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세 당연히 내야지. 국가 존속이 걸렸는데. 싱글세 걷어 유자녀 부부 지원해서 출산은 애국이라는 의식을 심어줘야지!”

“무지성으로 싱글세만 외칠 게 아니라, 아이 키우기 즐겁고 행복한 환경부터 만들어야죠!”

싱글세 또는 미자녀세. 지난 2014년 한 복지부 국장이 비공식 자리에서 ‘싱글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사실이 알려져 호된 비난과 반발을 겪었다. 공직사회와 정치권에선 ‘표 떨어지기 딱 좋은 얘기’ ‘황당한 아이디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런데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 민간에서 도리어 싱글세 도입을 ‘진지하게’ 거론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싱글세를 진지하게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국가와 공동체 존속. “재앙적인 수준의 저출산으로 국가 존속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징벌적 싱글세라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형평성. “싱글들은 늙어서 남의 자식들에게 부양을 받는 것이니 유자녀인 사람과 불공평하다”는 주장이 더 호응을 얻는 분위기다.

◇찬성 21%... “생각보다 많네”

싱글세 찬성 여론은 실제론 얼마나 될까. ‘아무튼, 주말’이 지난달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싱글세 찬반과 비혼·저출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20~50대 4015명이 응답했다.

싱글세 또는 미자녀세 도입에 대해 의견을 묻자 전체 응답자의 21%가 찬성했다. 도입될 경우 바로 ‘과세 타깃’이 될 수 있는 30대가 16%로 가장 미온적이었고, 50대는 26%로 찬성 비율이 가장 높았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예상보다 찬성 수치가 높지만, 여론은 싱글세보다는 저출산은 실제 경제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전문가 대다수는 “저출산 문제를 싱글세로 해결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 하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은 징벌이 아닌 ‘형평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높았다. 찬성자의 33%가 찬성 이유로 “미혼이거나 무자녀인 성인은 노후에 정부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부담을 미리 져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리어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노정태 위원은 “노인은 정부 또는 사회적 시스템이 아닌 자식에게 부양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과도한 접근”이라며 “이런 가족주의가 현재 한국의 결혼과 출산을 막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저출산의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났다. 20~30대 답변자 중 기혼이면서 자녀가 없는 632명에게 “향후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20대(260명) 중에서는 9%, 30대(372명) 중에서는 21%만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돈인가 차별인가... 미묘한 세대 간 인식차

싱글세가 아니라면 어떤 대책이 가장 필요할까. 싱글세에 반대한 응답자의 22%가 결혼·출산 가정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연금 혜택 확대 등 경제적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공동 1위로 꼽힌 대안은 ‘근로시간 단축 및 육아지원 확대’였다. 3위는 교육비 절감 및 경제 양극화 해소(18%), 4위는 아파트 구입 등 주거 지원 확대(14%), 5위는 좋은 일자리 늘리기(12%), 6위는 여성 차별 해소(11%).

세대별 답변 비율을 살펴보면 미묘한 차이가 드러난다. 40~50대는 전체 답변 비율보다 각각 좋은 일자리 확대(13%·19%), 사교육비 절감(19%·25%)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반면 20~30대는 전체 답변 비율보다 여성 차별 해소(각각 14%)를 더 선호했고, 남녀 간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좋은 일자리 확대에 대해서는 20대가 11%, 30대는 8%로 평균보다 선호 비율이 낮았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들이 결혼을 못 한다”는 인식과 상반되는 부분이다.

비혼·저출산 원인 인식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 중 경제적 여유 부족을 원인으로 꼽은 비율이 40%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2위는 미래에 대한 희망 부재(23%), 공동 3위는 ‘결혼·출산에 대한 부모의 개입(11%)’ ‘여성·영유아 등에 대한 차별(11%)’이었다. 그런데 세대별로 보면 40~50대는 경제적 여유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데 답변이 더 쏠렸고, 반대로 20~30대는 여성·영유아 차별 때문이라는 답이 각각 16%, 14%로 높았다. 기성 세대 인식과 달리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 부재나 경제적 여유 부족을 원인으로 꼽은 비율은 기성 세대보다 낮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자 A 교수는 “기성 세대가 청년들이 결혼·출산에 소극적인 것은 ‘돈’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을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조금 더 강한 반면, 20~30대는 기성 세대보다 여성과 아동·어린이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된다”며 “저출산 정책을 주도하는 기성 세대가 이런 청년 세대의 문제 의식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에 집중하지 않고 막연히 여성 권리가 향상되면 저출산도 해결될 거라는 인식으로 안이한 정책을 펴다가 출산율이 더 떨어졌다”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 여성 차별 해소에서 저출산 해결을 우선으로 해서 촘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 비혼·저출산의 원인으로 20대 남성 응답자 19%, 30대 남성 20%가 ‘부모의 과도한 개입’을 꼽았다. 전체 답변 비율은 물론 동세대 여성 응답자(각각 11%, 8%)보다 높다. 노 위원은 “젊은 남성들은 원 부모들에게서 독립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한데, 현실에선 과도한 가족주의적 개입과 결혼 준비 부담 등으로 인해 이런 욕구가 좌절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둘째가 늘어날까

네 살 된 딸 하나를 둔 대기업 직장인 박모(36)씨는 최근 남편과 상의 끝에 둘째를 낳지 않기로 했다. “원래는 둘 다 자녀 둘을 원했는데, 막상 첫째를 낳고 복직하고 보니 아이를 볼 시간이 너무 없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빨라도 6시 반, 늦으면 8시가 넘는데 그러면 아이가 곧 잠에 드니까요. 첫째와도 교감할 시간이 부족한데 둘째까지 낳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연봉 정규직 기혼자가 많은 직장인·육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출산율을 높이려면 근로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는다. 박씨처럼 “첫째를 낳아 보니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육아를 하는 부모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있지만 사용하려면 회사와 주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이가 아프면 반차를 내고 죄인처럼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게 괴롭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조사에서도 20~30대의 약 4분의 1이 근로시간 단축 및 육아 지원을 최우선 저출산 정책으로 꼽았다.

일부는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퇴근 시간이 4시로 앞당겨진다면, 가족과의 삶을 위해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이종 교수는 “젊은 세대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공동 육아를 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인데, 한국의 근로시간이 길다 보니 이런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등을 자꾸 개인이나 기업에 부담시키지 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A 교수는 “모든 정규직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에 동의할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에 상응하는 노동 강도 향상이나 임금 삭감을 하는 노동 개혁에 얼마나 동의할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로시간이 줄고 국공립 어린이집이 대폭 확충되는 정책이 시행되면 ‘둘째’ 출산이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임금 격차가 큰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사교육 경쟁을 해소하지 않으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정태 위원은 “조기 퇴근이 상대적으로 쉽고 국공립 어린이집이 많은 세종시도 출산율이 2를 넘기지 못한다”며 “현재 한국 사회에선 아이를 적게 낳고, 최대한 많은 사교육 투자를 해서 고연봉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상위 계층으로 진입시키는 것이 최적화된 전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