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허씨 종중 사당과 연정(蓮亭)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린 지난 14일 새벽 4시에 서울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으로 ‘호암 이병철 생가’를 찾았다. 남강 솥바위[정암] 20리 안에 대한민국 국부(國富)들이 나온 명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오래였다. 고속도로 빗물이 물보라를 일으킬 때마다 차가 휘청거렸다. 긴장하며 여섯 시간을 운전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오전 10시에 이병철 생가에 닿았다. 관리인이 대문을 열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마당과 생가 주변이 더 푸르고 깨끗해 보였다. 이날 하루에 삼성부터 금성(LG와 GS 전신)·효성 창업자 생가들을 둘러봤다. 답사는 이병철 생가~남강 솥바위~조홍제 생가~구인회·허만정 생가~지수초등학교(구인회와 이병철이 다닌 학교) 순으로 하면 효과적이다. 이날 창업자 생가 답사의 중심에는 남강 솥바위가 있었다. ‘반경 20리 안에 국부를 배출한다’는 전설의 바위다.

그래픽=송윤혜

◇솥바위와 하늘의 별

출발 전부터 품은 의문이 있었다. “이곳 창업자들은 초기 회사 이름에 왜 모두 별 ‘성(星)’자를 넣었을까?” 삼성(三星)·효성(曉星)·금성(金星) 등은 우연일까? 솥바위와는 무슨 관계일까?

인간의 복록은 하늘의 별이 주관한다. 인간과 별은 운명의 쌍둥이. 중국 고대 사상가 왕충(王充)의 말이다. “살고 죽는 것과 빈부귀천은 모두 운명이다. 하늘의 별에 백 가지 등급이 있다. 사람은 별의 기를 받을 때 귀천이 정해진다. 별자리 등급에 따른 것이다.”

경남 의령에 있는 이병철 생가의 사랑채 앞 우물. /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회사 이름에 ‘별(성·星)’이 들어간 이유다. 삼성은 삼태성(三台星)을 말한다. 북두칠성 아래에 있는 3개 군단의 별 이름이다. 풍수 고전 ‘감룡경’은 “삼태성은 뭇 산의 할아버지 산이 된다”고 하였다. 많은 ‘손자 기업’들을 배출한다는 뜻이다. 효성은 창업자 조홍제가 즐겨 썼던 “동방명성(東方明星)”, 즉 동쪽 새벽을 비추는(曉) 별(星)에서 유래한다. LG·GS의 금성(金星)은 우리가 아는 금성이다. 동시에 “황금(金)을 가져다주는 별(星)”이란 뜻에서 지어졌다.

별과 솥바위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귀한 명을 받으면 그 길조가 땅에 나타난다. 하늘에서는 별이요, 땅에서는 산이다. 땅에 내려온 하늘의 기운에 따라 그 땅에 사는 사람의 길흉화복이 달라진다. 산보다 강하고 귀한 것은 특이한 바위이다.

남강 물 가운데 솥바위에 발이 세 개 있다. 하늘의 자미원·태미원·천시원 등 별 군단을 상징한다. 이들은 제왕의 기를 주관하는데, 하늘의 별이 솥바위로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왜 평지가 아닌 물 한복판일까?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린다’는 것이 풍수설이다. 물 가운데 바위가 있어 재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바위를 ‘나성(羅星)’이라 한다. 중국의 황하·장강도 이런 바위가 있는 곳에 부자 도시를 만들었다. 솥바위도 그와 같았다.

솥바위를 한강·낙동강 물 가운데로 옮기면 또 국부가 배출될까?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하는데, 가능성은 반반이다. 첫째, 솥바위가 있는 곳의 역사지리를 살펴야 한다. 현장에 가 보니 솥바위 근처에 정암나루와 정암원(院)이 있었다. ‘원(院)’이란 고려·조선 시대에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상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고을. 이태원·조치원·장호원 등이 그랬다. 개경·한양 소식을 다른 지역보다 빨리 접하는 곳이다.

또 남해에서 낙동강을 거쳐 이곳까지 배들이 드나들었다. 지금보다 물류가 활발했고 시대 변화를 빨리 감지했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이병철·허만정·구인회·조홍제 선대가 천석·만석지기 부농이었지만, 20세기 초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여 재빨리 상업자본으로 전환한 것도 지리 덕분이었다. 둘째, 창업자 생가들과 같은 풍수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남강 물 한가운데 있는 솥바위 /김두규 제공

◇이병철 생가 관람 팁

독자가 풍수적으로 창업자 생가를 관람하는 길을 소개한다. 좋은 기를 받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병철 생가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에 있다. 대문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 앞에 우물이 있다. 이어서 안채가 나온다. 안채 앞에도 우물이 있다. 관광객들이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집 앞 정면에 있는 우물을 풍수에서 진응수(眞應水)라 한다. 물맛이 달고 맑고 향기가 있다. 이 물을 계속 마시면 큰 부귀를 누린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이곳에 기도하라.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인촌 김성수 생가가 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물을 마주한다. 역시 진응수다. 다른 부잣집 생가에도 우물이 있을 수 있다. 사랑채 전면에 있어야 진응수가 된다.

이병철 생가 풍수 읽기에서 봐야 할 두 번째 대상은 안채를 감싸는 퇴적암 절벽이다. 마치 시루떡이나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모습. 이러한 바위는 권력의 기운을 증폭한다. 승진·합격·당선을 원하면 이곳에 등을 대고 기를 받으시라.

이병철 생가를 보는 세 번째 방법은 동네 밖 멀리서 생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반달 모양 뒷산이 감싸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백제 부여 반월성, 신라 경주 반월성, 고구려 평양 반월성도 반달이 보름달 되어 가는 터를 상징했다.

◇진주 승산마을 가 보니

LG·GS 창업주 구인회·허만정의 생가가 있는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은 이병철 생가보다 더 큰 반월형이다. 동네 앞으로 개천이 흐르고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몇백 년 동안 구씨·허씨가 지배세력이 된 물적 토대다. 때로는 지명이 땅의 성격을 말해준다. 지수(智水)면 승산(勝山)리가 그렇다. ‘지혜로운 물’과 ‘빼어난 산’을 가진 마을이란 뜻이다.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는 풍수 격언과 부합한다. 마을 뒷산 산책로를 걸으면 부귀의 기를 받을 수 있다.

‘풍수 읽기’가 가장 어려운 곳은 함안 군북면 동촌3길에 있는 효성 창업자 조홍제 생가였다. 산도 없고 물도 없이 평지에 홀로 서 있었다. 인터넷 지도로 ‘조홍제 생가’를 검색하면 그 흐름을 알 수 있다. 백이산 지맥이 평지에 숨어서 생가터로 이어진다. 이런 지맥을 숨은 용, 즉 잠룡(潛龍)이라 한다. 그 좌우에서 석교천과 명관천이 잠룡을 호위한다. 조홍제 5대조가 이 터를 잡았던 조선 후기는 풍수가 극성을 부린 시절이었다. 실학자 이중환이 ‘마을을 고르는 책’이란 뜻의 ‘택리지’(1751년)를 쓴 시대적 배경이다.

‘택리지’는 집터를 잡는 데 참고할 할 네 가지를 언급한다. 지리·생리(생산력)·인심·아름다운 산수가 그것이다. 좋은 지리란 “들이 넓을수록 터가 더 아름다운 것인데, 해와 달과 별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면 인재가 많이 나온다”고 하였다. 조홍제 생가가 그와 같았다.

◇솥바위 20리 안에 국부가 또 태어날까?

그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 과거에는 솥바위 부근에 나루와 원(院)이 있었다. 이병철·허만정·구인회·조홍제 생가는 당시 도보로 하루 생활권이었다. 학연·혈연·지연·혼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이들은 1930년대 일본과 중국을 견학하고 새 문물을 받아들였다. 농업자본을 상업자본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감이 있었다. 창업자와 그 후계자들은 그 뒤에도 상업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 그리고 IT자본으로 끊임없이 변신했다.

좋은 터를 가졌다 할지라도 시대와 호응하는 지혜가 없다면 지금의 세계적 기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산천 만드는 것은 하늘이지만, 그 산천을 활용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다”(‘발미론’)는 말마따나 사람의 일이다.

만약 창업자 생가에서 누군가가 태어난다면? 분명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 전북 고창 인촌 김성수 생가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가를 활용해 성공한 사람이 있다.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 인촌과 인척 관계인 정운천은 인촌이 태어난 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잠자리와 탯자리가 풍수상 좋아야 한다”고 믿었다. 고등학교·대학교 재수 시절에 자신이 태어난 인촌 생가 그 방에서 공부했다. 그때마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 두 자녀도 그 방에서 잉태됐다.

진주 승산마을은 이제 ‘K산업화’ 성지가 돼 외국인들이 찾는다. 의령의 이병철 생가도 그렇다. 재물의 기(氣), 권력의 기, 인물의 기가 한 세트처럼 모여 있는 곳이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거기서 외국인들에게 ‘K풍수’를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