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더 빠른 소식은 instagram : @hyenny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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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양양 최대 풀 파티장 가는 길이 맞아?”
강원 양양군 인구해변 뒤편. 우리는 가로등 하나 없는 논길을 10분 넘게 걷고 있었다. 풀 파티는 커녕 어촌 반상회도 열릴 것 같지 않은 허허벌판. 고라니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우리의 패션은 수영복, 휴대폰이 겨우 들어가는 가방에는 립스틱이 전부였다.
“분명히 주소는 여기쯤이었는데...”
친구들의 의심 가득한 눈빛에 의기소침해질 때쯤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논과 밭 사이에 남유럽 해변에서나 볼 것 같았던 1800평 규모의 하얀 리조트 건물이 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신나게 음악을 틀고 있는 DJ, 그 앞에서 홀린 듯이 춤을 추다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여기가 ‘템플온더비치’ 풀 파티장이다.
손목에 띠를 착용하고 입장하니 큰 수영장 두 개가 한가운데 있다. 그 주변으로는 테이블 좌석이 둘러싸고 있다. 무대를 감싼 테이블, 강남 나이트클럽을 수영장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물속에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게 직원들은 물총과 비치볼을 나눠준다. 순간 파티장은 서로 물총을 쏘는 ‘워터밤’ 공연장이 됐다. 열기가 절정으로 치솟았을 때쯤 “뿌우!”소리와 함께 비누 거품 폭탄이 발사된다. “꺄아!”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 비누 거품 하나에 행복해하는 이들이 젊음이다.
‘서퍼들의 천국’으로만 불렸던 양양이 최근 ‘한국의 이비자’로 떠오르고 있다. 유흥의 중심가도 ‘서피비치’에서 ‘인구해변’으로 이동했다. 여름도 끝나가는데 웬 해변이냐고? 양양의 진짜 밤은 지난달 20일 양양해수욕장이 폐장된 후 시작된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빠지면서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만 남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의 이비자, ‘와이비자(YBIZA=양리단길 + 이비자)’는 ‘솔게스트하우스’에서 시작된다. 제주도로 향하던 게하파티(게스트하우스파티)족들을 양양으로 끌어들인 주인공이다. 오후 7시30분부터 바비큐 파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펑키 투나잇 파티가 시작된다. 칵테일과 맥주만 마시다 속이 허해질 때쯤, 그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인구 해변 길 중심. 가장 줄이 길고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은 구수한 이름을 가진 ‘인구시장’이다.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지만, DJ는 최신 음악으로 흥을 돋운다. 메뉴는 3만2000원짜리 부대찌개. 주문을 하니 배달용 용기에 담겨 나온다. 살짝 분노가 들 뻔 했지만, 입에 넣어보니 맛있다. 역시 한국인은 술을 마신 후 얼큰한 국물을 넣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밥을 먹는 식당이 아닌 ‘헌팅 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 양양 ‘인구 해변’이 뜬 것은 아름다운 바다, 드높은 하늘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이는 양양뿐 아니라 모든 동해안 해수욕장은 다 가진 미덕이다) 바로 ‘헌팅 성지’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양양행을 결정한 것도 인터넷에 올라온 이 문장이 준 호기심 때문이었다.
“여자친구가 양양을 갔습니다. 헤어져야 하나요?”
도대체 양양이 어떤 곳이길래? 매년 여름마다 양양을 가지만, 늘 ‘서피비치’에서 물놀이하고, ‘코로나 선셋바’에서 피자와 맥주를 즐기다 오는 낭만적인 곳이었는데?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진짜 스페인 이비자를 다녀온 친구 둘을 데리고 양양행 버스에 오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양 인구해변은 ‘한국의 이비자’가 맞았다. 해변가에선 술집이든 식당이든 끊임없이 DJ 음악이 나오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 춤을 춘다. 해외 해변가처럼 ‘작업용 멘트’도 꾸준히 들린다. 그 말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점에서 이곳이 ‘한국이구나!’ 실감이 난다. 이들의 출발지는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온 서울뿐 아니라 대구, 제주, 광주 등 전국 각지다. 지난해 양양 인구는 2만7817명, 양양을 찾은 관광객은 59배인 1638만명이라고 한다.
가장 핫한 ‘헌팅 성지’들도 토속적이다. 또 다른 핫플은 ‘인구 수산 포차’. 9만원짜리 대왕해물철판이 메인 메뉴지만,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닌 남녀 만남의 장이다. 가리비를 발라 먹으며 이성을 물색하고, 남은 국물에 라면 사리를 끓이며 다른 테이블에 말을 걸러 간다. 여기서 눈이 맞아 조금 더 화려하게 놀고 싶다면, 바로 앞 ‘스케줄 양양’으로 이동하면 된다. 여기서도 매일 밤 ‘풀 파티’가 새벽 2시까지 열리고 있다.
양양의 옷차림은 수영복이 기본 착장이다. 수영복을 입고 낮에는 물놀이하고, 밤에는 풀 파티를 간다. 팔까지 다 가리는 수영복이었지만, ‘가슴이 조금 야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앞에는 끈 수영복 군단이 등장했다. 까무잡잡하게 태운 피부에 끈으로만 이뤄진 수영복, 팔뚝과 발목에 귀엽게 새겨진 문신까지. 그러고 보니 남자들은 대부분 상의 탈의가 기본이다. 순간 ‘유교인(유교+人)’이 된 우리는 춤을 추다 동해안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양양 유일의 애프터클럽 ‘클럽 트리’의 긴 줄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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