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이 있다면 긴옷을 입어주세요.”
서울 역삼동의 한 유명 헬스장이 최근 공지한 ‘노 타투’(No Tatoo) 방침이다. 헬스장 특성상 신체 노출이 자유로운데, 팔·다리를 거의 덮는 과도한 문신으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회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해당 공지가 적힌 입간판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잇따라 공유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곳 관장은 “요새 본인만의 소중한 의미가 담긴 문신도 많고 이는 개성의 표출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위 ‘건달 문신’은 남이 봤을 때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나의 자유와 권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동시에 타인의 자유와 권리 또한 중요합니다. 이곳은 다중 이용시설입니다.”
◇文身 대중화에도… “불편해”
문신 인구 1300만명(보건복지부 추산) 시대. 문신이 대중적인 패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적지 않은 반감 역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3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신과 문신한 사람에 대한 인식에서 “불량하거나 무섭다”고 답한 비율이 66%를 차지했다. 문신 문화에 개방적인 20·30대에서도 각 58%, 61%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답한 비율도 전체의 60%였다.
서울 신라호텔이나 부산 롯데호텔 등 전국 주요 호텔의 경우 문신이 있는 고객의 수영장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긴옷이나 래시가드 등으로 문신을 가려야만 입장을 허용하는 식이다. 그랜드하얏트서울 관계자는 “어린이를 포함한 전 연령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보니 문신 사이즈가 큰 경우 래시가드 등을 무료 대여해 문신이 안 보이도록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심모(35)씨는 “며칠 전 기차 안에서 ‘팔토시’ 문신을 한 남자 승객을 보고 너무 무서웠다”면서 “문신이 유행처럼 퍼지곤 있지만 여전히 시각적 공포를 야기하는 만큼 입장 제한 조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도 ‘조폭 문신’ 확산
온몸을 그림으로 도배한 인기 연예인이 넘쳐나고, 길거리에서도 남녀노소 흔한 풍경이 됐다. 한국타투협회 추정 국내 타투 시장 규모는 2조원 수준. 1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중·고등학생들도 문신에 과감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미성년자 타투’를 해시태그로 온라인 모객을 하는 업자들도 있을 정도다.
‘문신의 내용’도 과감해지고 있다. 이름이나 기념일 등의 각인을 넘어 일본 조직 폭력배의 상징 ‘이레즈미’까지 확산하고 있는 것. 용이나 잉어 등의 문양을 몸 전체에 새기는 것이다. 위압감을 과시해 강해 보이려는 욕구가 주된 이유다. 다만 이레즈미의 원조 일본도 문신이 있으면 온천이나 목욕탕은 출입이 불가하다. 일종의 주홍글씨인 셈. 영화 ‘범죄도시3’에서 전신을 이레즈미로 덮은 ‘초롱이’ 역할의 배우 고규필은 최근 한 방송에서 “문신 분장을 하니 자세가 (건들건들) 변하더라”며 “이태원에서 밥을 먹는데 사람들이 나를 많이들 피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후회돼요… 문신 지워주세요
문신은 패션이지만 영구적이다. 유행이 바뀌어도 평생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 셈이다. 벗으려 해도 비용과 고통이 만만치 않다. 성형외과 전문의 박영수 원장은 문신을 없애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선발해 무료로 지원하고, 그 과정을 ‘망한 문신 지워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연재하고 있다. 문신에 비교적 관대한 운동 선수도 찾아온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 선수 김정미는 “베컴 선수가 너무 멋져 보여 새겼는데 점차 싫어졌다”며 “정말 많이 후회했다”고 말했다.
후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즉흥적인 결정에서 비롯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경하던 외국 유명 가수처럼 목에 날개와 장미를 새긴 20대 남성은 “취업하려고 면접을 볼 때마다 문신 때문에 채용이 힘들다는 통보를 많이 받았다”며 “문신을 꼭 해야겠다면 안 좋은 시선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충분히 견딜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신(護身)의 의미로 도깨비 무늬를 가슴에 새겼으나 출산 뒤 아이에게 부끄러워 박 원장을 찾아온 30대 여성은 조언한다. “어려서 그냥 남들 따라서 할 수도 있지만 한번 새기고 나면 몸에 계속 남는 거니까, 깨끗이 안 지워질 수도 있고… 최대한 안 하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으면 좋겠어요.”
◇‘타투법’ 올해 통과되나
사단법인 대한문신사중앙회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문신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관리·감독을 포기하고 죄없는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나라”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과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1992년 대법원 판결 이후 문신은 현재까지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 의사면허 소지자만 시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법대로라면 99% 가까이 ‘무면허 불법 시술’인 셈이다.
합법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신에 대한 호오(好惡)와는 별개로, 부작용 및 위생 관리를 위해서라도 문신업자의 시술 행위를 양성화해 정부 감독 아래 두는 게 낫다는 것. 류호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타투업법’을 포함한 문신 관련 법안은 현재 9건이 계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