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표 와인’. 국내 와인 애호가들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에서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와인을 이렇게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부른다. 닭, 정확히는 검은 수탉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와인병 라벨이나 병목에 검은 수탉이 빠짐없이 박혀 있다.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왜 ‘갈로 네로(Gallo Nero)’, 즉 검은 수탉을 상징으로 삼았을까.

◇피렌체 검은 수탉 vs. 시에나 흰 수탉

겹겹이 포개지는 높고 낮은 언덕, 붉은 테라코타 지붕을 얹은 농가,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사이프러스 나무, 언덕 비탈을 따라 조성된 포도밭….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꼽히는 토스카나 전원의 전형을 보여주는 키안티 클라시코는 오래전부터 최고의 와인 산지로 인정받았다.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와인 양조 지역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 이전인 기원전 800년쯤 에트루리아인들이 정착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다. 공식적인 문헌 기록은 1398년에 처음 등장했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북쪽으로는 피렌체(Firenze), 남쪽으로는 시에나(Siena) 사이에 있다. 피렌체와 시에나는 중세 시대 토스카나 전체의 패권을 다투는 라이벌 도시국가였다. 두 도시는 교황들도 즐겨 마실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와인 산지이자 군사 요충지인 키안티를 두고 크고 작은 전투를 끝없이 벌였다. 싸우다 지친 피렌체와 시에나는 묘안을 떠올렸다. 새벽 첫닭이 울면 피렌체와 시에나에서 각각 기병(騎兵)이 말을 달려 둘이 만나는 지점을 두 도시의 경계로 삼기로 합의했다.

시에나는 힘차게 울라며 흰 수탉을 배불리 먹였다. 패착이었다. 시에나의 흰 수탉은 동틀 무렵 느긋하게 일어나 울었다. 피렌체는 검은 수탉을 굶겼다. 배가 고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피렌체의 검은 수탉은 동트기도 전부터 울어댔다. 피렌체 기병이 시에나 기병보다 훨씬 먼저 출발할 수 있었고,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 대부분이 피렌체 차지가 됐다. 현재는 피렌체와 시에나에 거의 절반씩 속해 있다.

'갈로 네로' 즉 검은 수탉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상징이다./키안티클라시코와인협회

키안티 클라시코는 ‘원조 키안티’라는 뜻이다. 토스카나에는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라는 2개의 와인 산지가 있다. 지도를 보면 키안티가 키안티 클라시코를 감싼 모양이다. 1716년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 코지모 3세 대공이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마을들을 ‘키안티’로 지정했다. 와인 생산지가 공식 지정된 세계 최초 사례다. 코지모 대공이 지정한 ‘키안티’가 현재의 ‘키안티 클라시코’다.

1900년대 들어 키안티 와인의 수요가 급증했다. 코지모 대공이 설정한 키안티 구역 밖에서도 질 낮은 키안티 와인이 쏟아졌다. 와인 생산자 33명이 “우리 와인의 명성을 지키자”며 모였고,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를 창설했다. 코지모 대공이 애초 설정했던 구역을 키안티 클라시코로 구분해달라고 이탈리아 정부에 청원했고, 1924년 마침내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검은 수탉을 자신들의 상징물로 등록했다. 현재 협회에는 생산자 480명이 소속돼 있다.

검은 수탉을 와인병에 붙이려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에서 정한 생산 기준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와인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지역 안에서 재배한 포도만을 사용한다. 포도 품종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산지오베제를 80% 이상 써야 한다. 수확량은 헥타르(ha)당 7.5t, 나무 한 그루당 2㎏을 넘어선 안 된다. 협회 관계자는 “같은 면적의 땅에서 많은 포도를 재배하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수확량을 제한해 풍미가 농축된 포도를 생산하고, 결과적으로 와인 품질을 고급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와인은 자연의 선물… 인간은 보조할 뿐”

와인은 흔히 ‘천지인(天地人)의 결정체’라고 한다. 하늘과 땅, 즉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란 뜻이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자들은 조상 대대로 지켜온 천지인의 신념을 와인에 담는다. 이는 키안티 클라시코 협회 소속 와이너리 ‘콜레 베레토’에 설치된 ‘구름 재는 남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벨기에 작가 얀 파브르(Fabre)의 작품으로, 사다리에 올라가 커다란 구름을 향해 팔 벌린 채 자를 들고 서 있는 남자를 표현한 청동 조각상이다.

콜레 베레토 와인메이커 베르나르도 비앙키(Bianchi)는 “자로 측정할 수 없는 구름을 재려고 하는,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인간을 비꼬는 작품으로,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우리의 와인 철학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포도가 좋으면 저는 할 일이 없어요. 그냥 놔두면 좋은 와인이 되죠. 와인은 자연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생산자들 가운데 유기농 비율이 60%에 달한다. 이탈리아 와인 산지 중 가장 높다.

벨기에 작가 얀 파브르의 '구름 재는 남자'. '콜레 베레토' 와이너리에 설치돼 있다./김성윤 기자

‘폰토디’ 와이너리 주인이자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를 이끄는 조반니 마네티(Manetti) 회장은 유기농보다 더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는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농법으로 와인을 만든다. 마네티가 나를 자신의 지프차에 태워 포도밭으로 안내했다. 지프차가 멈추자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 포도밭 한가운데 울타리가 둘러져 있었고, 온몸이 흰 털로 덮인 소 65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한우와 비슷한, 토스카나 토종 키아니나(Chianina) 소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렌체식 스테이크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는 본래 키아니나 소고기로 구워야 제맛이다.

와이너리에서 왜 소를 키울까. 마네티 회장은 “우리는 100%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다”며 “소들이 유기농 풀과 보리를 먹고 배설한 분뇨를 포도나무 가지와 이파리, 와인 양조하고 남은 찌꺼기, 건초 등과 섞어 1년간 숙성시켜 퇴비를 만든다. 화학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폰토디에서는 와인 양조 전 과정에 음력을 따른다”고도 했다. 중세도 아니고 21세기에 웬 미신인가 싶었지만, 꾹 참고 그의 설명을 들었다.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은 과학입니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 중력이 증가해 액체의 부피가 늘어납니다. 밀물이 한 예지요. 우리는 이 같은 원리를 이용해 포도 수확, 와인을 병에 담는 작업을 달이 기울 때만 진행합니다. 알맹이 속 포도즙이 응축돼 당도가 더 높아지고, 찌꺼기가 가라앉아 여과 작업은 더 쉽거든요.”

모든 양조 설비는 공정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도록 설계했다. 인위적 힘은 거의 가하지 않고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게 했다. 마네티 회장은 “인간이 언제나 땅과 하늘 사이에 있듯이 자연 그대로를 그냥 담는다는 마음으로 와인을 만든다”고 했다. “자연이 와인을 탄생시킵니다. 저는 와인메이커가 아니라 자연의 보조자일 뿐이고요.”

◇와인부터 아트까지, 와이너리 투어

와이너리 투어는 와인 애호가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해외 여행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피렌체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와인 산지. 이 지역 거의 모든 와이너리가 와인 테이스팅(시음)과 와이너리 투어, 숙박 시설을 운영한다. 반나절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며칠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 예약 필수다.

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Antinori nel Chianti Classico)는 26세대에 걸쳐 700년 가까이 와인을 빚어온 이탈리아 와인 명가 안티노리의 본사 겸 와이너리다. 7년 동안 지어 2015년에 완공한 건물은 세계 와인업계뿐 아니라 건축업계에서도 화제가 됐다. 건물 감상만을 위해 찾는 방문객들이 있을 정도다. 멀리서 보면 포도밭만 보인다. 건축가 마르코 카사몬티(Casamonti)는 언덕 지형을 그대로 살려 경사면을 따라 설계했다. 지면 아래 거대한 나선형 계단으로 모든 층들이 연결되는 최첨단 건물에는 양조 시설과 셀러, 테이스팅룸, 레스토랑, 역사 전시관, 도서관 등 복합 문화 공간이 들어차 있다. 전통을 지키되 첨단을 수용해 진화시켜 나가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정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antinori.it

이탈리아 와인 명가 안티노리가 만든 복합 와인 문화 공간 '안티노리 넬 키안티 클라시코'./안티노리

카스텔로 디 베라차노(Castello di Verrazzano)는 16세기 뉴욕을 발견한 이탈리아 탐험가 조반니 디 베라차노의 가문이 소유했던 1000년 고성(古城)에 있다. ‘멧돼지가 많은 곳’이란 이름처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18세기 와인 거래 장부 등 전통의 숨결이 느껴진다. 포도밭 한가운데 객실 6개와 아파트(별채) 2동으로 구성된 숙박시설이 있다. 식당이 매우 훌륭하다. www.verrazzano.com

폰토디(Fontodi)는 키안티 클라시코 정중앙에 자리한 와이너리. 조개껍데기처럼 흘러내린다 하여 ‘콩카 도로(Conca d’Oro·황금 조개)’라 불리는 포도밭에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와인을 빚는다. 이곳 와인은 풍미의 집중도가 탁월하고 힘이 느껴지는데, 숙성될수록 매끄러운 질감과 우아한 복합미까지 갖춘다는 평. 포도밭 한가운데에 2~8인이 묵을 수 있는 빌라형 숙소도 운영한다. www.fontodi.com

카스텔로 디 볼파이아(Castello di Volpaia)는 마을 전체가 와이너리라 할 만하다. 마스케로니(Mascheroni) 가문은 1966년 최신 양조 시설을 도입하면서 11세기 건물 10여 채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구슬 꿰듯 송수관으로 연결해 와이너리로 활용하고 있다.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덕분에 볼파이아는 중세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마을로 평가받는다. volpaia.com

콜레 베레토(Colle Bereto)는 교회 소유였던 포도밭과 양조장을 1970년대 핀자우티 가문이 매입해 대대적인 투자 끝에 1983년 첫 빈티지를 출시했다. 최상의 품질을 위해 와인 양조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매끈한 질감에서 신선하고 농밀한 과일향이 세련되게 피어오른다. 숙박 시설은 없다. www.collebereto.it

오르마니(Ormanni)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피렌체 유력 가문 오르마니가 소유했던 유서 깊은 와이너리. 1818년 이곳을 매입한 브리니(Brini) 가문이 200년 넘게 운영 중이다. 포도밭을 모두 유기농으로 경작하며 스테인리스 스틸, 콘크리트, 오크 배럴 등 다양한 용기를 활용해 테루아의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와인을 만든다. www.ormanni.net

'카스텔로 디 아마' 지하 셀러에 설치된 이우환 화백의 작품. 세계적 예술가들의 작품이 와이너리 곳곳에 배치됐다./카스텔로 디 아마
프랑스 개념 예술가 다니엘 뷔렌의 설치 미술품./카스텔로 디 아마

카스텔로 디 아마(Castello di Ama)는 와이너리인지 미술관인지 헷갈린다. 아니시 카푸어, 루이즈 부르주아 등 세계 최정상급 예술가들의 작품이 와이너리 곳곳에 전시·설치돼 있다. 이우환 화백 작품은 와이너리 가장 깊숙한 지하 셀러에서 만날 수 있다. 1970년대 다시 심은 포도나무에서 재배한 포도를 최첨단 양조 시설로 빚어낸 와인은 또 다른 예술품이다. 풍미가 신선하고 응축미가 뛰어나며 감미로운 과일향이 오래도록 여운처럼 남는 우아한 와인이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와이너리와 마을,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대표 와인 3종을 시음할 수 있다. 럭셔리한 토스카나 스타일 스위트도 5개 있다. castellodiama.com

로카 델레 마치에(Rocca delle Macie)는 ‘내 이름은 튜니티’ 등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영화)을 유행시킨 영화제작자 이탈로 징가렐리(Zingarelli)가 1973년 설립했다. 와이너리 박물관에 들어서면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복서와 스턴트맨을 거쳐 영화 제작사를 차리기까지 징가렐리의 인생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투어와 테이스팅 외에도 포도밭 피크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도 있다. www.roccadellemacie.com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산 펠리체(San Felice)는 고대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왔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간단한 투어와 테이스팅부터 마스터클래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급 리조트형 호텔 ‘보르고 산 펠리체(Borgo San Felice)’도 운영한다. www.agricolasanfelice.it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Castello di Gabbiano)는 키안티 클라시코 홍보 영상에도 등장하는 12세기 고성(古城)에 있다. 아로마(향)가 풍부하고 탄닌이 부드러워 마시기 편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든다. 아직 국내 수입되지 않으니 시음 후 마음에 들면 사와도 좋겠다.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세련된 객실 6개와 아파트(별채) 4채도 있다. www.castellogabbiano.it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Castello di Querceto)는 1924년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협회 창립 멤버다. 풍부한 과일향과 우아한 향신료 향이 조화롭다고 평가받는다. 몬티 델 키안티(Monti del Chianti) 산맥을 배경으로 포도밭이 흐르듯 펼쳐진다. 15~26유로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투어 &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2~4인이 머물 수 있는 아파트와 객실도 있다. www.castellodiquerceto.it

라 살라 델 토리아노(La Sala del Torriano)는 소박한 토스카나 농가에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와이너리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되는 투어 프로그램에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투어, 대표 와인 3종 시음이 포함된다. 와이너리에서 10㎞ 떨어진 농가 주택도 이용 가능하다. www.lasala.it

◇스테이크·돼지 비계·소 내장… 어떤 음식과도 찰떡궁합

키안티 클라시코는 대표적 ‘음식 친화적 와인(food friendly)’이다. 와인만 마셔도 맛있지만, 산뜻한 산미와 촘촘한 탄닌이 여러 음식과 두루 어울리며 식사를 더욱 즐겁게 만드는 와인이란 뜻이다. 한식, 중식, 일식과도 잘 어울리니 동향(同鄕)인 토스카나 음식과의 궁합은 말할 필요도 없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과 찰떡궁합인 토스카나 음식으로는 비스테카 피오렌티나(bistecca fiorentina)가 대표적이다. T자 모양 뼈 한쪽에 안심, 다른 쪽에는 등심이 붙은 커다란 스테이크. 장작불에 구워 소금과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피렌체 식당에서는 어떻게 구울지 절대 묻지 않는다. 물어도 “비스테카 피오렌테나는 레어(rare)로 먹어야 한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리고 “고기 두께가 5㎝ 이상 돼야 하고 클수록 맛있다”고 말한다. 보통 둘 이상이 나눠 먹는다.

'라 로칸다 디 피에트라쿠파' 레스토랑의 송로버섯을 얹은 비둘기 오븐 구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과 잘 어울렸다./김성윤 기자

크로스티니(crostini)는 본격적인 식사 전 와인·칵테일 같은 음료와 함께 먹는 전채(카나페)의 일종.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서는 브루스케타(bruschetta)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삭하게 구운 작은 빵에 치즈나 햄, 소시지, 채소 등을 얹어 먹는다. 토스카나가 자랑하는 살루메(가공육) 중 하나인 라르도(lardo)를 얹기도 한다.

라르도는 순수한 돼지비계로, 대리석 용기에 소금·향신료와 함께 차곡차곡 쌓아 최소 6개월 숙성하면 대리석처럼 새하얀 덩어리가 된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 입에 넣으면 혀 위에서 체온만으로 사르르 녹으면서 짭조름하고 향긋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때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탈리아 여러 곳에서 나오지만, 콜로나타(Colonnata)산 라르도가 특히 유명하다. 콜로나타는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도 사용했던 세계적 대리석 산지 토스카나 카라라(Carrara)의 작은 마을. 토스카나 사람들은 “카라라 대리석이라야 라르도가 제맛이 난다”고 주장한다.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과 어울릴 수프로는 리볼리타(ribollita)가 있다. ‘다시 끓인(reboiled)’이란 뜻으로, 토마토를 주재료로 한 야채 수프에 딱딱하게 굳은 빵을 부스러뜨려 넣고 다시 끓여 만든다. 가난했던 과거에 주린 배를 채우려 자원과 지혜를 짜내 만들어낸 음식이 이제 토스카나 대표 음식이 됐다.

트리파(trippa)는 피렌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솔푸드다. 소 내장, 정확히는 첫째 위인 양, 둘째 위 벌집위, 셋째 위 천엽을 말한다. 토마토 소스에 푹 끓인 트리파를 그냥 먹기도 하고 반으로 가른 빵에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피렌체 ‘메르카토 첸트랄레(중앙시장)’에 가면 트리파 샌드위치로 이름난 가게가 많다. 어떤 레드 와인과도 어울리지만 역시 키안티 클라시코와 천생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