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은 내 중심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스포츠다. 1983년부터 천하장사를 10번이나 거머쥔 이만기는 인터뷰에서 필승 전략이 있었는지 묻자 “내 씨름은 ‘역칠기삼’이었다”고 회고했다. “체력이 기본이에요. 정해진 훈련량보다 늘 많이 하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씨름을 하면서 예의, 노력, 중용을 배웠지요.”
모래판은 그에게 ‘인생 학교’였다. 씨름 선수는 은퇴해도 몸에서 힘을 빼는 데 3년 걸린다는 말이 있다. 바깥세상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이만기는 한때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쓴맛을 봤지만 이제 친근한 방송인이 됐다. 망가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니까 시청자들이 ‘천하장사도 우리처럼 평범하구나’ 하고 좋아해주신다”고 그는 말했다.
바벨과 고독한 싸움을 하던 장미란은 은퇴한 지 10년이다. 올림픽 역도 금·은·동메달리스트인 그도 이만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방송에서 MC가 인생과 역도의 닮은 점을 물었을 때 “무게를 견디면서 사는 것이 닮았다”고 답했다. 선수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거운 중량을 드는 것이었는데, 은퇴하고 보니까 인생도 그렇다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만나며 흔들리게 되더라고.
장미란이 말을 이었다. “무게를 드는 게 전문이기는 하지만 (은퇴 후) 이건 좀 무거운 것 같다고 하늘을 원망했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한바탕 울고 나니까 좀 가벼워졌어요. 어제는 너무 힘들었지만 오늘 새 하루를 맞는다는 것부터 감사했지요. 힘든 시간들을 지나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안정감, 그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역도도 인생도 주어진 무게를 견디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해볼 만하다.
한국 스포츠 스타들은 학창 시절 운동만 했다는 결핍감 때문인지 은퇴하고 나면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이만기도 장미란도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교수다. 그러나 ‘운동선수는 못 배웠다’는 세상의 편견은 여전하다. 최근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장미란에게도 야권 일각에서 날 선 비난이 날아왔다. 현역 시절 하루 최대 5만㎏을 들었던 역도 선수는 그 무게를 견디며 중심을 잃지 않았다. “염려해주신 만큼 그 이상으로 부응하겠다”는 대답이 묵직하고 어른스러웠다. 으라차차 장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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