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선정릉은 풀 냄새가 났다. 비가 와 축축이 젖은 땅 내음이 주변으로 흘러나왔다. 조금 바깥으로 나가니 강남을 격자무늬로 수놓는 도로 위로 콘크리트 먼지가 들썩였다. 다시 선정릉 품으로 돌아왔다. 차 배기음이 잦아들고 사람들이 거니는 골목이 나타났다. 빌라, 혹은 다세대주택, 상가 등 여러 가지 이름을 한 건물들 1층에는 부동산 중개소, 식당, 혹은 술집들이 작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문을 열어 놓았다.

정릉 방면, 삼성중앙역에서 포스코 사거리로 내려오는 골목길에 ‘쥬흐네몽드’라 이름 붙은 집이 하나 있었다. 지나가는 객을 끌어모아 가게 안을 가득 채우겠다는 야심은 이 집에 없어 보였다. 가게 대부분은 주방이었지만 그마저도 두 사람 정도면 가득 차 버릴 크기였다. 나무로 짠 유리장 안에는 여러 종류의 피낭시에와 마들렌이 놓여 있었다. 그 옆 매대 위에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놓아둔 과자들이 철망 위에 줄지어 있었다. 럭비공 모양으로 부푼 소금빵도 보였다. 저 비좁은 주방에서 모두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색과 모양이 흠잡을 데 없었다. 밖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반팔 차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주방에서 일하는 주인장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쥬흐네몽드’의 구움과자. 버터쿠키(앞)와 마들렌.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주방은 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무리 밖이 춥더라도 오븐에 불을 올리고 화덕에 냄비를 올려놓는 순간 열기를 하루 종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그래도 디저트 주방에는 한기가 돌았다. 초콜릿, 마카롱, 아이스크림 등 당류를 많이 쓰는 디저트 특성상 온도가 올라가면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가하거나 일이 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반 조리에 비해 디저트는 1g 단위로 철저하게 계량해야 하고 또 시간과 온도도 오차가 작아야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기에 빈틈은 용납되지 않았다.

더구나 10여 년 전 일하던 호주의 레스토랑에서는 코스 마지막에 나가는 마들렌이나 피낭시에 같은 구움 과자는 미리 구워 놓지 않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정확히 시간을 맞춰 준비해둔 반죽을 오븐에 넣고 완성시켰다. 금발에 손이 빨랐던 호주 요리사 마이클은 날이 바싹 서서 마들렌을 구웠다. 그 곁에서 괜히 얼쩡거리다가는 욕이나 먹기 십상이었다. 그때마다 늘 모든 과자의 모양이 일정하고 또 완벽해서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어주곤 했다. 그럼 마이클은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만드는 거니까 당연한 거야”라며 씩 웃고는 했다. 가끔 마이클이 기분 좋은 날에는 마들렌 하나를 슬쩍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 집에서 본 마들렌과 피낭시에는 예전 마이클이 만들어주던 것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조개 모양이 특징인 마들렌은 베이킹파우더를 이용하여 얻은 폭신한 식감, 그리고 버터의 풍미와 레몬의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레몬 아이싱을 얇게 입힌 레몬 마들렌의 속은 이슬을 머금은 듯 촉촉하고 옅은 황금빛을 띠었다. 반으로 잘라 숨을 들이켜니 갓 구운 과자 특유의 신선한 향이 비 갠 오후의 청량한 공기처럼 차분히 주변에 감돌았다. 마들렌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스로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 과자가 닮고자 하는 것은 맹렬한 태양이 아니라 달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들렌 하나가 다 녹아 없어지는 순간순간은 마치 드뷔시의 피아노 독주곡 ‘달빛(Clair de lune)’을 듣는 듯 관조적이고 서정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반짝이는 초콜릿 코팅이 올라간 초코 마들렌, 바닐라 향이 가득 느껴지는 크림을 속에 집어넣은 바닐라 마들렌, 캐러멜 소스가 들어간 쑥 마들렌 등 무엇 하나 놓치기 싫은 과자가 한가득이었다.

의정부 ‘장인약과’에서 받아온 약과를 으깨 만든 약과 피낭시에는 약과의 질감과 맛을 살리면서 휘낭시에 특유의 짙은 버터 향을 붓 터치가 그대로 느껴지는 유화마냥 선 굵게 섞어 냈다. 소금과 초콜릿을 올린 피낭시에, 한입 씹으면 버터와 소금의 맛이 과일을 베어 먹은 것처럼 물씬 풍겨나는 소금빵은 주인장의 손놀림으로 이끌어낸 탄탄한 구조감 속에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 프랑스산 버터와 유기농 밀가루, 방사유정란 등 값이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쓰려는 주인장의 마음이 마치 마들렌에 배어든 레몬 향처럼 가게 구석구석에 스며 있기 때문인 듯싶었다. 작은 나무 그루터기처럼 낮게 자리 잡은 이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러면 희미하게 느껴지는 풀 냄새 너머로 고소한 버터와 새큼한 레몬의 향기가 작은 새처럼 지저귀는 것 같다.

#쥬흐네몽드: 레몬 마들렌 3300원, 약과 피낭시에 3400원, 소금빵 3500원, (0507)-1393-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