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들도 기억할게.”
지난 10일 구미에서 미스코리아 경북 대회가 열렸다. 미인(美人)을 선발하는 행사, 으레 수상자의 이목구비나 신체적 굴곡에 관심이 집중되곤 하는 이벤트. 이날은 조금 달랐다. 진·선·미로 뽑힌 여성들이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반짝이는 왕관을 쓴 채 건치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들은, 이윽고 준비한 팻말을 하나씩 꺼내들었다. 각자의 팻말에는 “동준아 누나들도”(선) “워커 장군님을”(진) “기억할게”(미)라고 쓰여 있었다. 진으로 선발된 허윤진(23)씨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을 알리려는 청소년의 목소리에 감명 받아 이 세리머니를 제안했다”며 “앞으로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정전 70년, 잊힌 영웅의 이름
발단은 중학생의 호소였다. 경북 칠곡의 장곡중학교 3학년 김동준(15)군은 현충일을 앞두고 6·25전쟁 관련 수행평가 과제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전쟁 당시 대한민국 존망이 걸려 있던 ‘다부동 전투’로 유명한 칠곡은 ‘호국 평화의 도시’를 표방하는 동네다. 김군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의 워커 장군 일대기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급파된 미8군 초대 사령관 월턴 워커(Walker·1889~1950). 풍전등화 위기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 결국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명장이다. 김군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김군은 이 학교 학생회장이다.
소셜미디어로 친구들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칠곡군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군수에게 바란다’ 코너를 클릭했다.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다. “군수님, 저는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기 전까지 워커 장군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지키겠다, 사수하느냐 죽느냐의 선택만이 있다던 불도그 워커 장군님… 군수님께서도 많은 사람에게 워커 장군님을 기억하도록 해주세요. 교과서에도 워커 장군님 이야기는 없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꼭 알 수 있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대견하다”… 곧장 응답한 어른들
현충일 전날 밤, 학교 친구들을 모아 스케치북으로 일종의 ‘카드 섹션’을 준비했다. 물감으로 색칠하고, 나뭇잎 등을 붙여가며 글씨를 완성했다.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진과 글을 받아 본 김재욱 칠곡군수는 7일 “중학생들이 보낸 기분 좋은 민원(?)을 소개한다”며 “낙동강의 영웅 워커 장군을 알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일주일 뒤 워커 장군 흉상 제작이 결정됐다. 6·25전쟁이 먼 과거의 일로 치부되고 정치 양극화로 호국 영령에 대한 폄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제안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군청 관계자는 “소식이 전해지며 칠곡 ‘캠프 캐럴’ 미군들도 성금을 보내기로 했고 교육 당국과도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흉상은 다음 달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설치될 예정이다.
어린 학생들의 움직임에 고무된 경북교육장학회 측은 지난 17일 장학금을 수여했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우리 학생들이 일깨워줬다.” 서울 등지에서 일반 시민들의 기부금 전달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호국 정신을 ‘극우’로 폄훼하는 일부 비뚤어진 시각도 존재한다. 김군은 “우리 소식을 소개한 지역 방송 유튜브 댓글창에서 ‘일베’(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냐는 댓글도 봤다”면서도 “미스코리아 누나들처럼 예상치도 못했던 많은 분들이 응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무너지면 끝… 최후의 방어선
정전 70년을 맞는 올해, 이번 일화가 뜻깊은 이유는 이 지역이 사실상 공산화 저지의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역시 잊히고 있는 사실이다. 기습 남침으로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우리 군은 1950년 8월 1일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국토의 90%가 북한에 넘어간 상황, 여기마저 뚫리면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였다.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내라”고 지시했다. 최후의 저지선, 워커 장군은 낙동강과 산악 지대를 잇는 240㎞ 길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구축했다. 전투는 9월 14일까지 45일간 이어졌다. 당시 워커 장군이 남긴 외침 “Stand or Die”는 지금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지키느냐 죽느냐, 둘 중 하나라는 결의.
속도전을 원했던 북한은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연합군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전력을 회복하고 총반격의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격렬한 저항에 북한군도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됐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낙동강에서 역사의 변곡이 시작된 것이다.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 역시 부친과 함께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활약해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그해 12월 23일 경기도 양주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눈을 감는다. 아들의 훈장 수훈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었다. 손자 샘 워커 2세는 헬리콥터 조종사로 한국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고, 2019년 방한해 명예칠곡군민증을 받았다.
◇‘지게 부대’를 아시나요?
대구로 향하는 길목, 당시 칠곡에서는 ‘다부동 전투’가 55일간 이어졌다. 실질적인 한미 연합작전이 처음 이뤄진,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평가받는다. 인민군 2만4000명, 국군 1만여 명이 사상한 격전이었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한 국군 1사단장 백선엽(1920~2020) 장군이 이곳에서 영웅의 칭호를 얻었으나, 그 뒤에는 이름 없이 산화한 영웅들이 있다. ‘지게 부대’다. 탄약·연료·식량 등 보급품 40㎏을 짊어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며 국군 1사단과 미군에 전달했다. 군번도 총도 없이 포화 속을 누볐다. 지게를 진 모습이 알파벳 A와 닮아 ‘A특공대’(A-frame Army)로 불린 ‘지게 부대’ 대원들은 약 2800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75) 여사는 사비 1200만원을 들여 ‘다부동 전투 지게 부대원 추모비’를 세웠다. 오는 7월 5일 제막식을 앞두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배경이 되기도 한 328고지에서 열린 ‘지게 부대’ 재현 행사에도 참여했다. 밤낮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보급하던 여성 주민 차림으로 분장한 백 여사는 “생전 ‘지게 부대’를 높이 평가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추모비를 건립하게 됐다”며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추모비는 역시 올해 새로 제작된 백선엽 장군 동상과 함께 같은 날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들어선다. 영웅들이 기억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