우아하고 긴 여운이 동네 친구들과 수다를 떨듯이 정겹게 이어졌다.

식사로 나온 간짜장은 보통 먹던 맛과 조금 달랐다. 마침 주방 밖으로 나온 주인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직접 담근 춘장 3할에 시판 제품 7할을 섞어 쓴다고 했다. 시판 춘장은 맛과 색이 진하지만 발효가 덜 된 떫은 뒷맛이 남는다. 이 집 짜장은 맛이 순하고 유려(流麗)하며 독하지 않았다. 짜장소스를 면에 잔뜩 묻혀 먹으니 더 맛이 풍부해졌다. 직접 담근 장이라면 목청을 높여 이야기할 만한데 주인장은 ‘뭘 그런 것까지 말하냐’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조심 말했다. 볶음밥에 쓰는 XO소스 또한 직접 만들어 쓴다고 이야기할 때 그는 조금은 꿈꾸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장은 아쉽다는 듯 반백의 머리를 긁으며 말을 덧붙였다. “단무지도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천진난만하다 할 정도로 순진한 그 성정에, 무엇보다 자신의 음식에 모든 것을 바치는 순수함에 마음 어딘가가 활짝 열려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좋은 음식을 만든다고 믿고 싶어졌다.

#일미1956: 깐풍갑오징어 2만7000원, 탕수육1만6000원, 간짜장 9500원, (070)-8657-0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