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글자 앞에 외국인 다섯이 섰다. 지난 7일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도 하고 팔짱도 끼면서 한껏 포즈를 취하자 박물관 관람객들의 시선이 흘깃흘깃 모인다. 관광객일까. 그 순간, 한 명이 브이(V) 자를 거꾸로 뒤집어 보이며 유쾌하게 외친다.
“우리 MZ니까 MZ 포즈도 해요!”
이국적인 얼굴에서 유창한 한국말이 나오자 사람들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 개막식이 열린 이날 세종학당 ‘한국어 우수생’ 5명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만났다. 독일에서 온 6·25 참전용사의 손녀인 일라이다 아심길(24), 케냐인 한국어 교사 필리스 은디안구이(33), 몽골 출신 한국공학대 교수 어츠빌렉(34), 베트남어 프리랜서 통·번역가 응웬 투 후웬(31), 한국예술종합학교 브라질 유학생 리아 마우러(28)다.
세종학당은 세계 각지에 설치된 한국어·한국 문화 교육기관.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처음 문을 열어 현재는 85국 248곳에 있다. 올해까지 전 세계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은 70만명에 달한다.
◇왜 하필 한국어였나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됐나요?
필리스 은디안구이(이하 필리스):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고교만 마치고 극장에서 연극을 했어요. 어느 날 극장 동료가 신문에서 세종학당 얘기를 보고선 공짜로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니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를 때였는데 공짜라니까 한번 가봤죠. 근데 뭐야, 외국어인데 너무 쉽고 재밌는 거예요!”
어츠빌렉: “저도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예요. 고교 때 몽골 다르항이란 도시에서 수도 울란바토르로 이사를 갔어요. 처음 사귄 친구가 전교 1등이었는데,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대요. 걔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맘때쯤 한국 드라마 ‘야인시대’에 빠져 있기도 했고요.”
리아 마우러(이하 리아): “시작은 저도 드라마 때문이에요. ‘대장금’을 진짜 재밌게 봤어요.”
응웬 투 후웬(이하 응웬): “중학생 때부터 워낙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한국 유학이 꿈이었죠. 대학 입학하고 나서야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어 세종학당에 등록했어요.”
일라이다 아심길(이하 일라): “할아버지가 튀르키예 6·25 전쟁 참전용사세요. 부모님은 튀르키예인이고 독일로 이주해서 제가 태어났죠.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사실 제대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 건 한국 드라마와 K팝 때문이었어요. 고교 때 전학 온 한국인 친구의 아버지가 대사관에서 일하셨어요. 그 친구 소개로 세종학당에 다니게 됐고 배우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점점 매료됐어요.”
-지금은 무슨 일을 하나요.
필리스: “숙명여대에서 석사까지 마쳤고요. 지금은 케냐 나이로비 세종학당으로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츠빌렉: “한국공학대(구 산업기술대)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모두 마친 뒤 같은 대학 교수가 됐어요. 에너지 정책을 강의하면서 국제교육센터 학술 연구 교수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유학생들의 비자·보험 등 각종 행정 업무를 도와주고, 유학생 학습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어요.”
리아: “한예종에서 사진과 홀로그램을 공부하고 있어요. 첫 홀로그램 전시를 안동 하회탈로 했고요.”
응웬: “통·번역 프리랜서로 일하는 중입니다. 무역 분야에서 주로 통역 업무를 했고, ‘런닝맨’ 베트남 자막 번역도 담당했어요. 작년엔 법정 통·번역인 인증 시험을 통과했어요.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재판받을 때 법정 진술을 통역하는 일이에요.”
일라: “유튜브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서 한국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고, 국가보훈부 지원으로 재방문 참전용사 통역도 맡고 있고요. 9월에는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국제학과에 입학해요.”
-한국어를 배운다고 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일라: “2017년 처음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땐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죠. 그때만 해도 독일 세종학당에는 비즈니스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연세 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친구들은 ‘North(북한)?’냐며 놀리기도 했어요, 하하. 이젠 반대로 감탄해요. ‘모든 것의 중심이 한국이 될 줄 어떻게 알았어?’라고요. 요새는 세종학당에 대기가 많아서 기다려서 배운대요.”
필리스: “부모님이 왜 하필 한국이냐고 했어요. 너무 먼 나라니까요. 세계지도를 펴서 한국이 정확히 어디 있는 나라인지 짚어보라고 했지요.(웃음) 그런데 저를 시작으로 언니와 두 남동생까지 한국에 와서 공부했어요.”
응웬: “전 주변에 한국이 좋다고 너무 많이 얘기했나 봐요. 제가 한국 올 줄 다들 알았대요, 하하.”
◇존댓말 어렵지만 “괜찮아”에 다시 도전
-생판 외국어라 어려웠을 텐데.
어츠빌렉: “다른 건 괜찮은데 줄인 말이 많고 신조어가 정말 빨리 바뀌어요. 옛날에는 저도 신조어를 들을 때마다 주변에 뜻을 물어보고 써보려고 했는데, 금방 안 쓰는 말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어휴, 이젠 그냥 포기했어요.”
-리아: “저는 존댓말이요. 먹다, 드시다, 잡숫다…. 같은 말인데도 어휘가 완전히 다르니까 머리가 아파요.”
존댓말 얘기가 나오자 너나 할 것 없이 “맞아, 맞아” “나도”라며 맞장구를 쳤다.
필리스: “친구들이랑 반말하다가 존댓말을 쓰려고 하면 전환이 잘 안 돼요. 가끔 ‘저 진지 드셨어요’ 이렇게 저를 높여버릴 때도 있어요.”
-지금 다들 존댓말 잘하시는데요.
일라: “야단맞으면서 배우니까 되긴 되더라고요, 하하!”
-좋아하는 한국말이나 단어가 있다면.
리아: “저는 ‘괜찮아’가 제일 좋아요. ‘괜’도 ‘찮’도 어려운 글자지만 하도 많이 들어서 금방 익혔어요. 실수할 때마다 선생님이 항상 그랬거든요. ‘리아, 괜찮아요. 다시 해봐요.’ 노래도 있잖아요. ‘괜찮아, 잘될 거야~’.”
일라: “모든 의성어와 의태어! 바삭바삭, 쓰담쓰담, 폭신폭신, 보글보글…. 독일어나 영어엔 이런 말이 없어요. 동사나 형용사만 쓸 때보다 훨씬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게 해줘요. 한 번 알고 나니까 이런 표현이 없는 영어나 독일어를 할 때 답답하더라고요.”
필리스: “저는 ‘아이고’요. 놀랐을 때 아이고!, 답답할 때 아이고오~, 기쁠 때 아이고아이고!, 억양만 좀 다르게 하면 정말 많은 말을 대체해주거든요. 아이고, 너무 입에 붙어서 탈이에요. 가끔은 한국어 못하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도 모르게 ‘아이고’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한국어 할 줄 아는 걸 들킬 때도 있어요.(웃음)”
어츠빌렉: “저는 ‘가능하다’라는 말이 좋아요. 외국인으로 살면서 비자 받으러 갈 때나 학교에서나 어딜 가든 늘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 그런지 같은 뜻의 몽골어보다 한국어로 들을 때 더 좋더라고요. 제가 학생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한국어, 운명처럼 찾아왔다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어츠빌렉: “전 에너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어요.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 보유국인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늘 에너지 부족에 시달려요. 언젠가는 몽골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다만 아내도 몽골 사람인데 한국이 너무 좋다고 돌아가기 싫어해서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하.”
필리스: “케냐 대학에 한국어를 연구할 수 있는 학과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스와힐리어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도 만들고 싶어요.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 브룬디 같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쓰는 언어예요. 정말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 책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필리스씨 말에 일라이다씨와 응웬씨가 손뼉을 쳤다. “오 언니, 부자 되겠다!”
응웬: “한국 유학이라는 목표도 달성했고, 한국에서 인생의 짝을 만났어요(응웬씨는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꿈 하나는 이뤘어요. 제가 많은 도움으로 한국에 잘 자리를 잡은 만큼 앞으론 저도 누군가를 돕고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어가 인생을 바꿔놨어요.
필리스:“한국어를 안 배운 삶은 상상하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전 한국어로 인생이 바뀌었다기보다 제대로 길을 찾은 편에 가까워요. 제가 한국어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더니 아빠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하시더라고요. 저조차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거든요. 꼬맹이 때 아빠가 조그만 칠판을 사줬는데 그걸 안 버리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언젠가는 선생님 할 줄 아셨대요. 물론 가르치는 게 한국어일 줄은 저도, 부모님도 꿈에도 몰랐지만요.”
다섯 명에게 ‘팔자’라는 말을 아냐고 물었다. 응웬씨가 “타고난 운명”이라고 답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 “취미로 배운 한국어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전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홀로그램을 더 깊이 연구하고 싶었는데 브라질에선 기술적으로 홀로그램을 배우는 곳밖에 없었어요. 한예종은 예술 학교인데 홀로그램 전공이 있길래 바로 장학 프로그램에 자원했어요. 운명 같았죠.”
일라:“한국어만 배웠는데 계속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어요. 유튜브, 방송, 통역…. 전 스물넷이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가능성이 많아요. 70년 전 할아버지가 군인으로 이 나라에 발을 디뎠는데, 이제 손녀가 그 땅에 돌아와 씨를 뿌리고 있는 거예요. 마치 정해져 있던 것 같아요. 저도 몰랐지만 한국어가 제 ‘팔자’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