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듯 마는 듯 지리멸렬한 장마보다는 시작과 끝이 또렷한 장마가 반갑고 미덥기까지 하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이 조건반사에 가까운 충동의 내력을 곰곰이 따져보려다 말고 우산을 챙겨 ‘동래할매파전’을 찾아 나섰다. 동래파전을 파는 식당은 많지만 부산시가 지정한 향토음식점 1호이자 백년가게인 동래할매파전은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한 곳뿐이다.

지하철 4호선 수안역 역사 한쪽 벽면에는 조선시대 동래읍성의 유구가 드러나 있다. 외지인들에게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일대일 터지만, 이 유구는 개항 이전 부산의 중심이 어디였는지를 대변해준다. 동래할매파전은 한국전쟁 이후 동래 장터에서 팔던 장거리 음식이었다. 금정산 일대 파밭에서 나던 조선 쪽파에 부산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대합, 바지락, 키조개, 새우, 굴, 홍합 같은 해물을 곁들여 지져낸 것이 동래할매파전의 시작이었다.

1대 강매희 할머니가 팔던 이 장거리 음식은 ‘제일식당’을 개업한 2대 이윤선 할머니에게 전해졌고, 다시 3대 김옥자 할머니에 이르러 ‘동래할매파전’이라는 상호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70년 가까이 이어온 음식이 지금은 4대 김정희 사장의 손에 맡겨져 있다. 금정산 자락에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지금은 해풍을 맞고 자라 향이 진하고 당도가 높은 기장 쪽파를 쓴다.

수안역을 나와 먹자골목에 늘어선 곰장어, 해물탕, 조방낙지의 유혹을 뿌리치고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너른 정원을 품은 동래할매파전이 나온다. 여름꽃이 만발한 정원 한쪽에는 동래할매파전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늙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담장 너머로는 새 동래구청 청사의 터 파기가 한창이다.

기장 쪽파와 각종 해물에 쌀가루 반죽을 끼얹어 커다란 무쇠 번철 위에서 지져낸 동래해물파전. / 양세욱 제공

늦은 점심 시간인데도 식당은 분주했다. 동래파전과 함께 산성막걸리를 주문했다. 금정산 산성마을 화전민들이 생계를 위해 누룩을 빚어 만들기 시작했다는 막걸리다. 동래고둥찜, 골뱅이무침, 약초전병무침, 더덕구이, 영양묵무침, 웃기떡 같은 단품이 있고, 파전과 이 단품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뚜기상(1인 3만5000원), 뚜미상(1인 3만원)도 있지만 3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 실내는 차분하고, 사진과 소품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테이블 옆 중정에 놓인 수조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창밖 정원에는 능소화, 원추리, 풍접초가 만개했다.

유리벽 너머 주방에서는 번철(燔鐵) 위에 파전 지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주방에 놓인 커다란 무쇠 번철 두 개야말로 동래할매파전의 자랑이다. 기름을 두르고 다듬은 쪽파와 각종 해물을 올린 후 찹쌀, 멥쌀, 밀가루에 맛국물을 넣은 반죽을 끼얹어 이리저리 뒤집고 모양을 만들어가며 파전을 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붓고 뚜껑을 덮어 파전을 완성한다.

동래할매파전에서 내는 이 파전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밀가루 반죽에 오징어와 땡초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얇고 바삭하게 구워내는 보통 파전과는 맛도 모양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고 마지막에 뚜껑을 덮어 증기로 완성하는 두툼한 동래할매파전은 바삭한 식감과는 거리가 멀고 차라리 질척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왜 덜 익은 파전을 주냐는 항의를 가끔 받을 정도이다. 스테이크 굽기로 비유하자면 ‘레어’ 파전인 셈이다. 장마저도 간장이 아니라 초장을 찍어 먹는다. 물론 단골들은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은 데다 주인공인 파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찾고 또 찾는다.

비 오는 날의 조건반사적 충동에 이끌려 찾은 노포에서 향을 가득 품은 파전을 안주 삼아 마신 막걸리 두세 잔에 취기가 돌았다. 기분 좋은 낮술이었다. 후식으로 내준 호박식혜의 달달함까지 더해져 오감이 충만한 하루였다. 지루한 장맛비가 싫지만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