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성 좋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도로마다 곡예운전을 하는 서울. 미국에선 우버 배달도 일반 승용차 혹은 자전거로 하기 때문에 보기 힘든 풍경이다. 지난해 배달플랫폼노조 조합원들이 기본료 인상 등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는 모습. /뉴스1

이토록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런 광속으로 사는 나라, 불가능이 있으랴. 뉴욕 특파원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 한국에 귀국한 소감이다. 2020년 6월 이래 1136일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기자는 반쯤 외국인 같은 눈으로 우리 사회를 새롭게 관찰하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느리고 복잡한 행정 서비스, 식당·병원 등 어딜 가나 끝없는 대기 시간과 고비용·비효율·불친절에 익숙해진 기자에게 한국은 매 순간 감동이다. 당일 예약도, 현장 주문 변경도, 안 되는 게 없었다.

서울에 와서 온라인 책 주문을 하고 ‘일주일쯤 걸리려니’ 했는데, 이튿날 아파트 현관 앞에 배달 완료된 모습을 배달 기사가 사진까지 찍어 보내줬다. 회사 시스템 접속에 차질이 생겨 토요일 오후 인사팀 직원에게 업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놓고 ‘월요일 출근하면 보겠지’ 했는데, 요청 20분 만에 모든 문제를 원격 처리해 줬다. 3년간 세를 준 집 수리를 위해 인테리어 업체 몇 곳에 연락했더니 사흘 만에 세 업체가 현장을 방문했고, 다들 “공사 착수는 다음 주에 가능하다”고 했다. 뉴욕에서 부엌 배수구가 막혔을 때 일대 배관공들 모두 “6주 이상 예약이 차 있다”고 해, 열흘간 혼자 구정물을 빼내다 결국 집주인이 와서 뚫어준 일이 생각났다.

서울의 아파트단지 모습. 뺵빽한 고층 아파트는 미국에선 뉴욕 맨해튼 등 대도시의 일부 특정 지역이 아니면 보기 힘들며, 미국은 여전히 단독주택이 주거 형태의 대세다. /뉴스1

동사무소 공무원도, 초등학교 선생님도, 대학 병원 간호사도 물정 어두운 기자에게 “바로 도와드릴게요” “이런 건 알고 계세요?”라며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마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여름내 전국을 누비는 각국 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너희가 처음에 새만금에서 고생은 좀 했겠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이 총동원돼 단 며칠 만에 수만 명 수용 시설이 마련되고 프로그램이 확충·변경되는 나라, 처음 보는 어른이 “미안하다”며 간식 사주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겠느냐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자 청소하던 여사님이 웃으며 “쓰레기 저 주세요” 했다. “아, 괜찮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우리 가족을 훑어보며 “애가 딱 하나예요? 부모 죽으면 자기편이 없어 외로울 텐데” 했다. 만난 지 10초 안에 ‘초특급 친절+사생활 훅 치고 들어오기’ 2단 콤보가 가능한 나라도 한국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크게 확대되면서, 일반 식당과 카페 등에서 키오스크(무인결제기)로 음식 주문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팬데믹 초기 한국을 떠났다가 3년만에 돌아온 기자 역시 키오스크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대구의 중장년 시민들이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우는 모습. /뉴스1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아직도 개인 수표나 현금을 많이 쓰고 전화·대면으로 일 처리를 많이 한다. 한국은 종일 말 한마디 않고 남의 얼굴도 안 보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돼 있었다. 관공서 업무부터 온라인몰 회원 등록까지 모두 휴대폰 번호로 본인 인증을 하고, 그 번호로 소비·납세·병력 등 개인 정보가 줄줄 엮여 나오는 것도 생경했다.

또 놀란 건 ‘키오스크 천국’이다. 프랜차이즈 고깃집에 갔더니 주문과 결제부터 소주잔 추가까지 식탁마다 놓인 키오스크로 하라고 했다. 코앞에 점원이 두 손 모으고 대기하는데 말이다. 점원은 뜨거운 기름 방울 맞아가며 삼겹살을 정성껏 구워 앞접시에 놔줬다. 뉴욕이라면 팁만 2만~3만원은 줘야 할 서비스가 5만원대 고기 세트에 무료로 딸려 나오자 좌불안석이 됐다. “(뉘집 아들인지) 더운데 고생 많아요”라고 말을 건넸다. 고기만 시켜도 된장찌개에 쌈과 반찬이 차려지자, 뉴욕 피자집에서 오이 피클도 못 먹어본 아이가 외쳤다. “한국 재미있다!”

한국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학교 외 시간은 학원 스케줄로 채워진다. /연합뉴스

미국보다 한국의 모든 공간이 좁게 느껴지는 건 단점이었다. 마트든 공중화장실이든 들어서면 답답해 ‘헉’ 소리가 나왔다. 좁은 골목마다 차들이 빼곡히 맞물려 곡예 운전을 했고, 주차장에선 문 열고 내릴 때마다 몸통이 터질 것 같았다. 맨해튼 교통 지옥에서도 3년 무사고 운전을 자랑했는데, 귀국해 운전한 첫날 쩔쩔매다 아파트 주차 기둥에 범퍼를 긁고 말았다.

청소년들은 다 학원 다니는지 저녁까지도 아파트 단지나 거리에서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마주치는 어린이들도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뉴욕 초등생들이 하교 후 놀이터나 도서관에서 놀고, 중고생은 농구공이나 테니스 라켓 들고 체육관 가던 모습과는 달랐다. ‘미국 애들도 내가 안 보는 데서 공부 열심히 했겠지’ 생각했다.

서울 강남 신사역 인근 한 건물에 성형외과와 피부과 간판이 빼곡하게 달린 모습. 미국에서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상당한 부유층이나 특정 직업군 외에는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다. /조선일보 DB

여성들은 피부와 머릿결이 너무 고와 눈을 뗄 수 없었다. 미국 교포들 사이에선 “한국 가면 피부과·성형외과와 미용실부터 돌고, 백화점 옷 사 입고 나서야지 미국에서처럼 허름하게 하고 다니면 눈총 받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 등·하굣길에 보니, 한국 엄마들이 약속이나 한 듯 호주 브랜드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어 또 놀랐다.

친정집 아파트에서 머리를 탈색하고 검은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청년이 눈에 띄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주민들 사이에서 ‘이상한 행색의 요주의 청년’으로 입방아에 올라 있다는 걸 알았다. 뉴욕에서 미니스커트에 진주 목걸이 걸고 출근하는 남자, 조깅용 반바지 입고 학교 행사에 오는 학부모에 익숙해진 기자는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 되묻다 이내 깨달았다. 아, 난 이제 한국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