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지방정부가 하고, 돈은 중앙정부가 대고. X은 지방정부가 싸고, 치우는 건 중앙정부가 하고.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숱한 논란 속에 마무리된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졸속으로 준비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시행된 지 30년 넘은 지방자치제도에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기본적인 배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포퓰리즘과 이권 나눠 먹기 등 예산 낭비와 부패, 무능에 갇힌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을 극명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잼버리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비판 여론이 커지자 ‘전북도는 상·하수도 관련 부분에 문제가 있었을 경우에만 책임이 있다’며 맞대응에 나선 상황.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의 혜택과 권리는 지방이 누리면서, 정작 문제가 터지면 책임과 해결을 중앙정부에 넘기는 무책임한 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정치학)는 “잼버리 대회를 유치한 주체는 결국 전북도가 아닌가. 중앙정부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전북도의 책임이 더 크다”며 “한국의 지방자치는 유리할 땐 ‘우리가 하는 것’이라 하고, 불리할 때는 중앙정부를 탓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전북도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대회가 전북도의 새만금 개발과 국제공항 유치에 이용된 것이라는 의문도 계속 제기되는 상황. 이 때문에 “서울 권력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자원을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게 발전 전략일 뿐, 지역 내부에서 스스로 발전과 혁신을 꾀하는 일엔 관심이 없다”고 일갈한 강준만 교수의 ‘내부 식민지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방정부가 자립과 내실 있는 발전보다 중앙 권력의 지원을 어떻게든 따내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지방의 정치가 서울의 정치 권력에 더 종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정치학 교수 A씨는 “잼버리 대회뿐만 아니라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갖가지 전시성 사업, 선심성 축제와 행사들을 마구 남발하면서 예산 낭비가 극심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어차피 사람들은 위(중앙정부)에서 아래로 예산을 꽂아주는 걸 원하니 그걸 잘할 수 있는 대형 정당으로 지원이 쏠렸고,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로 운영된 지방자치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주민들의 지자체 투표 참여도 점점 저조해지고 시민사회의 관심과 견제, 반대 세력의 감시도 적다”며 “그러다 보니 지역 토호와 정치인, 지방행정이 맞물린 이권 카르텔이 형성돼 중앙 정부 예산을 최대한 끌어와 나눠 먹고, 그렇게 유치한 사업으로 인기 몰이까지 하는 행태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한국과 맞지 않는 지방자치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노정태 위원은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독일이나 일본, 미국 등은 각 지방이 그 단위 중심으로 지방자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며 “지방자치는 의도적으로 추구할 게 아니라 역사적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 없이 이뤄진 인위적 지방자치는 지방 토호의 이권 수단이나 견제받지 않는 ‘중간 권력’을 손쉽게 쥐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김형준 교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지방자치제는 한국에 정착하지 못했다. 우리와 잘 맞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폐지보다는 기초지자체까지 내려간 지방자치제를 광역단위로 축소하고, 국민들의 관심과 견제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재정비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으로 지자체 축소 개혁이 추진됐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탄핵 정국 등으로 무산됐다. 노정태 위원은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인건비 등 많은 부분이 낭비되고 있는데 저출산 쇼크를 맞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럴 여유가 없다”며 “전국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광역 단위에서 지방자치가 이뤄지도록 해야 적정한 견제와 균형, 감시가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학 교수는 “지방자치제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논의와 지적이 많았지만, 거대 정당의 이해관계와 지자체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의해 무산되곤 했다”며 “변화가 꼭 필요하지만, 실현 가능할지는 회의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