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당포에 있던 쇠창살은 사라지고 대신 보안 업체 스티커가 붙어 있다. / 김은경 기자

지난 3일 정오쯤 서울의 한 대학 근처 상가 복도. ‘전당포’라고 붙은 벽 간판 아래로 20대 여성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아이폰을 맡기고 생활비를 빌리려다 너무 구형 모델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노트북은 받아준다고 해서 다시 가지러 간다”며 “한 달만 맡겼다가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찾으러 올 것”이라고 했다.

전당포는 물건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역사 깊은 사금융. 지난해 12월 기준 전당포 이름으로 영업 중인 등록 대부업체는 723곳으로, 전체 대부업체(8818곳)의 8% 가량을 차지한다. 보통 담보물 가액의 50~80% 정도 되는 돈을 대출해 준다. 물건 가치만 따지지 고객의 신용 점수는 보지 않고 기록도 남지 않는다. 신용 점수가 낮아 금융기관 대출이 막혔거나 이미 한도 끝까지 빚을 낸 사람들이 주로 찾아온다. 돈 빌릴 곳 없는 사람들의 종착역, 전당포 문을 두드리는 발길을 관찰했다.

◇아버지 장례비·직원들 임금…

서울 은평구의 한 전당포에서 송종익 사장이 손님에게 신분증을 받고 있다. / 김은경 기자

“띠링~”

서울 은평구 한 전당포의 녹색 철문으로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40대 남자가 들어왔다. 가슴 높이 위로 난 창문 안에서 주인 송종익(73)씨가 맞아준다. “뭐 맡기러 왔어요?” 남자는 경험이 있는 듯 익숙하게 금목걸이와 신분증을 내민다. 송씨가 탁상 조명을 켠다. 돋보기안경을 꺼내 목걸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14k 두 돈 반이네. 돈 얼마나 필요해요?”

“얼마까지 돼요?”

“30.”

“아…. 그것밖에 안 되나요?”

남자는 머쓱하게 웃더니 두 번은 묻지 않고 ‘대부 거래 표준계약서’를 써 냈다. 송씨가 책상 서랍에서 5만원권 여섯 장을 꺼내 건넸다. 5분도 안 돼 대출 심사부터 실행까지 모두 끝났다.

송씨는 장부를 펼쳤다. 만년필에 파란색 잉크를 찍어 이름과 연락처, 뭘 맡기고 얼마를 빌려줬는지 내역을 적었다. 마지막에는 ‘중키호리’라고 썼다. ‘중간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란 뜻. 나중에 목걸이를 찾으러 올 때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이중 보안 장치다. 장부에는 ‘키크니’ ‘중키 얼굴넓’ 같은 용모 파기가 빼곡했다.

금목걸이와 계약서 사본을 손바닥만 한 지퍼백에 담고, 커다란 빗장으로 잠겨 있던 창고에 들어선다. 3평 남짓한 창고에는 모피 코트 세 벌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맡긴 것들인데 찾으러 오지도 않고 제값에 처분도 못해 몇 년째 걸어놓고 있는 것들이라고 했다. 유전 기한(전당물을 맡아놓는 기한)은 기본 6개월부터. 이 기간을 지나 대출 연장을 신청하지 않고 이자도 내지 않으면 처분한다. 나무 궤짝 안에 삼중 잠금을 해놓은 금고를 열자 각종 시계와 귀금속, 명품 스카프 등을 담은 봉투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 중에 어떤 봉투는 5년 동안 꼬박 이자만 내고 있는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목걸이 지퍼백은 맨 위 칸 서랍에 들어갔다.

송씨가 창고 문에 다시 빗장을 채우고 나와 말했다. “카드 값 막는다고 오고, 장사하는 단골들은 직원들 월급 준다고 오고. 요전번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 치를 돈이 없다고, 패물을 긁어모아 한 300만원을 빌려 갔다가 부의금 받고 다시 가지러 온 사람도 있었지.”

42년 된 이 전당포에는 요즘에도 손님이 꼬박꼬박 찾아온다. 옛날에는 곗돈 주는 날, 요즘에는 카드 대금 내는 날. ‘전당포’ 하면 떠올리는 쇠창살은 사라졌고 대신 월 20만원씩 내는 사설 보안업체 스티커가 철문에 붙어 있다. “요새는 이자가 싸져서 그런지, 맡겨 놓고 잘 안 찾아가네.”

◇스마트폰 맡기고 20만원 꾸는 MZ

서울 동대문구의 한 전당포에 고객들이 맡긴 물품. / 한준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 오피스텔 10층에 있는 프랜차이즈 전당포 상담실에는 자전거와 명품 가방, 고가 브랜드 시계가 진열돼 있었다. 전날 찾은 동네 전당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전당포라는 간판 대신 ‘팔지 말고 맡기세요’라고 적힌 입간판이 놓여 있다. 이곳 사장은 “이용자의 90%가 MZ(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세대”라고 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IT 기기를 들고 전당포에 오는 20대가 많다. 전당포 프랜차이즈 디오아시스 부산점 관계자는 “최근 스마트폰을 맡길 수 있냐고 문의하는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보통 전당포는 기한 내 상환을 못 하면 맡긴 물건을 처분하지만, 젊은 분들이 덜컥 맡겼다가 돈을 못 갚는 경우에는 물건을 매입하거나 대신 판매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IT 기기는 전당포 입장에서 수익성이 좋지 않은 담보물이다. 귀금속이나 명품보다 소액인 데다 감가상각이 빠르기 때문. 관악구 전당포는 “몇 년 전에는 다이아몬드나 금처럼 돈 되는 패물을 맡기고 수백만원씩 빌려가는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다들 팔아서 없는지 스마트폰만 들고 와 10만~20만원씩 빌려가겠다고 한다”며 “작은 전자 기기는 장물(贓物)도 많아서 되팔려고 하다 걸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소득이 없거나 경제 기반이 약한 청년층이 고금리·고물가 타격을 맞아 내몰린 것 같다고 전당포 주인들은 말했다. 실제로 작년 말 기준 30대 이하 가계 대출 잔액은 514조5000억원으로 3년 전인 2019년(404조원)보다 30% 가까이 증가했고, 1인당 대출 잔액 증가율이 18.4%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대출 중 20~30대 비율은 2013~2019년 29.6%에서 2020~2021년 38.3%로 뛰었다. 30대 이하 취약 차주의 대출 증가 폭은 51.6%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취약 차주는 저소득(소득 하위 30%)이거나 저신용(신용 점수 664점 이하)이면서 3건 이상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사람을 말한다.

◇최후의 보루, 전당포마저 문 닫는다

전당포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당포업이 돈벌이가 잘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줄줄이 폐업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법정 최고 금리가 2010년 44%에서 꾸준히 낮아졌기 때문. 특히 지난 2021년 정부가 취약 계층 이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20%까지 내린 이후로는 동네 전당포들이 상당수 문을 닫았다. 서울시 자치구에 등록한 대부업체 중 이름에 ‘전당포’가 들어간 곳은 2019년 150곳에서 109곳으로 줄었다.

온라인에서 귀금속과 전자 기기, 고급 양주와 악기까지 받는다고 홍보하는 어느 전당포는 “우리도 금융회사나 사채를 통해 돈을 융통해 와야 하는데, 시중 금리는 올라서 빌려오긴 어렵고 빌려주는 이자율은 낮으니 힘든 상황”이라며 “찾아오는 손님은 많은데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못 해주고 있다”고 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대부업에는 취약 계층 수요가 몰리기 마련인데 지금은 빌리는 사람도, 빌려주는 업체도 취약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당포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이들은 이자로 수백, 수천 %를 부르는 불법 사채로 몰릴 위험이 크다. 서민금융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옮겨 간 저신용자(신용 6~10등급)는 많게는 7만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원이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저신용자 5000여 명에게 설문한 결과 68%는 대부업체에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답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돈을 빌렸다는 응답자도 78%나 됐다. 서민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최고 금리를 내렸다가 취약 계층을 아예 제도권 밖으로 내쫓아 버린 것이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지금은 서민 금융이라는 연못에 물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대문 전당포는 “주변 전당포들이 문을 닫아 그나마 남은 곳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데 찾아오는 분에게 다 대출을 해줄 순 없고 상환 능력이 있는지, 담보물 가치가 높은지 따지고 가려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트북만 들고 찾아오는 이들은 돌려보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딩동!’ 오후 4시, 전당포에 또 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