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온 친구예요? 너무너무 반가워!”
“이름이 별이구나? 안녕 별아~.”
친구들의 반가운 인사에도 이 아이, ‘별이’의 시선은 시종일관 바람개비에 꽂혀 있다. “붕붕! 붕붕!” 하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가 하면 혼자 키드득 웃기도 한다.
지난 18일 EBS ‘딩동댕 유치원’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가 있는 캐릭터 별이가 데뷔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 장애의 하나. 별이는 국내 어린이 프로그램에 처음 등장한 자폐 캐릭터다.
◇별이 탄생시킨 질문 “엄마 걔는 왜 그래?”
지난해 ‘딩동댕 유치원’ 책임 프로듀서가 된 이지현 PD는 1년 가까이 준비해 별이를 만들어냈다. 시작은 아들의 질문이었다. 초등학교 통합 학급(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섞여 있는 반)에 들어간 아들이 같은 반 경계선 지능 장애 학생 얘기를 하면서 답답해하더란 것이다. “엄마, 걔가 날 그냥 때려. 걔는 도대체 왜 그래?”
장애를 가진 친구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불편한데 왜 같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누구와 같이 지내려면 상대를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일단 알아야 하잖아요. 엄마이자 명색이 교육방송 PD인데, 아이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다루고, 답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별이는 레이싱카부터 로드 롤러 같은 중장비까지 자동차 이름을 줄줄 왼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자동차 박사’로 나온다. 하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비범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이 PD는 “‘우영우’나 ‘우리들의 블루스’ 정은혜 작가처럼 최근 드라마 속 발달 장애 등장인물은 천재적 기질이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며 “이와 다르게 별이는 자폐가 없는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발달 장애가 있으면서 암기나 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은 전체 발달 장애인 중 1% 미만이다. 제작진은 어린이들이 현실에서 만나는 자폐아의 가장 일반적 모습을 담기로 했다. 아직 성취한 것이 없더라도, 천재가 아니어도 소외되지 않아야 하기에.
별이를 낯설어하는 친구들에게 선생님은 온갖 종류의 탈 것이 가득한 별이 생각 속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 멋진 광경을 보느라 가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는 게 힘들 때도 있지.” 이상한 문자들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모습도 보여준다. “별이는 말을 하려고 하면 말들이 서로 엉켜버리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면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해.”
처음에는 “어 왜 인사 안 하지?” “우릴 아예 안 쳐다봐” 하며 수군대던 친구들도 별이 생각을 들여다보고선 “맞아. 우리도 좋아하는 놀이에 푹 빠질 때가 있잖아” 하며 끄덕인다.
물론 현실은 이처럼 간단치 않다. 별이의 첫 등장을 본 아들의 반응은 ‘딩동댕 유치원’ 친구들과는 사뭇 달랐다. “엄마, 알겠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돼.”
“아이들은 정말 순수한데, 순수하게 누군가를 상처 주고 소외시키기도 해요. 앞으로 ‘쟤는 왜 그래?’란 질문에 ‘응, 딩동댕 유치원의 별이 같은 친구야’가 대답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별이가 그 자체로 이해와 공존의 시작이 됐으면 해요.”
◇세서미 ‘줄리아’, 토마스 친구 ‘브루노’도 자폐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미국 PBS의 ‘세서미 스트리트’에는 이미 2017년에 자폐가 있는 네 살 소녀 ‘줄리아’ 인형이 등장했다. 소리에 특히 예민한 줄리아는 소음 저감 헤드폰을 쓰고 친구들과 파티를 즐긴다. 껴안기를 불편해하는 그를 위해 친구들은 손을 맞잡는 ‘불가사리 포옹법’을 만들어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앞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제이슨(1975년), 시각장애가 있는 아리스토텔레스(1981년), 휠체어를 탄 타라(1993년) 등 여러 장애 캐릭터를 선보였다. 세서미 스트리트 터줏대감 ‘엘모’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러면서도 똑같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유아 채널 Cbeebies는 2017년 자폐아가 주인공인 만화영화 ‘파블로’를 방영했고, 2021년에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조지 웹스터(23)를 진행자로 발탁했다. 웹스터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내가 어렸을 땐 TV나 영화, 심지어 책에서도 다운증후군을 가진 등장인물이 없었다”고 했다. 이제 집에 TV가 있는 영국의 꼬마라면 누구나 웹스터를 보고 자란다.
글로벌 장난감 업체 마텔의 ‘토마스와 친구들’에도 지난해 자폐증 캐릭터 ‘브루노’가 등장했다. 브루노는 다른 열차 꽁무니에 엉덩이를 붙인 채 거꾸로 달리는 차장차(화물 열차에 딸린 승무원 탑승용 차). 그래선지 브루노가 보는 세상은 조금 다르다.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해 눈동자는 늘 딴 곳을 향하고 있지만, 꼬마 기차 친구들이 모여 사는 소도어섬의 노선과 시간표를 정확하게 외운다.
바비 인형 제조사이기도 한 마텔은 지난 4월엔 땅딸막한 키와 작은 귀, 낮은 콧대를 가진 ‘다운증후군 바비’ 인형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청기나 의족을 찬 바비, 휠체어를 탄 바비가 그 전에 바비 월드에 입성했다.
세서미 스트리트, 꼬마 기차들이 사는 소도어섬, 바비 월드, 그리고 딩동댕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다르게 생기거나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등 돌리지 않는 법을 배운다. 이해와 공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