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영을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선 꼭 물어봤다.
“텃세 심하지 않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답했다.
“누가 누군지도 몰라요.”
사실이었다. 수영을 조금만 다니면 수영복만 보고도 몇 년 차인지 감이 온다던데, 그건 불가능했다. 한국인은 검은색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초급 레인에도, 중급 레인에도, 고급 레인에도 똑같은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몇 명씩이나 보였다. 내 눈으로 보기엔 다 엇비슷해서 누가 고참이고 누가 신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서 텃세는 주로 자리 싸움에서 생긴다고들 하던데, 탈의실 입구에서 출입증을 바코드 리더기에 찍으면 사물함 위치가 배정되는 식이라, 그런 싸움이 생길 리도 없고. 무엇보다 센터에 도착해 수영장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이 채 안 되는데 언제 신경전을 벌이고 있겠나. 후딱 옷을 갈아입고 준비운동을 마친 후 물속에 뛰어드는 수밖에.
텃세만 없는 게 아니다. 같은 레인을 쓰고 있어도, 서로의 존재가 조금은 눈에 익어도 인사하지 않는다. 순서대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누군가와 대화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물 밖에 나오면 제 갈 길 가기 바쁘다. 뭐, 누구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나를 아는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면, 그냥 쭉 잠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어색했던 수모와 수영복 차림도 전보다 훨씬 당당해졌다. 모두가 자신의 동작에만 온 힘을 집중하고, 레인의 끝과 끝, 그리고 수영장 한가운데 걸린 전자시계에만 시선을 둔다는 걸 이젠 알게 됐다.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한편, 같은 날 수영을 시작한 Y언니와 나 사이에는 대화할 시간이 꽤 많기는 했다. 유아용 수영장에 걸터 앉아 발차기 연습을 할 때, 얼굴은 물속에 잠기지 않으니까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지치는 마음을 수다로 달랬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났고, 회사 때문에 아주 가끔씩 수영장에 방문하는 Y언니와 꼬박꼬박 와도 매일이 그대로인 나는 왕초보용 레인의 터줏대감이 됐다(둘만 그곳에 남았다는 뜻이다). Y언니도 평범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것은 하지 않고, 자신만의 수영법 아니 유영법을 개발해 어떻게 물 위를 떠다니면 재미있는지 늘상 연구했다. 킥판을 잡은 손 모양마저 어딘가 엉성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레인의 끝과 끝을 오갔다. 그러면서 남는 시간에 내 틀린 자세를 봐주기도 하고, 컵라면 먹고 싶다는 말도 하고, 가벼운 회사 얘기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며 읊조리는 혼잣말을 포함해서, 선생님 다음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마도 나일 것이다. 그다음이 Y언니.
매일이 도돌이표처럼 느껴지는 수영 강습이 끝이 나고, 전쟁 같은 샤워를 하고, 탈의실에서 스킨 로션을 바르며 거울을 봤다. 내 옆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Y언니였다. 수영장에서 볼 때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왜 이렇게 어색할까. 머리카락이었다. 수영장 안에선 머리카락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수영모 속으로 집어넣고 깐 달걀 마냥 동그란 머리 모양으로 서로를 마주하지만, 탈의실에선 아니었다. 단발머리였구나.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옷을 입은 모습도 낯설었다. 늘 꼭 붙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체크 셔츠에 청바지라니. 조용히 언니를 불러봤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고는 눈이 나쁜지 나를 자세히 봤다.
“헉. 세연이구나. 밖에서 보니까 못 알아보겠다.”
모르긴 몰라도, 언니의 시선 역시 내 머리로 먼저 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온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서로의 하관을 상상만으로 그려보던 시절처럼, 수영모 속에 감춰진 머리를 자기도 모르게 상상하고, 그것과 비교하게 됐다. 머리를 조이는 수영모, 딱 달라붙는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에 들어서는 내 모습이 그렇게나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꽤 신기했다. 머리카락이 달려 있고 옷을 입고 있는, 내게도 훨씬 익숙한 모습의 내가 Y언니에게만, 아니 수영장 사람들에게만 낯선 모습이라니. 재밌는 일이다. 슬프게도, 서로의 모습을 알아보고 대화를 나누던 유일한 수영 동기 Y언니는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회사 일이 바빠진 걸까. 다시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편안함 속으로 돌아가면서도, 은근히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