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 기아냐르 뜨갈랄랑에 위치한 ‘카펠라 우붓’. 캠핑 콘셉트로 수영장 파이프에서 물이 나오고 있다. /이혜운 기자

“여기가 ‘신들의 섬’ 발리 맞아?”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응우라라이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리자 울창한 밀림이 펼쳐진다. 바다는커녕, 지나가는 차도 잘 보이지 않는 숲길.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발리의 중심 ‘우붓’이다.

차에서 내리자 계단식 논이 보인다. ‘뜨갈랄랑’ 지역이다. 광활한 열대우림 속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논 뷰’로 유명한 곳. 말을 잃을 만큼 웅장하다. 이렇게 산비탈을 깎아 농사를 짓는 계단식 농업 관개 시스템을 ‘수박(subak)’이라고 부른다. 발리는 화산섬으로 산이 많아 이렇게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수박은 논에 물을 대는 방식뿐 아니라 사원 관리와 제사 등을 치르는 협동조합도 아울러 지칭한다. 지난 1000년간 형성해 온 체계로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수박은 영혼, 인간, 자연 세계의 조화로운 관계를 촉진하는 힌두교 ‘트리 히타 카라나’ 철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어요.”

나를 이곳에 태워준 택시 기사의 말이다. 지역의 수많은 샘물이 연결된 수로를 통해 논과 사원으로 물이 흘러드는데, 이것이 자연과 영적 세계를 이어주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자연을 신처럼 받들고 순응하는 발리인다운 생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뜨갈랄랑 계단식 논 ‘수박’. /이혜운 기자
우붓 밀림과 계단식 논을 향해 그네를 타는 ‘발리 스윙’. /하이드 어웨이 스윙

이 계단식 논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그네’다. ‘논 뷰’를 즐기며 멋지게 대형 그네를 탈 수 있는 곳, 일명 ‘발리 스윙’이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발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진이기도 하다. 코코넛 나무에 매달린 거대한 그네에 올라탄 뒤 정글 사이를 가로지르는 짜릿함. 하늘에서 논밭을 내려다보다니. 날아다니는 새들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그네에 탑승하지만 조금 무섭다. 그럼에도 인기가 많은 것은 ‘인스타그램 인증 샷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사진이 더 잘 나오도록 밑단이 넓은 드레스도 빌려준다. 그네를 타는 게 무섭다면 새집 같은 구조물 안에서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 초행자들은 바다로 가지만, 경험자들은 밀림 지역 ‘우붓’으로 간다. 우거진 코코넛 나무와 빼곡히 들어선 야자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과 오리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발리인들의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붓(Ubud)’이라는 단어는 식물의 전통적인 치유라는 의미의 ‘우바드(Ubad)’에서 유래했다. 가만히 있어도 숲에서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푸른 정글과 빛바랜 왕궁, 오래된 사원들이 만나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옷은 편하게, 가방은 가볍게.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보자. 발리 우붓은 교통 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아 걸어 다니기 좋다.

우붓의 숲속에서 요가를 하는 모습. /이혜운 기자

◇밀림에서 요가와 캠핑

“팔을 뻗고 고개를 숙여 아기 자세를 취합니다.”

우붓 밀림 속 탁 트인 공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달려나가 외국인 관광객 4명과 요가를 시작했다. 삼각 자세, 고양이 자세 등을 마치고 마지막 아기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지금. 얕게 쉬는 숨소리와 함께 아침 새소리가 들린다.

발리는 유명한 요가 수양지다. 16세기 힌두교 승려들이 발리의 우붓으로 피난을 오면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요가가 끝나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자, 숲속 샤워 시설에서 씻기 시작했다. 마치 타잔이 된 듯하다. 피톤치드가 나오는 숲에서 샤워하는 건 실내 샤워보다 건강에 좋다고 한다. 옆에 있는 벌레들이 훔쳐보거나 말거나.

우붓은 캠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리조트가 숲속에 있다. 카펠라 우붓은 세계적인 건축가 빌 벤슬리가 작정하고 캠핑 콘셉트로 만든 곳이다. 숙소는 텐트, 수영은 파이프에서 물을 받아 한다. 정글에서 수영하는 기분이다.

캠핑의 꽃은 밤에 하는 캠프파이어다. 1900년대 발리를 묘사한 무성 흑백영화를 배경으로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며 핫초코와 마시멜로를 먹으니 잠이 솔솔 온다. 살짝 녹은 마시멜로를 비스킷 사이에 넣은 ‘스모어’를 만들어 먹었다. 고질적인 불면증도 치료될 것 같은 밤이다.

아직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붓 왕궁’. /이혜운 기자

◇우붓 관광의 시작 ‘왕궁’

우붓 시내 관광의 시작은 ‘우붓 왕궁’이다. 우붓의 마지막 왕이 살던 왕궁으로 아직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발리 전통 문양을 간직한 소박한 왕궁이다. 규모가 작고 화려함은 덜하지만 정교함과 아기자기함이 돋보인다. 후손들의 실거주 공간을 제외하고는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왕과 왕비가 앉던 의자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 옆 돌탑에는 색색의 네모난 바구니가 보인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바구니 ‘짜낭 사리’다. 코코넛 잎사귀의 모서리를 뾰족한 대나무 바늘로 집어 네모난 박스를 만든 후 꽃잎, 동전, 밥 등을 넣어 만든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 놓는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 이상 향을 피워 신에게 감사하고 평안을 기도한다. 발리 사람들에게 종교는 삶이다.

매일 저녁에는 공연도 열린다. 인도네시아 전통 합주 ‘가믈란’에 맞춰 여성 무희들이 춤을 추는 ‘레공 댄스’와 가면을 쓴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선과 악의 싸움을 표현하는 ‘바롱 댄스’가 유명하다.

왕궁 옆에는 수많은 연꽃과 연잎이 떠 있는 사원이 있다. ‘연꽃 사원’으로 불리는 ‘사라스와티 사원’이다. 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힌두교 여신 사라스와티를 모시는 곳이다. 사원을 둘러싼 아름다운 연꽃들이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우붓 스타벅스와 연결돼 있어 더울 때면 시원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하기도 좋다.

◇예술인의 마을

우붓 왕궁 바로 옆에는 전통 시장이 있다. 동대문 시장처럼 거대한 건물 안에 작은 가게들이 입점한 형태. 기념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드림 캐처, 라탄 가방 등 수공예품이 유명하다. 바가지로도 악명이 있으니 흥정은 필수다.

전통 시장의 분위기가 상업적이라면 조금 더 걸어서 ‘아트 마켓’으로 가보자. 골목을 따라 형성된 5일장 같은 분위기에서 예술인들이 직접 만든 제품을 팔고 있다. 거리 곳곳이 작은 박물관 같다. 우붓의 또 다른 별명도 ‘예술인 마을’이다. 화가·조각가들이 군집을 이뤄 살기 때문이다. 작품 활동을 위해 ‘한 달 살기’를 하는 외국 예술인도 많다고 한다.

시장 바닥에는 할리우드 거리처럼 조각된 다양한 문구가 있다. 2012년 도로를 만들 때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중 한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법이다.” 때론 장바닥에서 인생을 깨닫는다.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의 대표 관광지 ‘몽키 포레스트’. 원숭이 700마리가 살고 있다. /이혜운 기자

◇영적인 ‘몽키 포레스트’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몽키 포레스트’다. 원숭이 700마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이곳은 우붓의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경제 자원인 동시에 영적인 장소다. 힌두교는 원숭이가 하누만 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 믿기 때문이다. 매달 관광객 약 12만명이 찾는 몽키 포레스트는 숲의 크기만 12만5000㎡에 이른다. 울창한 나무와 시원한 그늘, 115종의 다양한 식물이 있어 산책 길로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할 때는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먼저, 원숭이를 무서워하면 안 된다. 가둬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짜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입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주인공이다. 장난치는 소년 원숭이,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원숭이, 사랑을 나누는 연인 원숭이 등 원숭이의 다양한 삶을 직관할 수 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무릎에 앉혀 놓고 사진 찍는 것도 가능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꼭 가볼 만한 관광지다.

둘째는 귀중품 보관이다. 원숭이는 손을 잘 쓰는 동물이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나 들고 있던 작은 가방들을 빼앗아 들고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리면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명한 관광지지만, 현지인들이 찾는 곳은 아니다. 같이 간 현지 친구는 10년 만의 방문이라고 했다. 멋져 보이는 사원이 있지만 특별한 사원은 아니다. 발리엔 집집마다 ‘가족 사원’이 있어, “집보다 사원이 많다”고 말할 정도다.

일출을 보기 위해 지프차를 타고 바투르산을 오르는 모습. /이혜운 기자

◇일출 성지 바투르산

발리에서 가장 일출이 아름다운 곳은 우붓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바투르산’이다. 해발 1717m의 발리에서 셋째로 높은 산으로, 1800년대부터 크고 작은 분화가 이뤄지는 활화산이기도 하다. 산 오른편으로는 2만9000년 전에 생성된 칼데라호인 ‘바투르호’가 있다.

트레킹 성지로 불리지만 가파르고 가는 길이 험난해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빈티지 지프카를 타고 오른 후 일출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도 인기다. 일출 체험을 신청하면 오전 2시 호텔로 픽업을 온다. 적당한 곳에 내려 오전 3시부터 가이드와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목적지에 닿는다. 샌드위치와 커피가 준비돼 있다. 내 몫을 챙겨 들고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내 붉은 태양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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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다니는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은데 어디가 맛집인지 모르겠다고요? 친구, 연인과 주말을 알차게 놀고 싶은데 어디가 핫플인지 못 찾으시겠다고요? 놀고 먹는데는 만렙인 기자, 즉흥적인 ENTP이지만 놀러갈 때만큼은 엑셀로 계획표를 만드는 기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해드립니다.

(더 빠른 소식은 instagram : @hyenny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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