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 대법관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는 반(反)카르텔 정부다”라고 선언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집권 2년 차에 드디어 기치를 바로 세우는구나!

카르텔이란 소수의 공급자가 담합해서 가격을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가격 조작으로 그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지만, 소비자들은 손해를 본다. 카르텔이 판치는 나라에서는 창의성과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누구는 진입장벽 뒤에 숨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막대한 부를 쌓는데, 누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승부를 걸겠는가?

‘反카르텔 선언’이 나오자마자 ‘사교육 카르텔’ ‘연구비 카르텔’ 등 각종 카르텔에 대한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 드디어 ‘자유와 공정의 신세계’가 오는구나! 그러나 지난달 중순 서울대 로스쿨 권영준 교수가 대법관에 취임하는 것을 보면서 ‘쾌재’는 금세 ‘한숨’으로 바뀌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었으니 대통령으로서는 임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권영준 교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교수로 재직 중 5년간 로펌 7곳에 63건의 의견서를 써주고 18억원 이상의 돈을 받았다고 한다. 5년에 18억원이면 매년 3억6000만원이다. 권 교수는 웬만한 대학 정교수 연봉 3배도 넘는 돈을 매년 가외 수입으로 번 것이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라니 머리야 당연히 좋겠지만, 바쁜 교수 생활 중에 이 많은 의견서를 써주다니 성실성 역시 범상치 않다. 게다가 권 교수는 이렇게 많은 돈을 번 사실을 학교 측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배짱 역시 남다르다. 더욱이 무슨 내용을 써줬는지는 밝히지 못하겠다고 한다. 대신에 대법관이 되면 그 많은 대형 로펌들과 관련된 사건은 맡지 않겠다고 했단다. 대법관이 되려면 낯이 두꺼워야 하나 보다. 대법원 상고 사건은 대형 로펌이 맡는 경우가 많다는데, 권 대법관은 이제 일도 없어 한가하니 좋겠다.

서울대 로스쿨에는 위조에는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1심 판결을 받은 조국 교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머리, 성실성, 배짱에 두꺼운 낯까지 갖춘 ‘의견서 제조기’ 권영준 교수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서울대 로스쿨은 ‘좌 조국, 우 영준’으로 날았던 것인가? 이렇게 훌륭한 교수들을 거느렸던 서울대 로스쿨 보유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

권영준 대법관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이다. 미국, 일본에서라면 그는 대법관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직 교수 신분으로 많은 돈을 받고 대형 로펌에 의견서를 써 주고서는 내용은 말할 수 없다는 대법관 후보자라면 미국 상원 의원들이 인준청문회에서 아마 ‘산 채로 잡아먹으려(eat alive)’ 들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대학교수들에게 직무 전념의 의무를 부과한다. 학교에는 알리지도 않고 연봉의 3배 돈을 버느라 매달 한 편꼴로 의견서 쓰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이것은 교수로서의 직무에 전념한 것인가? 아마 대법관 지명을 받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행운이 있으면 불운도 있는 법. 입시 컨설팅 등을 해주고 입시 학원으로부터 10년에 5000만원을 받았다고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받은 현직 교사들. 집에 가져가지도 못하는 연구비를 ‘짬짜미’로 나눠 먹었다고 ‘연구비 카르텔’로 찍혀 전전긍긍하는 이공계 연구원들. 이들은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5년에 18억 신공(神功)’을 발휘하고도 ‘카르텔’ 소리를 듣기는커녕 대법관이 되는 ‘기적’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하긴 법조인들은 우리와는 씨가 다른 특권 계급인지도 모른다. 고위 검사나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단기간에 수억, 수십억 원을 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판사는 성범죄를 저질러도 파면되지 않으며, 변호사는 3연속 무단 불출석으로 재판에 자동 패소하여 딸 잃은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아도 고작 ‘정직 1년’이다. 대형 로펌이나 전관 변호사 출신이 신원보증만 하면 마약에 취해 인도를 걷던 무고한 행인을 차로 밀어 중상을 입힌 조폭도 즉시 석방된다니, 이제 대한민국은 가히 ‘법조인의, 법조인을 위한, 법조인에 의한 나라’라 부를 수 있다. 이야말로 진정한 ‘법(조인)치주의’의 완성 아니겠는가.

이제 믿을 건 ‘법조 카르텔’ 얘기만 나오면 게거품을 무는 더불어민주당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네가 지명한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전관예우로 월 3000만원 가까이 받았던 것이 밝혀지자 “관행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하고, 자기네 대통령이 2021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변호사법 개정안도, 국회 다수당인 주제에 은근슬쩍 유야무야시켜 버리는 것을 보면, 법조 카르텔을 깨부수고자 하는 진정성은 전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말만이라도 게거품이나마 물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독자들께서 오해할까 봐 덧붙이는데, 나는 윤석열 정부의 ‘反카르텔’을 적극 지지한다. 윤 대통령이 부디 이 나라의 카르텔을 다 깨부수고 자유와 공정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구현하여 ‘법조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 되길 간절히 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왠지 자꾸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아마도 끝에 가서 결국 벌거벗은 임금님이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인가 보다. 로펌에 갔다는 얘기도 있던데, 설마… 내일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안데르센 동화 전집부터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