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민주당 내 몇 안 되는 소신파 김해영(47) 전 최고위원은 인터뷰 내내 “정치를 10년 하는 동안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건 처음”이라고 했다.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가진 그였지만, “국회의원 4년 동안은 절제된 발언을 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향해 뼈아픈 말을 가끔 써왔으나 인터뷰는 마다해왔다. 그런 그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돈 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 등을 보며 “민주당 다수가 침묵하는 걸 더는 두고 보기 힘들다”며 입을 열었다.
김 전 최고위원은 2016년 총선 때 야당 험지인 부산 연제구에서 당선됐다. 당시 마흔 살. 민주당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선 최연소였다. 2018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이해찬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딴 목소리를 내면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조국 사태 때는 “많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당에서 처음으로 조 전 법무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해찬 전 대표 면전에선 “왜 상대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느냐. 우리만 절대 선(善)이냐”고 따져 물었고, ‘비례민주당’ 창당 당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반대했다. 올 3월에도 페이스북에 “이 대표 같은 인물이 당대표라서 부끄럽다”고 적었다.
외롭게 싸워온 그를 지난달 16일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조국 사태’ 때 더 세게 비판하지 못한 걸 후회해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예, 예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할 말도 못 한다면 정치 안 하는 게 낫죠. 정치인으로 가장 두려운 건 국민이어야 하니까요.”
◇더 세게 말하지 못해 후회할 뿐
최근 2년간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2020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치에 가타부타 입을 댄다는 게 스스로 탐탁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던 김 전 의원은 사전 질문지 없이 3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야당의 주요 정치인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정치 입문 땐 친문이었잖아요.
“제가 문재인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했으니까 그렇게 불렸죠. 하지만 저는 사람 중심으로 가르는 것을 체질적으로 정말 싫어해요. 그냥 주류 쪽에 가까웠다고 할게요. 게다가 문 대통령은 변호사로 훌륭했지만 대통령으로선 아쉬움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다 확실한 비주류의 길을 걸었죠?
“최고위원을 하던 2019년 여름이었어요. 조국 사태로 시끄러웠는데 보좌진과 주변 모두가 소신 발언을 말렸어요. 조국 전 법무장관이 진영 내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거든요. 지금 이재명 대표 팬덤과는 비교도 안 됐어요. 그러나 저는 민주당의 가장 젊은 의원이었어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됐죠.”
-그래서요?
“서울 목동 원룸에 혼자 살 때였는데, 밤에 근처 공원을 수십 바퀴 돌았어요. 내 자식이 당한 문제였다면 어땠을까.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국민 공분 쪽에 서기로 한 거죠. 침묵할 거면 정치할 필요가 없다고 다시 생각했죠. 보좌진 앞에서 ‘나는 아무 말 못 할 거면 국회의원 그만할 거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급격하게 비주류가 됐죠.”
-편한 길을 놔두고 사서 고생하네요.
“더 세게 하지 못한 걸 후회해요. 당시 한 선배 의원이 ‘제발 부탁한다. 가만히 좀 있어달라. 한 번만 더 때리면 조국은 더 이상 못 버틴다’고 통사정을 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 회의에서 발언을 안 했군요?
“그때 청와대가 조국 전 장관 임명을 못 하게 막아야 했어요. 후회합니다.”
-그 뒤로도 당 지도부 일원으로 쓴소리를 이어갔어요.
“비공개 회의에서 이해찬 대표가 ‘하지 마’ ‘그만해’ 소리도 여러 번 질렀죠. 마음이 힘들었죠.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소수 의견을 낼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이 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경직된 정당이 됐어요. 지금은 국민의힘보다 더 획일적이에요.”
◇민주당, 조국 사태 제대로 사과 안했다
그는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 활동을 2년 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해찬 대표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네요.
“당이 이렇게 망가진 모든 책임이 이해찬 대표에게 있어요. 당시 철저한 진영 논리로 움직였어요. 어떻게 하면 저쪽을 나쁜 놈으로 만들까만 고민했죠. 뭘 던져야 표가 될까 그 궁리만 했죠. 이 대표는 민주당만이 선(善)이었어요. 저쪽은 악(惡)이니 우리는 뭘 해도 다 익스큐즈(양해)가 되는 거죠.”
-어땠나요.
“그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전부 표정이 굳어 있어요. 회의할 때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말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도 타협은 안 했죠?
“정치는 국민 통합이 목적인데, 국민 분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같았죠. 조국 수호는 명분이 약하니 프레임을 검찰 개혁으로 둔갑시켰어요. 한 사람 때문에 국민을 반으로 쪼개고 나라를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죠.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결국 민주당이 조국 사태를 사과했어요.
“통렬한 반성과 절절한 사과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 형식적이었죠. 결국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큰 단초가 됐어요.”
-내년 총선에 조 전 장관이 출마할 거란 얘기도 있어요.
“추미애, 조국이 윤석열 정부를 만든 공신 1, 2등이에요. 민주당에 마이너스지만, 출마는 본인 자유죠.”
-그래도 2020년 총선은 180석으로 대승했잖아요.
“그게 독이었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건 코로나 대응에 대한 결과였죠. 국민이 조국 사태를 받아들인다는 건 아니에요. 아직도 민주당은 모르는 것 같아요. 내일 총선을 치른다면 다수 석은 국민의힘이 될 겁니다. 여론조사? 믿으면 안 돼요.”
-원외에서 바라보는 요즘 민주당은 어떤가요?
“너무 실망스럽죠. 특히 제가 강조했던 청년 정치요. 나이만 어리다고 청년 청치인이 아닙니다. 기득권에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게 청년 정치의 핵심인데요. 요즘 청년 정치인은 기존의 정치인, 86운동권보다 더해요. 어디 가서 청년 정치 얘기를 못 할 거 같아요.”
-왜 민주당만 비판하냐는 말도 있어요.
“국민의힘을 욕할 게 없겠어요? 그러나 민주당 170명 가까운 의원이 매일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데 저까지 할 필요 있나요.”
◇이재명, 국가 통합 못 해
김 전 최고위원은 작년 페이스북에 이 대표에게 “그만하면 됐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시라”는 짧은 글을 썼다. “참다 참다 쓴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3월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인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도 모자라, 당대표 선거에 나와 77.7%라는 사상 최고 지지율을 받아 당선되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에선 큰 반발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 대표를 둘러싼 사건 관계자들의 극단 선택이 이어지자 김 전 최고위원은 “더 참을 순 없었다”고 했다. 이 글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건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짧은 문장에 제 모든 생각을 담았어요. 누구는 지금 대표 내려놓으면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는 식의 말을 하던데 이 대표에게 다음은 없어요. 이미 드러난 사실관계로도 한 국가의 지도자를 하기에는 어렵죠.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해야 하는데 적합하지 않아요.”
-어떤 심정으로 글을 썼나요.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상황에서 당을 방탄에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국회의원, 당대표에 출마했어요. 그 자체가 민주당엔 치명적이에요. 하루빨리 물러나야 합니다. 거대 야당은 대정부 견제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해요. 그런데 이 대표가 있어서 국민 신뢰가 워낙 낮아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합니다. 이 대표가 있는 민주당과 혁신은 형용 모순이죠. 이 대표가 있는 한 혁신도 없어요.”
-이 대표 측에서 항의는 안 했나요?
“안 오죠(웃음). 오히려 어떤 국회의원은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혼자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겠죠.”
-이재명 외에 대안이 없다고 하는데.
“이 대표 사퇴하면 ‘정청래가 대표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안이 없으면 정당 간판 내려야죠. 대중, 지지층은 금방 또 만들어내요. 당내 조응천 의원 같은 사람은 당 혁신을 잘 이끌 겁니다. 그런데 안 시켜주는 게 문제죠.”
-민주당의 혁신 방안이 뭔가요?
“김어준 부류와 손절해야 합니다. 당을 뒤흔드는데 거리 둬야죠. 진실을 왜곡하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닌 겁니다. 민주당은 사실에 기반을 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해요. 총선 앞두고 누구를 영입하느냐보다 누굴 쳐내느냐가 더 중요한 메시지예요. 정청래 같은 분, 오래하셨잖아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안심해도 된다고 보고서를 냈으니 신뢰를 해야죠. 다만 교차검증은 필요하다고 봐요. 민주당도 괴담을 통한 선동이 아니라 우려 전달을 다른 방식으로 해야죠.”
◇尹의 ‘쉬운 수능’, 초선 때 내가 하려 했던 말
국회의원 4년을 하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걸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당 지지자들에게 ‘찍히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기에. “한 명의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에요. 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어요.” 김 전 최고위원은 당시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시 확대를 주장했다. “수능을 쉽게 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어요.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니까요. 보좌진도 말렸고요.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얘기를 해서 반가웠습니다.”
-다둥이 아빠죠?
“중1 딸, 초5 아들, 일곱 살 딸과 재밌게 살아요. 애들 키우는 게 쉽지 않지만요.”
-저출생이 사회문제인데.
“저도 애들을 키우니 그 원인을 열심히 찾고 있어요. 하나는 주거, 부동산이죠. 그런데 집값은 금융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게 어려워요. 잘못 시그널을 주면 시장 전체가 크게 흔들리거든요. 그렇다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저는 교육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요?
“윤 대통령이 말한 ‘수능 킬러 문항 없애자’는 방향성에 찬성합니다. 수능 쉽게 내야 합니다. 변별력은 떨어지겠죠. 그러나 변별력 확보하려다가 나라가 소멸할 판이에요. 의원 시절에 교육과정 평가원 담당자를 불러다가 ‘수능 좀 쉽게 내면 안 되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그래요. 그래서 ‘변별력 좀 없으면 안 되냐’니까 ‘국가 경쟁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다시 물었죠. ‘수능 난이도와 국가 경쟁력 상관관계 연구가 있냐’고. 한참 말이 없더니 ‘그런 조사는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야당에선 비판이 심한데요.
“아쉬운 점은 있어요. 교육 정책은 예민해요. 부모와 학생이 유년 시절부터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함께 전력 질주를 하거든요. 돌발적 메시지보다는 정교한 프로세스를 거쳤다면 더 좋았을 텐데.”
-교육 얘기에 진심이네요.
“제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관련이 있거든요. 우리 사회는 미성년 단계에서 너무 많은 것이 결정돼요. 부모의 배경도 중요하고요. 뒤처지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 그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정치권에서 공적인 역할을 하자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어요.”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거든요.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내 입으로 흙수저라고 한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과 못 살고 고모집에서 컸어요. 고1 때는 6개월간 공장 일도 하고 막노동도 했어요.”
-뒤늦게 공부했군요.
“고3 때는 헤어 미용 직업 위탁 교육을 받아 수료했어요. 공부는 정말 못했어요. 수능에서 너무 운이 좋았어요. 부산대 법대에 입학했죠.”
-사법고시도 합격했잖아요.
“아버지가 2007년 말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항암 치료를 60번 가까이 받았는데 너무 괴로웠어요. 제가 아버지를 좋아했거든요. 그때 같이 머리를 빡빡 깎았죠. 사시 합격은 아버지 소원이었어요. 살아 계실 때 못 붙고, 돌아가시자마자 몇 달 만에 1차에 합격했죠. 이후 4년 만난 친구와 결혼했고요.”
◇내 역할 없다면 정치 안 해도 괜찮다
그는 민주당이 2022년 대선에 이어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자 8년을 해온 부산 연제구 지역위원장직을 내려놨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잖아요. 저라도 내려놔야 했어요. 한 명이 한 지역에서 뭔가를 오래하는 건 좋은 게 아니에요.”
-남들처럼 정치해도 되잖아요.
“정치인 대다수가 주류에 찍히지 않고 다지고 올라가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겠다고 생각해요.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에요. 저는 ‘당신들처럼 안 해도 정치적으로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깡’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원래 성격인 것 같아요.”
-후회한 적 없나요?
“전혀요. 정치란 건 방향성을 가지고 해야죠. 자리 따위에 연연할 거면, 국회의원을 열 번 한들, 대통령을 한들 허무할 겁니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시류에 영합 안 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 총선 출마 여부도 아직 못 정했어요. 반드시 출마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려운 얘기네요.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여건이 된다면 당내에서 세력을 규합해서 잘못된 관행, 기득권과 일전을 겨뤄보고 싶어요. 정치란 할 말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절반짜리죠. 나머지 반은 세력 규합이에요. 정치는 혼자 할 수는 없어요.”
-다른 지역 출마 가능성도 있을까요?
“제 얘기를 하는 건 참 어렵네요. 당에서 요청이 오면 험지라도 갈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운털 박힌 저한테 요청을 할까요?”
-금태섭 전 의원과 가까운데 혹시 신당 참여는.
“탈당할 생각은 없어요 아직. 당에서 제대로 일전도 못 벌여봤는데(웃음). 신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양당이 워낙 저러니까요. 어쨌거나 정말 좋은 정치인인 금 전 의원이 어떤 당이든, 무소속이든 다시 국회의원을 하는 걸 꼭 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잊힐 수도 있어요.
“정치인 김해영으로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줬어요. 시대 흐름이 나를 필요로 하면 역할이 올 것이고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야죠. 잊혀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정치 비판 글을 한 번씩 올리잖아요.
“정치인으로 쓴다기보다 태어난 값으로, 국회의원 4년을 한 것으로 ‘이 정도는 하고 살자’는 뜻에서요.”
그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첫 국회의원 선거 출마 때 적은 ‘가정 환경이 어려운 소년에게도 희망이 있는 세상, 방황하는 청소년에게도 꿈이 있는 세상, 정직하게 땀 흘린 청년에게 기회가 있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손 글씨를 보고.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서 위축이 많이 됐어요. 한 번은 국회 본청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허공에 줄이 하나 있더라고요. 줄 타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신명 나게 타면 박수 쳐주잖아요. 그러다가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걸 알지만 박수받으니까 막 탑니다. 그런 정치인들 민주당에 많아요. 방향성이 있어야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박수 못 받아도 그런 정치인이 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