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테른 와인을 뭐와 먹으면 좋을까 묻는 분의 질문에 무조건 푸아그라죠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푸아그라에 소테른을 즐겨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 소테른이 나올 때마다 푸아그라나 테린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책이든 영화에서든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조건 푸아그라’가 튀어나왔다. 그분들은 말씀하신다. 그게 아니라면 로크포르 같은 블루치즈와 먹으라고.
정작 나는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다. 소테른을 마셔본 적도 있고 로크포르를 먹어본 적도 있는데, 소테른을 로크포르나 소테른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하는 음식들과 먹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뭐 그런대로 좋았다. 소테른의 꿀 같은 농밀함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기분이 둥둥 떴으니까.
얼마 전에 독일식 소테른이라고 할 수 있는 베렌아우스레제를 한 모금 마시고서 얼굴을 찌푸렸다. 이 술이 정말 맛있어서. 얼굴을 환히 펴고 ‘아, 맛있어!’라고 끝낼 맛이 아니었다. 미간에 주름을 잡을 만한 심각한 맛이랄까. 다시 이 초월적인 기분에 대해 생각했다. 포도에서 이런 단맛이 난다고? 포도 말고는 어떤 것도 첨가하지 않았는데? 한동안 멀리했던 디저트 와인의 세계에 다시 퐁당… 빠지고야 말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멀리했던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먹어야 할 술이 많으니까. 내가 소테른을, 뮈스카 봄 드 브니즈를, 포트를, 셰리를, 마데이라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깨달았다. 아, 또 비스코티 쿠키를 적셔 먹는 빈 산토도. 볼로냐인가 토리노에서 후식으로 나온 단술과 비스코티 조합에 반해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단술과 비스코티를 잔뜩 사 왔었는데, 그 술이 바로 빈 산토다.
‘메인’ 술보다도 식후주에 열광했었던 시절이다. 식후주가 있는데 왜 후식으로 에스프레소나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느냐며 마음속으로 항변했었다. 이탈리아 후유증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한 달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동네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와인을 마시는 재미도 누렸지만 동네마다의 관습에 따라 바뀌는 식후주의 다채로움에 홀렸었다.
그런데 베렌아우스레제는 처음이었다. 리슬링 품종으로 만드는 베렌아우레제(Beerenauslese)는 일일이 ‘한 알 한 알 골라낸’ 포도라는 뜻이라고, 이 귀한 와인을 가져오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10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만들지 않는다고도. 베렌아우스레제가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로크포르나 테린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렇다. 이 날도 역시 디저트 와인에 어울리는 최상의 안주는 없었던 것이다.
냄새부터 대단한 술이었다. 리치와 복숭아에 꿀 냄새, 그리고 과일이 농후하게 발효되었을 때 나는 화학적인 물질의 냄새가 났다. 안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그걸 무슨 냄새라고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페트롤! 흔히들 석유 냄새라고 하는 페트롤 냄새가 바로 방금 내가 현혹된 이 냄새 같았다. 이럴 때 나는 몹시 기분이 좋다. 단어로만 알던 걸 현실에서 마주하거나 그 속성을 마침내 내 감각기관으로 확인했을 때 단어는 냄새도 나고, 맛볼 수도 있는 물질이 되기 때문이다. 페트롤 냄새는 뫼르소에서 나는 고사리 냄새나 쥬브레 상베르탱 같은 올(드)빈(티지) 피노누아에서 나는 가죽 냄새 못지않게 강렬했다.
이런 석유 냄새를 와인에서 느낀 적이 없었기에 더 놀라웠다. 리슬링을 마셔본 적도 있고, 리슬링으로 만든 디저트 와인을 마셔본 적도 있었지만 이런 와인은 처음이었다. 석유 냄새가 나는 와인이 있다고 들은 것도 같지만 경험한 적 없기에 그 와인은 세상에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점으로 석유 냄새가 나는 와인은 세상에 있게 되었다. 리슬링을 좋아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샤르도네 못지않게 리슬링을 꼽는다고 하는데, 그건 전문가의 이야기고, 나는 리슬링이 늘 그저 그랬다. 그런데 이런 리슬링이라면!
그날 마신 베렌아우스레제는 1993년산이었다. 3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와인을 깨운 거였다. 장기숙성이 가능한 화이트 와인으로 부르고뉴 샤르도네와 보르도의 화이트 와인 정도만 생각했는데, 베렌아우스레제 같은 고급 리슬링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셨던 디저트 와인 중에서 손에 꼽을 만한 맛이었기 때문이다.
베렌아우스레제를 마시고 나니 마시지 못했던 디저트 와인도 하나둘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르도의 바르삭, 헝가리의 토카이, 루아르의 부브레를. 또 소테른을 좀 더. 슈냉블랑으로 만드는 부브레는 이름이 풍선처럼 귀엽고, 소테른과 토카이는 귀부 와인이라 마음이 간다. 나는 무엇보다 ‘귀부 와인’이라는 말이 좋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귀하고 부유하다’라는 간지러운 표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귀부(貴腐), ‘귀하게 썩었다’는 뜻이었다. 곰팡이균이 생겨 썩은 포도로 만든 술이 귀부 와인이다. 곰팡이균이 생기면 포도를 못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수분은 날아가고 당도는 응축되면서 건포도화된다.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장기 숙성하면 대단한 잠재력을 갖추게 된다.
망한 게 망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와인을 둘러싼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아주 힘든 빈티지였던 해를 보내고 난 다음 해가 사상 최고의 빈티지가 된다든가. 또 포도가 어는 바람에 망한 줄 알았는데 당도 높은 아이스 바인이 된다거나 곰팡이에 감염되었는데 단맛이 폭증해 최고의 스위트 와인을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나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에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희망이라는 걸 보기도 하니까.
포도도 아닌 사람이 귀하게 썩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덜 외롭게 썩는 방법은 알겠다. 귀하게 썩은 와인을 묵혀두고 이십 년이 되었든 삼십 년이 되었든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 마침내 코르크가 열리는 순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