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총, 전기충격기, 스프레이 등 다양한 호신용품.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호신용품은 대부분 기타 무기에 들어가는데 관련한 법적 제재 등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뉴스1

“생에 처음으로 윗집 문을 두드렸다. 손에는 후추 스프레이를 쥐고.”

A씨는 이사 3일 만에 폭발했다. 밤낮으로 누군가 뛰는 소리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윗집 대문에 “소음 때문에 힘듭니다”라는 장문의 편지를 붙여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A씨는 인터넷을 뒤져 호신용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 윗집에 부탁도 하고 빌어도 봤지만 나아지질 않는다. 왜 살인까지 일어나는지 알 것 같다. 몇 번 싸우고 나서는 혹시 몰라서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 마스크를 쓰고 호신용 스프레이를 들고 다닌다.”

불신의 사회다. 부산 돌려차기남 강간 살인 미수 사건, 캄보디아 여행 중 여성 BJ 구타 사망 사건, 정유정의 과외 학생 위장 살인 사건까지.... 최근 강력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호신용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종류의 호신용품이 있는 만큼 사용법도 각각 다르다”며 “제대로 잘 쓴다면 실제 ‘호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호신용품 사용과 관련한 법적 기반이 미비해 잘못 사용하면 처벌될 수 있다는 점도 숙지해야 한다.

◇판매율 70% 급증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호신용품’을 치면, 방범 조끼, 너클 반지(손가락에 착용하는 금속 무기)부터 가스총, 전기 충격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쏟아진다. 3단봉, 미니 호루라기, 후추 스프레이, 쿠보탄(끝이 날카로운 호신용 열쇠 고리) 등 휴대가 간편한 것들도 있다. 가격은 500원부터 3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호신용품’ 검색 횟수는 6월 20일 기준으로 지난달 대비 85% 늘었다. 정유정 사건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이 알려진 5월 말, 6월 초에는 전달 대비 200% 가까이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호신용 스프레이가 인기다. 일부 제품은 화생방 가스보다 10배 이상 강력하고, 150kg의 남성이나 알코올 또는 약물에 중독된 상태인 누군가의 공격성도 제압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핫소스 120병과 같아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을 유발한다. 관련 판매업체인 세이버코리아 관계자는 “호신용 스프레이는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 최근 몇 달간 판매율이 70% 이상 늘었다”고 했다.

혼자 사는 1인 여성 가구가 늘면서 일부 지자체는 호루라기 등 안전용품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한 40대 남성은 “가게를 하는 아내와 중학생 딸을 위해 호신용품을 구입했다. 선물했더니 ‘가지고만 있어도 안심이 된다’고 하더라”며 “어쨌든 사긴 샀는데 쓸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잘못 사용하면 흉기

얼마 전 B씨도 “상급생이 괴롭힌다”는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 말에 호신용 스프레이를 사서 아들에게 건넸다. 며칠 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 위협을 가하는 고3 학생에게 스프레이를 쏜 것. 정당방위였지만, 상대 측 부모는 쌍방 폭행을 주장했다. B씨는 스프레이 판매 업체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으나 사건은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여성이 남성에게 호신용품을 사용할 때는 ‘호신’으로 보지만, 남성 간 사용 시에는 애매하다는 법적 허점이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호신용 스프레이의 경우, 순간적 공격성을 제압하고 대부분 2주 내 자연 치유가 이뤄져 상해는 남지 않는다. 그러나 호신용품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 보니 일부 제품은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는 호신용품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같은 경우도 호신용품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몸에 지니고 있었더라면 피할 수 있었다”며 “가장 좋은 건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남용 사례도 있다. 올해 초 도로 위에서 운전 문제로 다투다가 10대 남성이 너클을 끼고 폭력을 휘둘렀다가 징역형을 받았다. 학교 폭력 현장에서도 너클이 이용됐다. 너클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해당되지 않아 누구나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