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체육센터 수영장에선 여섯 개의 레인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수준별 수업을 진행한다. 이제야 수영 이틀 차인 나는 당연히 초급반. 레인으로 들어가기는커녕, 높이 45㎝ 유아용 수영장에서 발차기 연습만 죽어라 한다. 걸터앉은 채로 발차기, 엎드린 채로 발차기를 완수하고 지칠 때쯤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근다. 물속에서 ‘음~’ 하고 길게 숨을 참고, 물 밖에서 ‘파하!’ 하고 재빠르게 숨을 쉬는 호흡법 훈련이 이어진다. 바로 옆에 있는 레인에선 첨벙대는 소리가 먹먹할 정도로 들려오는데, 내가 몸담은 유아용 수영장에선 ‘파하악!’ 하고 숨을 헐떡이는 소리만 크게 들려올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엔 두 명의 건장한 성인 여성밖에 없다.
수업의 공석을 발견하고 뒤늦게 수강신청을 한 Y 언니와 나는 첫 수업 때 수영장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발차기를 하며 가까워졌다. 제때 수강신청을 한 이들은 이미 레인으로 떠난 후였다. 그 덕에 초급반 안에서도 ‘초급 중의 초급’인 우리는 선생님의 시야 밖에 있었다. Y 언니와 나는 지겹도록 발차기를 하면서 당장 먹고 싶은 걸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호흡법을 연습하는 동안엔 잠수 시간을 두고 경쟁을 했다. 수영장에서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농땡이를 피우는 건 꽤 재밌는 일이었다.
온종일 ‘음~ 파하!’만 연습하다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선생님이 갑자기 다가오셨다.
“이제 이쪽으로 이동하실게요.”
“예?”
아직 물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 어디로 이동하란 말이냐고 묻지도 못했다. 너무 놀라서. 선생님은 초급자 레인으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바닥이 내리막길로 되어 있었다. 레인 입구에선 물이 발목까지 찰랑이는데 그 끝의 깊이는 130㎝나 되는 무서운 곳이었다. 킥판을 잡고 끝까지 갔다 오는 연습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레인 안에서 줄을 맞춰 수영을 하는 이들을 부러워하기는 했지만, 내가 이렇게 빨리 몸담게 될 줄은 몰랐다. 이틀간 정이 들어버린 유아용 수영장과 분리 불안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아직은 못하겠어요.”
“뭘요.”
“물속에서 숨 쉬는 거요.”
불쌍해 보이도록 최대한 울상을 짓고서 선생님을 바라봤다. 하지만 선생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들어가세요.”
유아용 수영장으로 다시 보내주실 거란 기대는 단호한 다섯 글자에 곧바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심지어 선생님은 그 말을 내뱉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셨다.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초급 수영 교실이 이렇게 스파르타식이어도 괜찮은 건가? 정말로?
물속에서 숨 쉬는 게 무서워서, 가슴이 막 뛰었다. 수영장 가장자리를 꼭 붙잡고 적당히 발차기만 연습하는 게 아니고, 깃털만큼 가벼운 킥판에 의지해 유영해야 하다니. 이러다 물에 빠져 죽는 거 아닌가. 옴짝달싹 못 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Y 언니가 씩씩하게 말했다.
“세연아. 너 해봐. 내가 잡아줄게.”
언니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염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절대 손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녀를 믿고 몸에 힘을 뺐다. 머릿속으로 인어공주를 상상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물속에서 눈을 떴다. 맙소사. 진짜 앞으로 가고 있다. 가라앉지 않는다!
언니는 끊임없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고, 나는 그 말에 힘입어 언니의 도움 없이도 헤엄을 쳤다. 숨을 쉬랴 킥판을 꼭 붙잡으랴 다리를 움직이랴 정신이 없었다. 수업이 끝날 때가 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찼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벅차오르는 마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평생 물을 무서워했던 내가,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수영을 하다니. 해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