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같다는, 한때 한국 사회에서 당연시되던 이 말이 어느샌가 휙 사라졌다.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교사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몇 년 전부터 교사들 사이에선 “이른바 ‘금쪽이 학생’들이 면학 분위기를 흐려도 교사들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자괴감이 퍼졌다. “선생을 하인 부리듯 괴롭히는 진상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막아달라”는 호소가 이어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달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가 교내에서 사망한 사건으로 자괴감과 절망감은 거센 분노로 타올랐다. 오랜 기간 이어진 교권 침해가 새내기 교사의 목숨마저 앗아갔다는 공분은 ‘금쪽이 육아’를 설파해온 오은영 박사, 그리고 자폐증 아들을 가르치던 특수교사를 고소한 웹툰 작가 주호민씨를 향했다.
◇오은영을 창과 방패로 쓰는 학부모들
오은영 박사에 대한 비난은 이른바 ‘금쪽이 육아’가 교사 개인은 감당할 수 없는 응석받이와 진상 학부모들을 양산했다는 내용이다. 체벌에 반대하고 통제보다 아이의 감정과 행동 양태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하는 금쪽이 육아가 널리 알려지면서, 그 방식을 교사에게 무리하게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떼를 쓰거나 악성 민원, 고소를 남발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었다는 것.
일각에선 “금쪽이 육아 대신 전통 육아, 부모와 교사의 권위를 중시하는 육아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권위 있는 부모가 되라” “아이의 감정은 이해하되 행동은 통제하라”고 강조하는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등이 오은영 박사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오은영 박사의 메시지를 선택적으로 취사해서 악용하는 행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씨는 “오은영 박사의 메시지가 무조건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주라는 게 아니다. 오은영 박사도 문제가 있는 부모에게 단호한 훈육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해왔다”며 “그럼에도 이른바 진상 학부모들이 오은영 박사의 여러 발언을 맥락 없이 떼어내 교사와 학교를 공격하는 창으로 쓰고, 비난을 막는 방패처럼 남용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오은영 박사 본인도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해보자는 말을 무작정 다 받아주라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며 “훈육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오은영 박사와 금쪽이 육아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이용한 방송 제작진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금쪽이들의 문제 행동을 선정적으로 편집하고 오 박사의 설루션만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낸 제작진 책임이 적지 않다”며 “오 박사도 이런 방송의 파급력을 감안해 메시지 관리를 더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호민 논란, 학교의 현실을 드러내다
주호민씨를 둘러싼 논란은 비난에서 공방으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아들을 맡은 특수교사와 개인적 만남도 없이 소송을 제기한 주씨를 향해 “소송으로 교사와 학교를 압박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후 주씨가 특수 교사의 발언 일부를 공개하자 “내가 부모라도 고소했을 것”이라는 옹호론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학교를 둘러싸고 소송이 남발되는 현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초등교사노조의 자문에 응하는 박상수 변호사는 “선생을 학생 인권을 마구 침해하는 악마로 몰고, 학부모는 교사를 괴롭히는 괴물로 몰아가면 학교는 계속해서 교사와 학부모 간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학교 내 갈등과 사건이 툭하면 소송과 법적 다툼으로 번지는 걸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교육계에서는 아동학대를 내세운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해 악성 민원에 대한 과태료 처분, 교권 침해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교사와 학부모가 각자 무기를 들고 더 싸우라고 부추기는 꼴”이라고 했다. 학교와 교육청 측이 과태료 처분과 생활기록부 기재 조치를 취하면 진상 학부모들은 이에 맞서 행정소송을 비롯해 맞고소와 맞소송 등이 벌어져 학교가 더 격한 전장이 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서로를 악마화하고 싸움을 부추기기보다는 일부 극단적 학부모들의 고소·고발 무기로 악용되는 아동학대법을 개정해 학교가 소송 전쟁에 휩싸이는 걸 막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교사의 정당한 훈육과 지시도 주관적으로 정서적 학대로 몰고,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면 학교장이 의무적으로 교사를 신고하도록 한 조항 등을 개선해 악의적 신고와 고소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교사의 권위를 회복하려면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했다. 특히 학폭 전문 변호사들은 “정부가 체벌을 허용해도 막상 체벌을 한 교사와 학부모는 곧바로 아동학대나 폭행 혐의로 고발될 것”이라고 했다. 박상수 변호사는 “한 번 향상된 권리의식은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체벌 없이 교권을 회복하고 학교 내 문제를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교사는 교육서비스 제공자에 불과하다?
교사의 권위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과거에 유지되던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교사는 월급 받고 교육 서비스를 공급하고, 학부모는 세금을 내고 자녀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소비자 만능주의가 득세하고 있다고 봤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부모와 선생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고, 부모는 양육의 권리만큼이나 자녀를 올바른 시민과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의무도 있다”며 “각자 역할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해졌고 그 대신 ‘내가 돈 주고 맡겼으니 당신이 무조건 잘해내야지’라는 소비자주의가 교사와 학부모 관계에도 만연하다”고 말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선생의 권위를 존중하는 유교적 문화가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해졌다”며 “부모와 선생, 사교육과 공교육의 역할이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망각하고 다른 학생과 교사의 권리는 무시한 채 자신의 자녀와 자신의 권리만 무제한으로 주장하는 일부 학부모가 교권을 침해하고 있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해찬 세대’로 불리는 시기부터 무너진 공교육의 기본 목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정태 위원은 “공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빼먹지 않고 출석하고, 선생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업 시간과 교내 질서를 잘 지키는 기본적인 시민의 덕목을 배우는 것”이라며 “이런 기본적인 교육을 하는 교사와 공교육 체계를 주입식 교육, 학생 억압이라며 공격해 무너뜨리고, 실체 없는 ‘창의성’과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문제가 터지면 법률과 행정처분으로 해결하려 드는 ‘법률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수 변호사는 “이런 문제만 터지면 정치권은 시스템적 해법과 실질적 개선보다 악마화된 범인을 찾고, 잔혹하게 응징하는 법률로 인기몰이만 하는 포퓰리즘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으로 개정된 아동학대법이 지금 교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