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회사만 다니다 보니까,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요. 회사, 집, 운동 이렇게 왔다 갔다만 하니까…. 여긴 어찌 됐든 다 확인이 된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속이는 사람들도 만나봤기 때문에,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검증된 분들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SBS 플러스·ENA의 연예 예능 ‘나는 솔로’ 10기 옥순이 출연 이유를 이렇게 밝히자 다른 출연자들은 공감의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2. “평소 ‘일, 집, 일, 집’ 하다 보니까 이성을 뵐 기회가 없었는데, 다양한 분들을 뵐 수 있는 기회가 돼 좋았습니다.” “여기서 만나 현재 예쁜 사랑하고 있어요. 처음 나갔는데 행운인 것 같아요.”(A 업체 커피 미팅 후기)
한때 연애 성향을 밝힐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저는 ‘자만추’ 스타일입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다시 말해 소개팅이나 맞선, 미팅 등이 아닌 자리에서 연애 상대를 만나는 걸 선호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미혼남녀 사이에선 자만추의 반대 격인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가 각광받고 있다. 단, 인만추에도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가미된 만남이 선호되는 편. 자만추가 어려운 세상, 인만추의 바다에 뛰어든 이들은 “인만추가 자만추보다 낫다”고 한다.
◇바닥 기는 혼인·출산율에… 중매 나선 지자체
오는 2일과 9일 열리는 경기 성남시의 단체 미팅 행사 ‘솔로몬의 선택’에는 200명 모집에 1188명이 몰렸다. 주민등록지가 성남이거나, 성남 내 회사에 다니는 1997~1985년생 직장인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했다. 참가 경쟁률이 남자의 경우 8:1, 여자는 3.8:1에 달한다. 성남시 관계자는 “(이성) 만남의 기회가 적은 미혼 남녀들에게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 기회를 줘서, 결혼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결혼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며 “많은 부모님이 자식이 남초 혹은 여초 회사에 다닌다면서, ‘꼭 필요한 행사’란 말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예상보다 참가 신청이 몰렸는데, 시에서 하는 행사이다 보니 믿음이 가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며 “또 딱딱한 소개팅이나 선과 달리, 와인파티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만나는 것도 인기 요인”이라고 했다. 솔로몬의 선택에 지원한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분당 토박이라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걱정되지만 짝을 만나고 싶어 지원했다”며 “나이가 차다 보니 자만추가 점점 어려워져서 (단체 미팅이) 사람을 만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경북 구미시는 지난달 10일과 24일 지역 미혼 남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 미팅 ‘두근두근~ing’ 행사를 열었다. 100명이 참가했는데, 커플이 15쌍 탄생했다. 한 참가자는 “제 나이대에 이성 간 만남의 자리가 많이 없는데, 다양한 또래와 교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고. 다른 참가자는 “그룹별 게임을 하면서 친해진 시간이 즐거웠다. 같은 조를 한 사람들끼리 단체 카톡방을 개시했다”고 했다. 구미시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신청자가 100명대 수준이었는데, 이후에는 200명대로 늘었다”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하는데, 대화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 높은 커플 매칭률의 비결”이라고 했다. 이 밖에 충북 청주시, 경남 함양군 등도 청춘 남녀들이 만나는 단체 미팅 행사를 진행 중이다.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까닭은 사상 최저치를 찍고 있는 혼인율과 출산율 때문.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결혼 커플은 19만1700쌍.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낮은 기록이다.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해마다 뚝뚝 떨어져 지난해 3.7건을 기록했다. 선행지표인 혼인율이 낮다 보니 자연스레 합계출산율도 지난해 0.78명이라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저출산을 타개하려면 당연히 연애와 결혼을 많이 해야 한다. 원하는 청년들은 많은데, 이들이 상대를 만나기가 어려운 게 문제인 상황”이라며 “정부, 지자체, 기업 등 사회가 나서서 만남의 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 앞서 서울시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취미 모임을 열어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의 ‘서울팅’ 행사를 계획했다가 철회했다.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팅 상품 불티, 셀프 소개팅도 인기
“다양한 사람과 함께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만남 해보세요. 와인도 배우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일석이조!”
소개팅과 미팅을 주선하는 A업체 와인 미팅 상품 설명에는 이런 소개가 적혀 있다. 참가 신청 조건은 이랬다. “1. 나이: 96~85년생 2. 법적 싱글(돌싱 참여X) 3. 사전 신분/재직/혼인 여부 확인, 현장에서 신분증 확인.” 최대 30명까지 모이는 이 상품의 가격은 남성 5만5000원, 여성 3만5000원이다. 이외에도 커피 미팅과 일대일 소개팅 등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의 회원은 1만여 명. 지난달 중순 연 커피 미팅에는 남녀 각각 9명이 참여했다. 남성 평균 나이는 40세, 여성 평균 나이는 38세였다. 이 미팅에서 총 7커플이 탄생했다.
결혼정보업체들도 자연스러움이 가미된 인만추를 위한 상품 개발에 적극적이다. 요리, 꽃꽂이, 칵테일 제조, 다도, 요트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단체미팅과 접목시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한 업체의 회원인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업체에서 마련한 자리는 비교적 어색하지 않고, 참가자들의 목적의식이 같다 보니 시간 낭비가 없어 좋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결혼정보업체 회원 중에는 자만추를 고집해왔지만, 이제는 이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며 “‘자연스러움’에 대한 회원들의 니즈(수요)를 충족시키려고 많은 업체가 다양한 이벤트를 개발하는 중”이라고 했다. “가장 커플 매칭률이 높은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단체 미팅”이라고 귀띔했다.
목마른 싱글들이 스스로 인만추의 장을 여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블라인드의 ‘셀소(셀프 소개팅)·미팅’ 채널에는 하루에 300~400건의 글이 올라온다. 한 대기업 직원은 “퇴근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밥이나 먹자”란 글을, 한 경찰관은 “주말에 시원한 영화관에서 보실 여자분 계실까요?”란 글을 올렸다. 이 플랫폼에서 미팅을 주선해 본 경험이 있는 대기업 직원 김모(37)씨는 “블라인드는 가입할 때 직장 인증을 하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는 사람이 많다”며 “자만추로는 만날 수 없는 낯선 이를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크다. 미팅에서 만나 연인이 된 이들도 많다”고 했다.
대학교 동문 사이트에서 셀프 소개팅을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36)씨는 지난해 동문 게시판에 자신의 나이, 직업, 키, 몸무게, 종교, 정치관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짝을 찾았다. “나이대가 비슷하고, 같은 종교와 정치관을 갖고 있으면서, 외양적으로는 덩치 큰 곰 같은 사람을 찾았다. 연락 온 분들 중에 이상형과 가까운 분과 현재 즐겁게 연애하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만혼 추세를 인만추 열풍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일정 연령이 되면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사람은 이미 다 만난 상태가 된다”며 “자만추를 원하면서도 대안이 없으니 인위적 만남으로 넘어가는 것이고, 목표(결혼)가 확실한 사람끼리 만나는 게 편하다는 인식이 증가한 것도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결혼정보업체의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만나게 해주느냐’”라며 “여행, 취미 등을 주제로 하는 이벤트, 사전 설문을 통해 같은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매칭해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대한가정학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연애 예능 인기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엔데믹을 맞으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분출했고, ‘나는 솔로’ ‘솔로 지옥’ 등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만추에 대한 체험 소비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또 지자체나 민간업체가 주선하는 만남에서는 최소한의 스크리닝을 한다는 점도 미혼 남녀의 구미를 당기는 요인이다.” 이 회장은 이어 “(지자체 등이) 만남 주선만 할 게 아니라 이성과의 만남에 필요한 예의,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 부모로서의 역할 등을 재미있게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