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은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어른 팔뚝만 한 순대, 갓 데친 김치만두, 선어회, 튀기듯이 부쳐내는 빈대떡 같은 것들이 만화 같은 압도적인 부피와 형태로 깔려 있었다. 외국인들은 한 손에는 조미김, 한국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인파를 헤치며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인파가 늘어서는 곳은 역시 시장의 중앙 교차로였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이 엇갈릴 때마다 손님을 부르는 식당 주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계천 쪽 시장 후문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숫자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곳에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주영이네’라는 집이 있었다.

서울 광장시장 남1문 근처에 있는 ‘주영이네’의 쌀보리비빔밥.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포털사이트에서 시장 안 가게들은 따로 검색이 되지 않는다. 대신 ‘동부A11호’라는 건조한 호수를 보고 위치를 어림잡을 수밖에 없다. 출구 쪽 바로 앞에 있는 이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을 불러 모으기는 힘든 자리였다. 시장 후문 쪽일수록 사람들은 자리를 찾기보다 빨리 밖으로 나가거나 혹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이른바 ‘사람이 흘러가는’ 목이다.

부모님도 어릴 적 부산 범일동 중앙시장 후문에서 장사를 했다. 바쁜 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부모님은 소리를 높여 호객을 하기도 하고, 매대를 직접 만들어 가게 앞에 빼놓기도 했다. 시장 밖에서 보일 정도로 출구에 가깝게 붙은 이 집을 보니 어릴 적 부모님의 작은 가게가 떠올랐다. 주인장에게 물으니 가게를 연 지 6년이 되었다고 했다. 이 집이 들어오기 전까지 모두 망해 나간 자리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전까지 한번도 식당을 안 해봤는데 참 힘들었지요.” 주인장은 고개를 작게 흔들며 시선을 내렸다.

손칼국수, 찐만두, 잔치국수 등 이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메뉴가 다 있지만 그중 단골들이 자주 청하는 것은 쌀보리비빔밥이다. 처음 보리밥을 먹은 것은 부모님 가게가 쉬는 날이었다.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부모님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지금처럼 아케이드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부모님은 늦잠을 잤다. 학교에서 돌아와도 부모님은 여전히 집에 있었다. 아마 삼겹살이나 그런 음식을 기대했던 것 같다. 대신 어머니는 보리밥을 해서 앞에 내놓았다. “이게 보리밥이야. 먹어봐. 건강에 좋대.” 어머니의 한마디에 동생과 나는 “엄마도 보릿고개 알아?”라고 되물었다. 아버지는 옆에서 “옛날에는 여름에 보리밥 자주 먹었지”라고 거들었다. 그러고는 스테인리스 대접에 보리밥, 나물, 고추장을 넣고는 병에 담긴 참기름을 한 숟가락 뿌린 뒤 솥뚜껑만 한 큰 손으로 숟가락을 붙잡아 노 젓듯 밥을 비볐다. 우리 형제는 옆에 앉아 참기름을 더 넣어달라며 떼를 쓰기도 했다.

어릴 적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시장 사람들이 익숙한 모습으로 포장 주문을 넣고 갔다. 주문을 넣자 주인장은 빠른 손놀림으로 좌판에 가득 쌓인 나물들을 양푼에 담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10여 가지, 무채나물, 콩나물, 상추, 돌나물, 부추, 시래기, 목이버섯, 고사리 등 나물을 한 줌씩 보리밥 위에 올렸다. 여기에 직접 담근 열무김치를 또 한가득 넣었다. 그리고 고추장을 한 숟가락, 다시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올리고 깻가루와 참기름을 뿌렸다. 보기만 해도 이미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시락국이 담겼고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도 함께 나왔다.

음식이 앞에 놓였으니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달걀 노른자를 터뜨렸다. 여름 한철 농사를 짓다 나온 일꾼처럼 손아귀에 힘을 줘가며 나물을 비볐다. 가득 쌓인 나물 틈으로 통통한 보리가 보였다. 크게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열무김치의 시고 시원한 맛이 먼저 느껴졌다. 그뒤로 고소하고 달달하며 또 그윽한 나물의 향이 입안 가득히 들어찼다.

보통 비빔밥을 먹다 보면 너무 기름지거나 혹은 뻑뻑하여 무슨 맛인지 모를 때가 흔하다. 이 집 비빔밥은 통통한 보리알 사이사이에 틈이 생겨 질퍽거리지 않고 식감이 가볍고 산뜻했다. 보리를 잘 불려 지은 덕에 거친 맛은 전혀 없었고 대신 구수한 맛과 탱글한 질감만 남았다. 그릇 바닥이 보였지만 속이 부대끼지 않고 편했다.

주인장은 사람들이 몰아치는데도 허둥대지 않고 본인만의 리듬으로 그릇을 담고 또 치웠다. 그 모습을 보자 이렇게 음식이 사람을 닮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그릇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비운 자리에 금세 또 다른 이가 앉았다. 저 멀리 푸른 하늘 너머로 여름이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었다.

#주영이네(광장시장 남1문 근처 동부A11호, 전화번호 없음): 쌀보리비빔밥 7000원, 찐만두 6000원, 잔치국수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