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은 이름 그대로 일본 오사카에 소재하는 한·중·일 3국 도자기를 다량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한국 도자기만도 1100여 점에 이릅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아타카(安宅)와 이병창이라는 두 분 수집가가 모은 것을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지난봄 리움미술관이 ‘조선의 백자’ 특별전을 개최하였을 때 일본의 여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도자기를 빌려주었지만, 그 가운데 오사카미술관 소장품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처럼 다른 미술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빌려와 전시하는 경우, 임차료를 지급하지 않고 다만 파손이나 분실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지급할 뿐입니다. 빌려주는 측에서는 특별한 이득은 없이 오히려 위험만 부담하는 것이어서, 미술관 상호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 관계가 중요합니다.
‘조선의 백자’ 특별전이 종료되어 빌려온 도자기를 모두 반환한 지난 6월 감사 인사차 동양도자미술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오사카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EXPO)에 때를 맞춰 리움미술관과 동양도자미술관이 공동으로 ‘한국 분청사기’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친선 협력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마침 동양도자미술관이 대수리 중으로 휴관이었으나, 연적(硯滴) 등 한국 도자기 몇 점을 꺼내와 보여주었습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과 산속 암자에서 공부하는 깨알만 한 크기의 스님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 등 재미있고 귀여운 우리 선조들의 작품이었습니다. 모리야 마사시 관장은 우리와의 교류에 관심을 보이며 장차 협력을 다짐하였고, 우리 일행을 만찬에 초대하여 후히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양도자미술관에는 한국 여성 한 분이 학예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30세 때, 그분 표현대로 ‘회사를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에서 공부한 뒤 동양도자미술관에 취업하였습니다. 취업 면접 당시 미술관 관장은 근무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근무할 것인지를 물어, 일본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겠다고 답하였답니다. 많은 일본인 경쟁자보다 우수하였기에 그를 채용하고 싶었겠지만, 한국인이고 곧 귀국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그의 단호한 답변에 안심을 하고 채용했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으니 그분은 약속을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고 있고, 관장의 결단은 헛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어 흐뭇하였습니다.
오사카 출장을 마치고 나오시마(直島)를 방문하였습니다. 나오시마는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 세토내해(瀬戸内海)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3000명, 면적 9 ㎢ 남짓 작은 섬입니다. 출판업자이자 문화사업가인 후쿠다케 소이치로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1990년대 초 활력을 잃어가는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이제는 한 해 100만 명 가까운 관광객이 찾아오는 세계적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섬에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지추(地中) 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외에도 밸리 갤러리 등 3개의 갤러리가 있습니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구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등 예술 작품을 섬 곳곳 야외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과 미술관이 함께 묶여 있어 미술관이 밤늦게까지 개방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그 밖에도 폐가(廢家)를 활용한 ‘이에[家] 프로젝트’ 등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장래의 모습이 흥미로운 프로젝트 하나를 만났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사쿠라의 미궁(迷宮)’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입니다. 바둑판처럼 종횡으로 연결되는 여러 선(線)이 만나는 지점에 벚꽃 나무를 심는 작업입니다. 아직은 나무가 크게 자라지 않아서 별로이지만 촘촘히 심긴 나무가 자라 울창해지면 벚꽃 나무가 서로 연결되며 피어난 벚꽃은 하늘을 가리고 나무들은 마치 이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신비한 벚꽃 나무 궁전을 만들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일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도 한번 시도할 만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은 아이디어 경쟁이자 중요한 산업임을 확인하고, 또한 ‘사쿠라의 미궁(迷宮)’처럼 시간의 흐름도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한 요소라는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 나오시마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