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민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기아타이거스의 투수 최지민(20)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야구 덕후(마니아), 방탄소년단의 박지민(28)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아이돌 덕후다.

그럼 두 번째 문제.

“이 기분은 뭐야 어떡해/ 아주 나이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반응은? NC다이노스 김주원(21)이 안타 한 방 쳐주길 바란다면 야구 덕후,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익살스러운 춤사위가 떠오른다면 아이돌 덕후다.

올해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성적 부진으로 인기가 식을 줄 알았던 한국프로야구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 2일 누적 관중 4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넷째로 빠른 페이스다. 2000년대 태어난 신인들이 뛰어난 성적과 준수한 외모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야구팬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15일 열리는 KBO 리그 올스타전도 드림팀의 사직 아이돌 김민석(19)과 나눔팀의 대전 왕자 문동주(20)의 인기 대결이 볼거리다. 새로운 ‘야구 팬덤’ 시대다.

지난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U-23(23세 이하)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힌 상무 야구단 소속의 조세진과 롯데자이언츠 소속 윤동희와 손성빈(왼쪽부터). 최근 국내 프로야구는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신인들이 활약하며 '야구 아이돌 시대를 열고 있다. / 인스타그램 @clair_no.28

◇가성비 덕후질

아이돌 덕후질보다 야구 덕후질이 더 좋은 이유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첫째, 경기를 거의 매일 한다. 연간 한두번 하는 아이돌 콘서트보다 자주 볼 수 있다. 그만큼 티케팅도 쉽다.

둘째, 티켓 가격이 싸다. 보통 1만원대 전후로 살 수 있으며, 가장 비싼 주말 스카이박스석도 7만원대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의 절반 가격이다.

세째, 사인만 받고 싶다면? 경기 전후 경기장 근처에만 있어도 쉽게 받을 수 있다. 특히 원정 버스 주변은 사인받기 좋은 명당이다. 홈팀 선수들도 거주하는 동네에 생각보다 자주 출몰해서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기 쉽다. 요즘 야구 선수들은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하다. 기아타이거즈 투수 이의리(21)는 관중석에서 던진 유니폼에도 사인을 해줘 ‘야구계 순둥이’로 불린다.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로또를 사는 심정으로 몇백만원씩 들여 많은 앨범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야 말로 가성비 좋은 덕질이다.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구단 유튜브들이 자체 콘텐츠를 만들며 덕질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팬덤이 커지는 이유다. 유튜브 한화이글스 TV는 신인 문현빈과 이민준이 실제로 사는 숙소를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감성으로 공개했다. 경기에 이길 때만 업로드하는 구단 유튜브 특성상, 지난 8연승 기간에는 “이글스 TV가 과로사할 지경”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이를 이끌어 가는 선수들도 젊은 선수들이라, 한화가 승리할 때마다 나오는 닭그림 밈(인터넷 유행어)도 어린 닭으로 바뀌었다. 국내 OTT 왓챠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 : 클럽하우스’도 다시 인기다.

각 구단이 공개한 선수들 어린 시절 사진도 화제다. 롯데의 윤동희가 머리를 휘날리며 찍은 사진은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끝내기 안타를 친 후에는 이순철 해설의 “모자를 벗고 인터뷰하면 팬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조언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젊은 유망주가 많은 NC 다이노스는 여성 팬들 사이에서 ‘공식 아이돌 구단’으로도 불린다. 특히 투수 하준영(24)은 최근 아이돌 그룹을 찾아 헤매는 여성 팬에게 가장 인기 많은 두부상이라고 한다.

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신인 선수가 많은 2군(퓨처스 리그)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망한 선수를 디깅(발굴)해 응원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 “내 선수 내가 스타 만든다”는 심리다.

야구가 팬덤화되면서 아이돌 문화도 전수되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 변우혁(23) 선수는 최근 팬에게 커피차를 선물받았다. 소속사(소속 구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진행하는 트럭 시위도 비슷하다. 현재 꼴찌인 삼성 라이온즈 팬카페 일동은 올해만 세 번째 트럭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장점이 많은 야구장 데이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덕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야구의 장점이다.

야구장은 가장 인기 있는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 티켓 가격이 오르고, 볼만한 영화가 줄어들면서 다들 야구장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치킨, 떡볶이, 삼겹살 등 야구장 데이트 중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영화관보다 다양하다. 중독성 있는 응원가가 많아 경기 전 미리 유튜브로 노래 연습을 하고 가기도 한다. 대형 노래방처럼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 타이거즈의 소크라테스, NC 다이노스의 도태훈, LG 트윈스의 오스틴 응원가는 그 중독성 때문에 ‘수능 금지곡’으로도 불린다. 일부 팬은 경기 후 승리팀이 진행하는 대규모 뒤풀이도 재미있다고 말한다.

최근 블록코어룩(유니폼 패션)이 유행하면서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좋다. 걸그룹 블랙핑크, 뉴진스 등이 유행을 주도하는 블록코어룩은 상의를 크게 입어 귀여운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것이 포인트. 그러다 보니, 각 구단 유니폼도 XL 사이즈가 가장 먼저 매진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는 ‘야구장 브이로그(일상 영상)’ ‘야구장 패션’ ‘야구장 데이트’ 등의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온다. 영화관과 달리 사진 촬영이 자유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