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철동에 있던 ‘사슴’이라는 술집 이야기를 들었던 밤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슴’이 있던 건물에서 출판사를 한 분으로부터였다. 아버지에 이어 출판사를 하고 있는 그분이 ‘낭만’이라는 술집과 ‘사슴’이라는 술집이 한때 종로에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는데 표정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니 신기해서 한참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를 가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표정도 표정이거니와, 사슴! 사슴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 사슴이라는 술집이 있었다니.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나온다. 이름이 마음에 드는 술집에 가본 적이 없어서. 나는 무엇보다 단어에 민감한 사람이므로 술집을 선택하는 기준 중에 분명히 술집의 이름도 있지만, 정작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술집에 가본 일은 없다.
다 고만고만해서 그렇다. 내가 다니는 술집 중 생각나는 몇 군데를 떠올려보니 영어나 일어, 아니면 불어로 된 이름이다. 집이라고 하면 될 것을 ‘메종’이라고 하거나 하우스를 쓴다고 해도 ‘house’가 아닌 ‘haus’로 쓰는 식이다. 내가 무슨 한글 전용주의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순우리말로 된 술집도 떠오르는데 순우리말이라는 이유만으로 감격하는 건 아니라서, 술집은 마음에 들지만 이름에는 별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사슴’은 도무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사슴’이라고 발음하면 마치 사슴이 맥주 거품처럼 입술에 내려앉는 느낌도 좋지만 내게는 잊지 못하는 사슴이 있다. 홋카이도에서 만난 사슴이었다. 달리고 있던 버스를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막아서더니 유유히 도로를 횡단했다.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템포로. 나는 사슴이 막아선 버스에 타고 있었다. 걷던 사슴은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맞춤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술집 ‘사슴’을 떠올린 것은 김춘수 산문집을 읽다가였다. 바다의 표정은 파도에도 있지만 그건 너무 벅차고, 오히려 물빛에 있다고 쓰신 부분을 읽는데, 아… 술이 너무 당겼다. 이런 운치를 아는 사람과 함께 마시고 싶었다. 김춘수식으로 말하자면 바다의 표정을 닮은 사람과 물빛을 닮은 술집에서. 하지만 내가 아는 물빛을 닮은 술집 같은 건 없고, 바다의 표정을 닮은 사람도 없어서 참아야 했다. 그러고는 내가 생각하는 술집의 이데아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술집은 무엇보다 역시 분위기라고, 또 분위기를 결정짓는 것은 술집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술집의 이름은 무엇이냐? 술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술집이 어떤 분위기인지에 대한 힌트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이 마음에 드는 술집에 다니고 싶어했다는 것을, 오래도록 그래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이름만으로도 좋아하게 된 장소도 생각이 났다. 순긋해변이라든가 신두리 해안사구, 해미읍성, 사려니숲, 거문오름 같은 곳들이 말이다.
봄에는 바닷물이 연두색이 되었다가 초여름에는 신록과 함께 짙은 초록색으로 바뀐다고 김춘수님은 말씀하신다. ‘역시 미감하면 김춘수’라며 보다가 이분이 미식가로도 유명한 분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읽었다. 바다색이 바뀌기 전 생멜치(그러니까 생멸치)를 먹어야 한다며, 이때 남쪽 바다의 기름진 봄 멸치를 먹어보지 못했다면 생선 맛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평소와 달리)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 남쪽 바다도 잘 모르고, 봄 멸치의 맛도 잘 모르는 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 시대 사람이 아니라 김춘수님이 실제로 미식가로 유명했는지는 모르겠다. 시집이나 산문집을 읽을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다. 탐식 취향이 집요하고 디테일한데다 요즘 말로 하면 추구미를 따를 자가 없어서. 그런데 그걸 길게 말하는 게 아니라 휙 던져놓고 ‘알면 알고 모르면 몰라라’라는 애티튜드라 웃음이 난다.
어쩔 수 없이 생멜치는 내년에 먹기로 하고, 지금도 먹을 수 있는 걸 먹기로 했다.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바다 음식을. 즉각적으로 나는 세꼬시와 생선 미역국을 떠올렸다. 김춘수의 단골집이라고 알려진 잠원동에 있는 횟집 하나가 생각났고, 세꼬시와 생선 미역국이 일품이라는 것도 기억났기 때문이다.
십오 년 전쯤 가본 적이 있던 횟집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세꼬시 맛집에서 소주를 먹자며 데려갔었다. 세꼬시란 것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똑똑히 인지한 곳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집이 김춘수의 단골집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식당의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김춘수의 글씨라든가 사인 같은 것을 보려고 애썼을 텐데.
김춘수의 그 횟집은 다른 장소로 옮겨서 세꼬시를 하고 있었다. 횟집이 이전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불안해졌다. 수준급의 세꼬시와 생선 미역국을 당장 먹어야겠다는 조급함도 있었지만 그 식당에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그들의 친필 사인 같은 걸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걸 상당히 열중해서 보고 있다.) 식당이 이전하면서 그런 것들을 제대로 보존했을까라는 불안함이 들었는데, 예약을 하면서 ‘저, 사인이 남아 있나요?’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사인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세꼬시는 여전히 맛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어떻게 숙성하고 어떻게 썰면 이런 맛이 나는지, 왜 다른 데의 세꼬시는 이런 맛이 안 나는지. 세꼬시가 나오기 전후로 내준 멍게, 가자미 무침, 고등어 무조림, 동태전, 손바닥만 한 부추전, 고구마 맛탕 모두 더도 덜도 없는 맛이었다. 잡스러운 건 하나도 없고,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이 맛과 밸런스라니. 게다가 생선 미역국은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었다. 생선을 좋아하지만 들기름 맛이 많이 나고, 짜고, 너무 진득해서 생선 미역국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어본 생선 미역국 중 가장 고아했다.
그런데… 벽이 깨끗했다. 어느 누구의 사인도, 문장도, 흔적도 없었다. 여기 김춘수의 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바다를 낚아서 싱싱할 때/회를 친다./바다를 회치니/바다회는 칼 닿는 곳 너무 깊고/너무 아득하다.”(「밝은 날」 중에서)거나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바람은 바다에서 온다.”(「처용 3장」 중에서) 같은 문장을 걸어두었더라면 말이다. 회 한 점 먹고, 술 한 잔 먹고, 시 한 수 보고 그랬을 텐데.
나는 술 먹으면서 시집 보고, 시 읊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그런 사람, 좀 창피하다) 거기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으로서 삼가야 할 일 같은 교훈이 인쇄된 일회용 매트를 보니 더 그랬다.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이렇게 야단을 맞으면서 이 맛있는 회와 술을 마신다는 게 좀 야속했달까.
이 술집에서 가장 시적인 것은 생선의 이름이었다. 도다리, 학꽁치, 전어, 멸치, 꼬시락, 농어. 무시무시한 교훈 옆에 이 이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선의 이름을 되풀이해서 읽고 있으면 바다에서 팔딱팔딱 뛰며 비늘이 햇볕에 반사되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같았으니까.
어쨌든 놀랍지 아니한가. 이 모든 게 사슴의 진동으로 인한 것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