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님 같은 분께서 저희한테 많이 가르쳐주셨으면 한다.” 지난 6월 14일, 김예지 의원의 대정부 질의 도중 한동훈 장관이 한 말이다. 그날 김예지 의원은 한 장관 등에게 ‘장애인학대 처벌 특례법’ 등의 제도개선과 장애인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설득했는데, 특히 가슴에 와닿은 것은 장애인을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코이 물고기에 비유한 점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충분치 않은 나라에선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렵지만, 시설을 제대로 갖춘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비슷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그 말은 장애인복지의 필요성을 모든 국민에게 각인시켜 줬다. 이게 가능했던 건 그녀 자신이 시각장애인으로,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였기 때문,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 3년간 151개의 법안을 발의해 그 중 28건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 20여 건이 장애 관련 법안이다. 그런데 김예지 같은 분이 지역구에 출마했다면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 의원은 ‘지역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전문가나 소외계층을 대변하기 위함’이라는 비례대표의 취지를 가장 잘 구현한 사례다.
김예지 의원 말고도 나름의 활약을 하는 비례 의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 뒷목을 잡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이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가 거대정당에서 공천을 받기에 결격사유가 있던 이들이 비례대표로 나온 경우, ‘흑석’으로 불리는 김의겸을 보자. 흑석동에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드러나 대변인에서 잘린 그는 같은 이유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기어이 국회에 입성한다. 언론인 출신이니 선진적인 언론환경을 만드는 일에 공헌했으면 좋으련만, 그가 한 것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비롯한 가짜 뉴스 양산이었다. 최근에는 양평 고속도로 의혹에 동참해 ‘단군 이래 최악의 이권 카르텔’이라는 말로 정부를 맹공 중인데, 하도 가짜 뉴스를 많이 퍼뜨리는 분이어서인지 이 의혹도 가짜구나 싶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최강욱은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확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자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를 통해 의원 배지를 단다. 법무관 출신이니 지난 정권에서 유리된 법치를 다시 세우는 데 기여했다면 좋으련만, 그가 한 것은 자신이 가담했던 채널A 사건의 피해자인 한동훈 장관을 괴롭히는 게 전부였다. 그러는 동안 재판부는 ‘인턴확인서가 위조된 게 맞는다’며 그에게 의원직 상실에 해당되는 형을 선고했고, 채널A 사건 당시 그가 했던 말도 허위임이 확인됐지만, 최강욱은 아직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둘째는 검증 안 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마구잡이로 비례대표 순번을 주는 경우다.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다 국회의원이 된 양이원영은 원전의 씨를 말리려 애쓰다, 일본의 후쿠시마 처리수 관련해 대목을 맞았다. 지난 4월 도쿄전력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더니, 얼마 전에는 기시다가 나토에 가서 비어있는 총리 관저로 원정시위를 다녀왔다. 여성운동가 권인숙은 여성의 권리가 지난 세월 비약적으로 신장됐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남녀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희한한 점은 온종일 여성의 권리만 부르짖는 분이 대통령 영부인에 대한 여성혐오적인 공격에는 철저하게 침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범주에 속하는 분 중 압권은 윤미향 의원. 위안부 할머니를 위하는 운동을 한다면서 후원금을 개인적으로 횡령했던 그녀는 지난 3년간 반일과 반미를 끊임없이 외치다, 최근 들어선 갑자기 고래를 지킨답시고 나대는 중이다.
셋째는 도대체 왜 뽑았는지 모르겠는 경우다. 정의당 류호정을 보자. 국회 등원 첫날 원피스를 입어 화제가 된 거야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도 관종짓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채용비리를 척결한답시고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으로 변신하고, 타투법 제정 관련해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기도 했으며, 얼마 전에는 퀴어 축제에 나가 복근을 자랑했다. 청년정치가 원래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간 8억여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동산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코로나 봉사를 나온 안철수 의원을 만나 비례대표 1번을 받았다. 보건복지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녀는 간호법 통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그녀에겐 간호사를 제외한 13개 보건의료단체의 반대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당선되진 않았지만,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군에는 필리핀에서 온 이자스민도 있었다. 새누리당 비례로 이미 국회의원을 했던 그녀가 다시 소환된 걸 보면, 각 당의 비례대표 순번을 채울 만큼 괜찮은 인재가 부족한 모양이다.
어쩌다 전문성이 있는 이를 비례대표로 뽑아놔도 문제는 남는다. 4년간 자기 역할을 다한 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비례 의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선을 위해서는 공천이 필연적인데, 당대표가 사실상 공천을 결정하다 보니 비례 의원은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단 당대표에게 충성하기 바쁘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을 보라. 후쿠시마 처리수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게 의사 대부분의 생각임에도,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 등에게 “마실 수 있느냐?”는 덜 떨어진 질문을 해대며 불안감을 증폭시키지 않았던가? 코로나 팬데믹은 물론 의사 파업 때도 제 역할을 못 했던 그녀가 의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한 건 이태원 참사 당시 닥터카를 타고 현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은 게 유일했는데, 이 또한 차기 공천을 위한 그녀 나름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인재풀도 적은 데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까지 있다면, 비례대표 수를 당분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역구에도 김남국. 장경태 같은 의원들이 있고, 다른 의원 중에도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치는 이들이 있을 테지만, 그들은 지역민의 선택이라는 검증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비례대표와는 다르게 봐주는 게 맞을 듯하다. 국민의 82%가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하는 건 이런 견지에서 당연한 일이건만, 민주당은 오히려 비례 확대를 주장하고 있단다. 민주당에게 한 마디, “매번 민심과 반대로 가는 거, 혹시 콘셉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